최태원 SK 회장이 꿈꿀 미래의 기업

[이균성의 溫技] 지속경영 관점에서

데스크 칼럼입력 :2019/03/14 12:58    수정: 2019/03/15 11:28

#기업은 흔히 ‘두 바퀴 자전거’에 비유된다.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람이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자전거에는 달리지 않을 때도 넘어지지 않도록 받침대를 달아놓았다. 기업엔 그 받침대라는 게 있을 리 없다. 기업도 사람처럼 결국엔 생로병사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운명이 그렇더라도 기업인은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순간 곧 죽음이자 소멸이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그래서 그 운명에 항거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항거는 결과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혁명’이다. 그 또한 기업인의 운명이다. 결국 기업인은 ‘존재할 수 없는 영원’이라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그 도전은 가혹한 가시밭길이어서 시시포스가 받은 천형(天刑)과도 같은 거다.

#기업인이 그 고통스러운 천형을 기꺼이 감수하는 건 두 가지 마음 때문이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식으로 표현하면 ‘똑똑한 이기심’과 ‘합리적인 이타심’이 그거다. 똑똑한 이기심은 거칠게 말하면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다. 합리적인 이타심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면서도 그 성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 두 마음으로 불가능에 도전하고 그 결과 세상은 발전한다.

다보스에서 '기업 가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란 주제로 강연하는 최태원 SK 회장

#관건은 지속 가능한 기간이다. 기업의 지속 가능연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떤 기업은 순식간에 망하고 다른 기업은 수백 년 지속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인의 마음은 똑같다. 가능한 한 자기 기업의 생명력이 길면 길수록 좋겠다는 것이다. 그건 그 기업에만 좋은 일이 아니다. 그 기업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러니 그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태원 SK 회장은 여러 이유로 감옥에 갔다 온 뒤 국내 여타 대기업 총수들과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상에 대한 발언이 많아졌고, 특히 ‘사회적’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이를 테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우리 대기업 총수가 이 휘발성 높고 다분히 알레르기적인 단어를 거침없이 쓰는 게 이채롭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짐작컨대, 최 회장 또한 SK그룹의 지속가능 경영을 고민할 것이다. 또 최근의 이채로운 행보는 그 고민의 결과일 터다. 그렇다면 최 회장은 그 고민의 답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모르긴 해도 그 하나는 ‘시대정신’일 거고 다른 하나는 좋은 ‘사례연구’일 것이다. 이 짐작이 과하게 틀리지 않다면, SK 임직원은 물론 여러 경제주체들도 같이 고민해볼만한 훌륭한 주제다.

#최 회장이 생각하는 시대정신이란 뭘까. 이 또한 짐작이지만, ‘기업은 그 존재만으로도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 기여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왜? 인류의 희망과 달리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는 게 갈수록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국가와 기업과 소비자는 서로 견제하는 경제주체이자 인류의 행복에 공동 책임을 지는 동반자다. 그게 그의 시대정신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최 회장이 벤치마킹한 기업은 어떤 곳일까. 영업이익이 높은 기업? 그게 다일 리 없다. 필요조건이긴 하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충분조건은 ‘지속가능’과 관련되어야 한다. 인류의 복지는 지속가능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업은 대체 어떤 곳인가. 어쩌면 ‘에노키안협회’의 회원사들로 20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장수(長壽)기업이 사례일 수 있다.

#기업에 따라 비장의 무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몇 가지 공통분모를 뽑아낼 순 있다. 가족기업이 많다는 점과 미래경영을 강조한다는 점. 이 둘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자신의 피로 대를 이을 후손에게 전해져야 하는 까닭에 보통의 기업이 말하는 구호성 미래경영과 달리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를 위한 경영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래를 고민해야 지속가능이 담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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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미래경영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다. ‘브랜드 관리’와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다. 이 두 가지에 이윤의 많은 부분을 재투자하는 기업이 장수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 인류인 소비자에 직접 관계된 거다. 후자는 시대변화에 따른 소비자의 새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이고 전자는 그 과정에서 소비자를 귀하게 떠받드는 것이다. 모두 지극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미래경영은 그래서 ‘인내(忍耐)경영’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인내경영은 직원을 힘들게 하는 ‘인색(吝嗇)경영’과 무관하다. 인내경영의 본질은 마른 수건이라도 짜는 이윤창출이라기보다 인류에 대한 복지를 구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SK는 물론 외형으로 볼 때 이미 에노키안협회 회원사들보다 큰 글로벌기업이 됐다. 그런데도 이들의 지속가능성까지 겸비하면 더할 나위 없잖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