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끝' LG-SK, 韓 배터리 영토 다시 넓힌다

[이슈진단+] 배터리 소송전 종결 배경과 의미

디지털경제입력 :2021/04/11 18:16    수정: 2021/04/12 07:59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11일 3년여간 벌여온 전기차배터리 소송전의 마침표를 찍었다.

영업비밀 소송 판결 효력 발생을 앞두고 양사가 막판 합의에 이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소송이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배터리 업계 경쟁구도가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오후 공동 입장문을 내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가치 기준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을 더한 총액 2조원을 LG에너지솔루션에 지급키로 했다. 관련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않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왼쪽)과 SK이노베이션(오른쪽) 관계자들이 각사가 제조한 전기차배터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각 사

美 대통령 거부권 시한 하루 앞두고 극적 합의 

이번 합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ITC 판결 거부권 행사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이뤄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지난 2월 10일(현지시간) ITC 최종결정일로부터 60일 이내, 우리 시간으론 오는 12일 오후 1시까지였다.

양사는 그동안 합의 금액을 두고 입장차를 보였다. 협상 막판까지 LG 측은 3조원대를, SK 측은 1조원대의 합의금을 각각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합의금은 중간선인 2조원으로 책정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막판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배경엔 물밑에서 합의를 유도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있었다.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언론은 이번 합의를 두고 '일자리와 배터리 공급망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기차 산업을 집중 육성키로 한 바이든 행정부가 조지아 SK배터리 공장을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면서 "기업 간 영업비밀 분쟁에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도 없어 막판까지 양사가 협상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구광모 LG 회장(왼쪽)과 최태원 SK 회장(오른쪽). 사진=각 사

구광모-최태원, 양사 합의 담판 지었나

총수들이 직접 만나 담판을 낸 결과란 분석도 있다. 구광모 LG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은 지난달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중재로 서울 모처에서 회동했다.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난 박 회장이 신임 회장인 최 회장과 구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다만, 두 회장이 이 자리에서 배터리 소송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진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사 총수의 만남이 합의를 위한 분위기 형성엔 도움이 됐을 것은 분명하다"며 "합의를 바라는 국내외 여론도 있고, 최근 특허소송 결과를 보더라도 소송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양사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소송전에서 각 사가 천문학적인 금액의 소송비용을 떠안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양사가 소송비용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만큼, 비용은 각자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CRP에 따르면 SK와 LG가 지난해 투입한 로비 비용은 각각 65만 달러와 53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6~8억원이다. 미국 로펌에 지불한 비용을 더하면 양사가 소송·로비에 비출한 비용은 최고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는 성장하는 배터리 산업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SK 관계자는 "내년 본격적인 생산을 앞둔 포드·폭스바겐 등 고객사의 변함없는 믿음과 지지에 적극 부응해 더 큰 파트너십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LG 관계자도 "양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공존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LG 트윈타워

LG "과감한 투자 나설 것"…IPO 통해 실탄 확보

양사는 소송에 공들이느라 잠시 멈췄던 투자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배터리 시장 1·2위였던 중국 CATL과 일본 파나소닉은 지난해 코로나 확산으로 잠시 주춤해 국내 업계에 왕좌를 내줬다가, 최근 시장점유율을 크게 회복하며 업계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시장 1위를 유지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예고했다. 회사 관계자는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글로벌 선도기업으로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대규모 배터리 공급 확대와 전기차 확산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LG가 전기차배터리 사업에서 확보한 수주 잔고는 15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시설투자(CAPEX) 비용도 연간 3조원에 육박한다. 회사는 2025년까지 미국 시장에 5조원 이상 투입하고 GM 합작법인도 상반기 중 2공장 투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신설 공장 후보는 상반기 내 선정한다.

연내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실탄 확보에도 나선다. 증권가에선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가치를 100조원 규모로 추산했다. 상장을 통해 확보한 실탄으로 증설에 속도를 높여 2024년 매출 30조원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사진=SK이노베이션

SK 조지아 공장 '이상 무'…공격 투자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은 예정대로 조지아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1분기에 착공한 1공장은 내년 1분기 가동을 앞뒀다. 2공장은 2023년 양산에 돌입한다. 1·2공장 생산능력은 21.5기가와트시(GWh)다. SK이노베이션이 이 공장 건설에 투입한 금액만 3조원에 이른다. 투자금액은 장기적으로 총 5조6천억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소재사업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상장도 관심사다. SKIET는 다음달 코스피 상장을 계획 중이다. 배터리 성능과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단 평가다.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SK이노베이션은 약 2조3천억원의 투자재원 확보가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글로벌 전기차 산업 발전과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내·외 추가 투자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 공장 투자에 이어 헝가리 이반차에 2025년까지 약 3조원 가량을 추가 투입한다. 2023년까지 85GWh, 2025년까지 125GWh 이상의 글로벌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다. 업계 통틀어 가장 공격적인 속도의 투자로 꼽힌다.

토마스 슈말 폭스바겐그룹 기술 부문 이사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첫 배터리데이에서 배터리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씨넷

中·배터리내재화·전고체전지 등 과제 산적…협력관계 다시 열리나

양사가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약속한 만큼, 그동안의 갈등을 뒤로하고 협력관계를 넓힐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배터리를 생산해 완성차에 공급하는 사업을 넘어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리스(대여) 등 다양한 형태로 배터리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테슬라와 폭스바겐 등이 배터리를 내재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업계가 주행거리·안정성을 높인 배터리 등 독자적인 기술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규제 완화를 통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상황에서 양사를 포함한 3사가 전략적으로 협력할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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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전고체배터리의 경우 유럽에 비해 국내 연구인력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소재 원천기술 상용화를 위해 업계가 한 번은 합심해 정부에 인프라를 구축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이번 소송 판결을 기점으로 산업계에서 '영업비밀 침해' '기술 유출' 등 무형의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기업 간 공방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로 국내에서 해결을 못해 미국까지 가서 법정 싸움을 벌였다"며 "미국과 비교해 국내는 영업비밀 침해 등의 손해배상소송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