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기계' 꿈꾸던 개발자, 보안 매력에 푹 빠지다

[라떼는닷컴] 배환국 소프트캠프 대표

컴퓨팅입력 :2020/11/05 08:35

90년생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약 20여년 전 우리나라에 IT와 인터넷 분야를 뜻하는 이른바 '닷컴 산업' 열풍이 불었다.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IT 기업들도 대부분 이때 등장했다. 말 그대로 버블에 해당한 벤처기업들은 다 도산했고, 알짜 기업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업·공공·개인 소비자 영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그렇게 생존한 20년 전 젊은 창업자들은 어느덧 중견기업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운을 떼며 그간 겪은 산전수전을 털어놓을 법 하다. 이들의 그간 소회와 인상 깊은 기억들을 릴레이로 들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인터넷 초창기엔 사람들이 신원정보를 입력하고 인터넷을 사용했다. 이런 정책 결정은 전 국민의 실명과 주민번호가 유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보안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또 업계인으로서 산업 기밀을 지켜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는 뿌듯함과 사명감도 느끼고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보안 체계에 기여하게 될 때 큰 성취감이 든다. "

지난 20여년 전, 배환국 소프트캠프 대표는 "잘 나가는 개발자"였다. 인공지능(AI)을 탐구했고, 검색 포털 기업인 라이코스의 한국 지사 설립 과정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재미를 찾은 공간은 친구, 후배들과 모이던 원룸이었다.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솔루션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목표로, 퇴근한 뒤 밤마다 이것저것 개발하는 게 낙이었다. 당시에는 그 공간을 '베이스캠프'로 불렀다. 소프트캠프의 원래 이름이다.

준비하던 여러 사업 아이템 중 PC보안 제품인 'PC키퍼'가 날개돋친 듯 팔리면서 소프트캠프는 보안 회사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배환국 대표는 그렇게 보낸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이같은 소회를 밝혔다. 어쩌다 '보안인'으로서 살게 된 것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감상을 남긴 셈이다.

대학원생 개발자에서 국내 주요 보안 기업의 대표로 자리잡은 입장에서, 후배 창업자들을 위한 조언도 내놨다. 

"소프트캠프의 경우 '암호화'라는, 지속적인 수요가 있는 아이템을 고른 게 잘한 결정"이었다""뛰어난 사업 아이템을 선택해야 하고, 그 사업 아이템으로 가치를 얻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지불 주체인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환국 소프트캠프 대표

■ 아이디어 뱅크 속 찾아낸 'PC키퍼'…"창업 두 달만에 수출 성과 내"

라이코스코리아 설립에 참여하면서 배 대표는 검색 엔진을 고도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전공이던 AI 기술력을 살려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근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건 소프트웨어(SW) 기술 연구에 대한 갈증이었다.

"라이코스 준비 과정에서 여러 기획을 했는데, 재미를 못 느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상, 고도의 기술력보다는 미디어나 광고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정통 SW 회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1999년 7월 라이코스코리아가 설립되고 얼마 안돼 회사를 떠났다."

라이코스코리아 대신, 아지트로 삼은 원룸에서 공부와 여가시간을 함께한 후배들과 새로운 회사를 창립했다. 회사 설립 직후 여러 사업 아이템들을 준비하면서 투자제안서에 포함돼 있던 아이템이 PC키퍼였다.

"회사는 7월15일 창립했다. 그 때만 해도 투자가 빨리 이뤄지곤 했다. 7월22일로 기억한다. 8페이지짜리 투자제안서 중 5페이지 각각에 사업 아이템들을 채워넣었다. 타이핑 게임도 있었고, 사이버 애완동물, 검색 엔진, 분산 파일 시스템 등이 있었다. 그 중 완성도가 높았던 PC키퍼가 첫 제품이 됐다."

PC키퍼의 경우 시장에 수요도 존재했고, 호재가 있었다. 학교에 멀티미디어실이 갓 생기던 시절이었다. 학교마다 PC 수십 대가 놓이게 됐다. 장비는 구입했지만 교육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 교사 한 명이 수십명의 학생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아이들이 만진 PC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 부분을 노린 제품이었다.

"PC키퍼는 PC를 껐다 켜면 원 상태로 복구되는 솔루션이다. 회사 설립 이후 얼마 안돼 제품을 출시했는데, 한 두 달 뒤인 9월달부터 일본에 수출도 했다. 그 다음해 3월에는 일본전기주식회사(NEC)에 200억원 규모 수출 계약을 맺어 9시 뉴스에 회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 회사 시무식 현장의 배환국 소프트캠프 대표.

■ 위기 거치며 DRM에 집중…"SW 시장, 새로움 찾아야 성공"

성공가도를 달리던 도중 위기도 찾아왔다. 소소하게는 또래들이 있는 회사에서 대표로 일하면서 종종 생기는 갈등들이 그랬다.

"회사를 맨 처음 만들었을 때, 한 두살 많거나 적은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영업 등 의사결정을 해서 오면 말들이 많았다. 스트레스를 느끼다가 전부 불러다놓고 선언했다. '51퍼센트 이상 올바른 결정을 하겠다'고. 종종 잘못된 결정을 할 순 있어도,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 생각했다."

회사 바깥에선 시장 경쟁이 심화되기도, 시장 자체가 침체되기도 하면서 여러 난관이 닥쳤다. PC키퍼 외 다른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회사 경쟁력을 살펴 PC보안, 더 나아가 DRM이라는 분야로 집중했다.

"PC키퍼는 특정 시간에, 특정 프로그램만 구동되게 하는 식의 프로그램이다. 그러다보니 회사가 자연스럽게 PC보안 분야로 집중하게 됐다. 2003년쯤에는 시장 경쟁이 심해졌다.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문서보안(DRM)을 골랐다. PC 내부 중요 문서 파일을 암호화해 저장하고, 이를 허락된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솔루션을 고민했다. 대상을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문서로 좁혀 설계한 만큼 타 DRM 솔루션과 소프트캠프 솔루션과의 차이점들이 좀 있다. 이런 차별점을 살려서 사업을 잘 해왔다.


3년차까진 흑자를 계속 기록했는데, 사옥 구매 등으로 돈이 묶여 힘든 시기도 있었다. 국내에서만 사업을 했더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일본 파트너사가 미리 제품을 사주기도 하는 등의 도움을 많이 줬다."

2000년대 초 시무식 당시 배환국 소프트캠프 대표

업계를 장기간 관찰해온 입장에서, 배 대표는 향후 SW 시장 경쟁이 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위를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앞으로 이 시장은 1, 2위밖에 살아남지 못할 거다. 가트너 등 시장조사업체에서 새로운 시장이라고 소개하는 곳들도 이미 업체 순위들이 다 정해져서 나온다. 그런 시장은 들어가봤자다. 이미 점유율이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장은 승자가 다 가져가게 되는 식으로 구도가 형성될 거다. 


이렇게 전망하는 이유는 산업 특성 때문이다. 제조업의 경우 국내 업체가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면, 대기업으로 납품하고, 대기업은 납품된 부품을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식으로 시장이 구축된다. SW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물리 장비들이 가상머신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니." 

관련기사

마지막으로 배 대표는 향후 은퇴 이후의 관심사를 묻자, 뜻밖의 답을 내놨다. 

"클라우드 쪽 사업을 잘 하고 나서 고민해야 할 듯하다. 관심있는 부분이 있다. 고대 인류 분야를 연구해 책도 쓰고...그런 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