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클레이 무단상장...블록체인 업계 원팀 정신 아쉽다

클레이 이용한 과도한 마케팅 자제해야

기자수첩입력 :2020/06/10 16:51    수정: 2020/06/10 19:08

'블록체인 대중화'는 업계 전체가 떠안고 있는 숙제다. 블록체인이 인터넷, 모바일에 이어 차기 IT 혁명을 이끌 기술로 주목 받으며 등장했지만, 아직 확실하게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면, 일반 대중들이 체감할 만한 블록체인 서비스가 하루 빨리 나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블록체인 대중화를 이루겠다며 야심차게 등장한 서비스는 많았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블록체인 통계 사이트 댑랭킹에 따르면 '전체'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의 일일 이용자(DAU)는 15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 중에 블록체인 앱을 써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다.

대중적인 블록체인 서비스 등장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일단 일반 이용자들이 쉽게 블록체인 앱에 들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 많은 앱들이 이용자들에게 복잡한 단계를 요구하고 있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일반 이용자들에게 통하는 블록체인 서비스가 뭔지 찾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런 실험도 일단 이용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만 가능하다.

특히 블록체인 앱이 다른 모바일 앱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요소인 암호화폐를 이용하기 위해 거래소를 거쳐야 한다는 점은 일반 이용자들에게 큰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

앱 하나를 쓰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에 가입해서 암호화폐를 구입하고 지갑에 이를 다시 전송해야 한다거나, 반대로 앱에서 획득한 암호화폐를 환전하기 위해 거래소를 거쳐야 하는 상황을 일반 이용자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블록체인 서비스 이용자가 암호화폐 투자자로 국한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블록체인 대중화를 위해 중요한 시도가 블록체인 앱 안에 암호화폐를 획득하고, 교환하고, 사용하는 '완결된 경험'을 제공해 보는 것이다.

그라운드X가 디지털 자산 지갑 클립을 출시하자 국내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앞다퉈 클레이를 상장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가 출시한 카카오톡 연동 디지털자산 지갑 '클립'도 이런 완결된 경험을 추구하면서 등장했다.

선착순으로 초기 가입자 약 10만명에게 클립 생태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체 암호화폐 '클레이'를 지급한 것,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클레이를 상장하지 않고자 한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클립 안에서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암호화폐나 디지털자산을 획득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잇단 클레이 상장 강행과 과도한 마케팅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물론 퍼블릭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성과 철학적 배경을 따지면 거래소가 개발사에 동의를 얻지 않고 암호화폐를 상장하고 유통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래소 입장에서 오랜만에 화제성이 있는 코인이 등장한 만큼 상장시켜 이용자와 거래량을 늘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블록체인 산업 전체의 성장까지 함께 고민할 필요도 분명히 있다. 블록체인 산업 전체가 긴 침체기를 겪으며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대중친화적인 서비스 등장이 꼭 필요한 시점이 됐다. 지금으로써는 클립이 그 역할을 해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다. 클립이 대중 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게 국내 블록체인 업계 전체가 원팀이 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상장을 강행한 거래소들은 클레이 가치가 교환되는 것이 클립과 블록체인 생태계 전반에 득이 된다는 '대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상장 이후 과도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 일부 거래소들은 클레이 시세보다 더 큰 현금성 상품을 지급하는 등 출혈 경쟁까지 불사하고 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누군가 먹을 파이' 정도로 여기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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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들이 전체 블록체인 산업에 더 득이 되는 결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면, 클립 생태계가 더욱 성숙해지고 이용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 하나로 클레이를 사고팔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해졌을 때까지 상장을 기다려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더 많은 중소거래소들이 클레이를 상장하고, 거래량을 끌어오기 위해 마케팅비를 쏟아부을 것이란 얘기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눈 앞에 이익을 쫓다 소탐대실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라도 과도한 마케팅 경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