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생태계 회복 열쇠는 '불확실성 줄이기'

[이슈진단+] ESS 화재원인 첫 규명 1년(하)

디지털경제입력 :2020/06/10 14:56    수정: 2020/06/10 14:56

지난 2017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29건의 ESS 화재가 신재생에너지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키고 있다. 주요 원인인 안전성 문제를 비롯,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변경 등의 규제가 시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배터리 충전율을 80~90%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추가 안전 대책으로 업계 부담이 늘어난 동시에, ESS 특례 요금제도 일몰을 앞두고 있어 신규 사업 추진 활로가 점차 좁아질 전망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르면 이번 주 중 ESS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진흥 대책을 내놓고,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달 내 제도 개편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대책에는 안전 제고를 위해 이전처럼 배터리 충전율 제한을 유도하는 정책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의 750킬로와트(kW) 규모 태양광 ESS에서 발생한 화재. (사진=경남소방본부)

■ 연이은 화재로 성장세 '뚝'…현장 불안감 커졌다

국내 ESS 시장은 지난 2018년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드문드문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에너지전환을 국가 시책으로 삼은 정부가 ESS 구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전력·배터리 업계도 이에 응해 내수용 제품 생산을 늘렸다.

그러나 연이은 화재로 지난해부터 시장은 급격히 하락세로 전환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설치된 ESS 용량은 3.7기가와트시(GWh)로 전년에 비해 34%나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글로벌 시장 규모는 38% 성장한 16GWh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지난 2월 ESS 화재 2차 조사발표 결과 '배터리 이상'을 화재 원인으로 결론짓고, ESS 설비 충전율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건물 내(옥내)에 설치된 ESS 배터리는 최대 충전율을 80%까지, 옥외 설비는 90%까지 제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지키는 사업장에 한해서만 REC가 부여됐다.

'ESS 추가 안전대책' 요약. (자료=산업부)

배터리 제조사들도 ESS 안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삼성SDI는 예산 2천억원을 투입해 3단계 안전장치와 배터리 충격 여부를 확인하는 센서, 특수 소화시스템 등을 구축했다. LG화학도 지난 2017년 중국 난징공장에서 생산된 ESS용 배터리 전량을 자발적으로 교체하고, 화재 확산 방지 소화시스템을 적용하는 고강도 안전대책을 시행했다.

다만, 배터리가 발화원인이라는 산업부의 주장과 화재와 배터리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업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양사는 지난 2월 조사단의 발표와 관련, 조사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근거로 제시된 배터리의 물리적 손상이 배터리 내부발화의 직접 원인은 아니라고 봤다.

거듭된 안전 대책과 화재 원인 번복에 현장에서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전남 해남 소재 태양광 ESS에서 발생한 불은 정부의 충전율 제한 조치 이후 발생한 화재다. 당시 ESS의 정확한 배터리 충전율은 알 수 없지만, 설비에 부착된 소화시스템 등 안전 장치는 끝내 불길을 잡지 못했다.

중부발전이 '곰내 줌마아제 희망키움센터' 옥상에 설치한 40kw급 지붕 태양광.

■ '제도 지원·안전성 확보' 투 트랙으로 가야

화재 사고로 인한 신뢰도 하락이 큰 몫을 했지만, 국내 시장이 위축된 이유는 미래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탓이다. 사업자들이 친환경 발전 산업의 가능성과 에너지전환을 적극 유도하는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를 한 터라, 재생에너지 산업에 한해서는 기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익성과 직결되는 REC 가격이 폭락했다는 것. REC는 발전사업자가 재생에너지 설비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인증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REC 현물시장 평균가는 지난 2017년 초 15만원대에서 지난해 초 5만원대로 3분의 1가량 하락했다.

신재생 발전 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센티브인 REC 가중치도 태양광·풍력 연계 설비를 대상으로 다음달부터 5.0에서 4.0으로 줄어든다. 한 ESS 발전 사업자는 "가동 중단 기간이 길었고, 이후 안전을 위해 충전율을 낮췄지만 손실금을 메우기가 어렵게 됐다"며 "REC 가격이 떨어져 투자금을 회수할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특례할인제도 역시 차례로 폐지를 앞두고 있다. 우선 ESS 야간충전료 할인 혜택은 연말 종료될 예정이다. ESS 저장 전력량에 대해 기본 전기료를 할인해주는 제도는 당장 내년부터 가중치가 줄어들고 2026년에 폐지될 예정이다.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 (사진=에이치투)

업계는 산업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제도적 지원과 안전성 강화 대책이 동시에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했다. 화재의 정확한 원인이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당장 취할 수 있는 안전 조치를 모두 시행하고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화재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고 해결책이 제시되기 전까지 감축운전 실시를 통해 화재사고를 억제하고 그 손실은 보전하여 정책 실효성을 높여야한다"며 "할인제도 일몰 연장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확대 등으로 신규 사업자에게 투자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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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의 안전성을 확보키 위한 기술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난연(難燃·불에 타지 않는)' 특성을 지닌 분리막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난연성 분리막은 외부 충격이나 화재에 배터리가 노출될 시 발생 가능한 단락 노출됐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단락을 지연하거나 막는다. 단락은 분리돼야 할 음극과 양극이 금속 등의 도체로 연결되는 것으로, 발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발전업계는 리튬 배터리 기반의 ESS보다 안전성이 강화된 설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이 에이치투와 공동 연구·개발(R&D)하는 바나듐 흐름전지가 그 예다. 이 전지는 물 성분의 전해질을 이용해 화재 위험성을 줄이면서 리튬 배터리 대비 수명이 2배로 길다. 산업부 규정이 개정되면서 흐름전지도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돼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