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고비 넘긴 이재용, '뉴 삼성' 가속화할 듯

"가장 잘 할 분야 집중, M&A·신사업에 과감히 도전"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0/06/09 13:33    수정: 2020/06/10 09:5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한 고비를 넘기면서 '뉴 삼성'을 위한 경영행보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서울중앙지법은 "(이 부회장 등)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아직 검찰의 기소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 권고를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어려움을 가중했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 뉴 삼성을 위한 본격적인 혁신 행보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삼성 변호인단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 꿈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삼성은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삼성을 둘러싼 환경은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의 룰은 급변하고 있다.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주력 사업에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초격차 전략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지난해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를 목표로 제시한 '반도체 비전 2030'과 차세대 퀀텀닷 디스플레이 시장 개척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구속영장 기각 후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재계 한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 한일 무역갈등, 코로나19 팬데믹 등 대외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시스템 반도체, 퀀텀닷 디스플레이, 인공지능 등의 사업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그룹 오너인 이 부회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나 법원의 결정으로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환경은 기존보다 나아졌다고 판단한다. 이 부회장이 앞으로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경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나서자 곧바로 일본 출장길에 올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회동하는 등 위기극복을 위한 글로벌 경영행보를 보인 바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로 미중 무역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 출장길에 올라 후허핑 중국 산시성 성위서기와 면담하는 등 중국 현지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최근 일본이 우리나라에 추가 수출규제도 고려하고 있는 만큼 재계 전반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보폭을 넓혀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한일 수출규제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지난해 일본 출장길에 올라 가시적인 성과를 낸 바 있다"며 "이는 단순히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대기업·중견·중소기업) 전반에 걸친 문제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인맥이 두터운 이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미래 먹거리 '전장부품·인공지능' 도약 위한 M&A도 기대

삼성전자가 뉴 삼성으로의 본격 도약을 위해 전장부품, 인공지능(AI) 등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약 9조원을 들여 글로벌 전장업체인 하만을 인수한 이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M&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 전반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1년 이상 이어지면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에 차질을 줄 만큼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외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앞으로의 미래 산업은 비대면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룹 오너가 미래를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회동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뉴시스)

그는 또 "삼성전자 자체의 내부 역량이 뛰어나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M&A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하만 인수 이후 별다른 대규모 M&A가 없었던 만큼 앞으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성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M&A에 나서야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 수준인 113조1천964억원에 달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 중이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전장부품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NXP 반도체 인수를 타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NXP 반도체 인수는 삼성전자 전자계열사가 보유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기술역량과 더불어 차량용 부품 시장에서 단숨에 글로벌 티어-1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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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2017년 삼성 리서치에 한국 인공지능 총괄센터를 설립한 이후, 미국·캐나다·러시아 등에 추가로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조성해 인공지능을 미래 먹거리로 지속 육성해왔다. 특히, 지난 3월에는 반도체 사업 부문 산하에 DIT(Data & Information Technology) 센터를 설립하고,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이 부회장은 구속영장 기각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기업가치 향상에 집중할 것"이라며 "향후 중장기 경영 전략에 초점을 맞추며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M&A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