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늪'에 빠진 페북…선장 저커버그 최대 위기

"폭력조장 글 방치는 공범 행위" 안팎 거센 비판 직면

인터넷입력 :2020/06/02 17:10    수정: 2020/06/04 09:4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침묵은 공범이다.”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가 수렁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란 수렁이다. 자칫하면 저커버그의 리더십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물론 페이스북은 그 동안 크고 작은 시련을 겪었다. 반독점 소송 위협도 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시련은 주로 외부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부 직원들이 들썩이고 있다. 트럼프가 폭력을 선동하는 글을 올리고 있는 데도 뒷짐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글을 방치한 이후 안팎에서 강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사진=씨넷)

상당수 페이스북 직원들은 강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한 직원은 지금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는 건 (트럼프의 폭력 조장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잭 도시 CEO가 직접 나서서 트럼프의 트윗을 블라인드 처리한 트위터가 비교되면서 더 곤란한 상황을 맞고 있다.

■ 페북 직원들 "혐오 발언과 언론 자유는 다르다" 강한 비판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일부 페이스북 직원들은 업무 복귀를 거부했다. 그런데 현재 페이스북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원격 근무 중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집밖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대신 디지털 프로필 등엔 “항의 표시로 사무실 밖에 있다”는 자동 응답 표시를 해놨다.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린 글이다. 특히 문제가 된 건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전도 시작된다(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는 글이다. 1960년대 마이애미 경찰 간부가 사용했던 문구다. 시위자들에 대한 폭력 협박으로 널리 회자됐다. 사실상 대통령이 시위대를 향해 폭력 위협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글에 대해 저커버그는 “정치적 발언에 대해선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개인적으론 트럼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조직의 리더로서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야만 한다고 맞섰다.

문제가 된 트럼프의 글. 트위터는 앞부분에 규칙을 위반했다는 경고 문구를 추가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한 직원은 “혐오 발언을 언론 자유와 비교해선 안 된다(Hate speech should never be compared to free speech)”면서 저커버그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저커버그는 “(트럼프의 글은) 폭력 위협과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에게 허용된 ‘공권력 행사'를 언급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명이 저커버그의 그간 행보와 모순되는 건 아니다. 그 동안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은 정치 토론에서 진실 중재자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는 또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해주는 것이 페이스북의 사명이라고 역설해 왔다.

트럼프가 올린 글도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단 설명이다. 저커버그 자신은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을 순 없다는 의미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지향하는 페이스북 입장에선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논리다. ‘새로운 CNN’을 표방한 정보 네트워크와 달리 페이스북은 대화와 소통 공간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선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나쁜건 아니란 주장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론 그렇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 "좌파 실리콘밸리서 페북은 중립 플랫폼 부각 시도" 분석도

페이스북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미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에 직면한 페이스북이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인 로버 맥나미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맥나미는 "트럼프의 글을 그대로 놔두기로 한 페이스북의 결정은 거대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오랜 기간 보여온 행동 유형이다”고 비판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인터넷 사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순응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페이스북이 브라질, 필리핀, 캄보디아 등에선 독재권력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저커버그 주변 인물들에서 문제를 찾는 시각도 있다. 특히 글로벌 정책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는 조엘 카플란을 주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카플란 부사장은 조지 부시 대통령 보좌관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카플란은 최근 페이스북이 다른 좌성향인 실리콘밸리 다른 기업들과 달리 중립적인 플랫폼이란 점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일부 직원들은 카플란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사진=씨넷)

상황이 어쨌든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근래 보기 드문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일부 고위 임원들은 저커버그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또 다른 직원들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입사가 결정됐던 두 명의 직원은 저커버그의 입장 표명 직후 취소 의사를 밝혀 왔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저커버그는 4일로 예정됐던 직원들과의 주간 회의를 2일로 당겼다. 이 자리에서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직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동안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주로 외부에서 공격을 받았다. 특히 미국, 유럽 등 각국 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아 왔다.

물론 이런 공격도 부담스럽다. 특히 미국 정부의 반독점 조사는 페이스북에겐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오히려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가 있다. 외부의 공격에 공동 대응하려는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 전직원 회의 2일로 당겨…수습 가능할까

트럼프 글 처리를 둘러싼 이번 공방은 다르다. 내부 직원들이 무력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가 트럼프와 강하게 맞서고 있는 데다, 트럼프의 망발이 계속되는 점도 저커버그에겐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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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이래 승승장구해 온 페이스북과 저커버그는 이제 외부의 적 뿐 아니라 내부 단속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저커버그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까? 2일로 예정된 전 직원과의 회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