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공부한 AI, 언택트 시대 법률 시장 확 키운다

[포스트 코로나: AI+X가 핵심이다] ⑧법률과 AI

컴퓨팅입력 :2020/05/25 07:21    수정: 2020/05/25 16:14

임유경, 김윤희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법률 서비스 분야에도 비대면·비접촉을 지향하는 '언택트'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새로운 표준(뉴노멀)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상담과 수임료에 대한 부담으로 접근성이 낮았던 법률 시장에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단, 이전까지 간단한 온라인 상담 위주의 서비스가 주류였다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부터는 소송 준비부터 재판까지 일련의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언택트 퍼스트'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새로운 흐름 선두에는 그동안 꾸준히 IT 기반 법률 서비스를 개발해 온 '리걸 테크' 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이 최근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기술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AI로 계약서를 분석해 누락되거나 위법한 요소는 없는지 확인하고, 이용자들의 상담 내용을 학습해 계약서를 자동 작성하는 서비스가 이미 등장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AI가 판례를 학습해 이용자 사례와 비슷한 과거 판례를 찾아주거나 형량을 예측하는 일까지도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법률 전문가를 만나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했던 일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시대를 맞아 AI 법률 서비스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동안 3조원 규모에 머물렀던 법률 서비스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란 기대도 높아졌다. 법률 전문가의 업무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AI 덕분에 이용자 입장에선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변호사들은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시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코로나19 발 언택트 트렌드에 비대면 법률 서비스 수요 더 커진다

현재 국내 변호사 수는 3만명을 돌파했다. 법률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 후 매년 1천600명~1천700명 규모의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어, 증가 추세도 가파르다.

변호사 증가에도 일반 대중들에게 법률 서비스는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정보 비대칭성이 커 서비스에 대한 적정 가격이나 질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거리감을 키운 원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변호사 선임 없이 재판에 임하는 '나홀로 소송'은 전체 민사소송에서 70%에 이르고, 형사공판 1심에서도 50%가 넘는다.

문제는 이렇게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법을 잘 모르고 법률 문서를 작성했다가 안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이에 최근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원하는 조건의 변호사를 찾고 온라인이나 전화 등으로 상담을 받거나 법률 문서 작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 '로톡'의 경우 월 상담 수가 2018년 월 3천 건 수준에서 지난해 8천 건 이상으로 1년 새 세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해 4월 기준 1만 5천 건을 넘었다. 2014년 출시 이후 누적 상담 수는 30만 건 이상이다.

출처=로앤컴퍼니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의 정재성 부대표는 "소송 준비에서 재판까지 모든 과정을 비대면으로 할 순 없지만, 상담, 법률문서작성, 수임 계약 등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가능해졌다"며 "IT기반 비대면 법률 서비스에 오픈마인드인 변호사들과 비대면 환경에 익숙해진 의뢰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IT 기반 법률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언택트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면서 뉴노멀로 자리잡는 분위기라 주목된다.

AI 기반 법률 서비스 업체 인텔리콘의 임영익 대표는 "법률 분야에서도 언택트 문화가 생기고 있다"면서 "한번 인식 체계가 바뀌면 과거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로펌에 찾아가 서너 시간 상담해야 했던 것이 AI와 자동화 기술을 적용한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면 수 분 내로 끝난다"면서 "이런 경험을 통해 시민들은 온라인 비대면 법률 상담을 선호하게 되고 변호사들의 경쟁력도 빠르게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있느냐로 갈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출처=픽사베이

■AI 기술 입고 진화하는 IT 기반 법률 서비스

IT기반 법률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리걸 테크 기업들이 가장 많은 투자를 집중하는 기술은 단연 AI다. AI가 비대면 법률 서비스의 영역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AI 덕분에 IT 기반 법률 서비스에서 비대면으로 처리 가능한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약서 검토부터 형량 예측까지 다양하다.

AI를 적용한 계약서 자동 분석은 계약서를 입력하면 AI가 수 초 안에 법적 쟁점과 주의 확인 사항, 독소조항 등을 보여주는 서비스다.

AI의 계약서 분석 능력은 이미 인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8월 열린 법률 AI와 인간 변호사 대결에서 AI가 압승을 거두면서 성능을 입증하기도 했다. 근로 계약서를 분석해 문제점을 추론하고 최종 자문 보고서를 작성해 심사위원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치뤄진 경연에 인텔리콘의 AI 계약분석 시스템 알파로가 1위를 차지했고, 2위와 3위도 AI로 이뤄진 팀이 가져갔다.

계약서 초안 작성에도 AI가 활용되고 있다. 사용자가 원하는 계약 내용을 입력하면 AI가 의도를 분석해 가장 적절한 템플릿을 추천하고,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쉽게 작성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출처=리걸인사이트

계약서 작성 기능은 AI 기반 계약서 검토 기술과 결합해 한층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계약서 자동 추천 서비스인 마시멜로를 운영하는 리걸인사이트 채민성 대표는 "이용자가 계약서를 작성했을 때 그 계약서에 독소조항을 분석할 수 있는 기능 등을 넣어 고도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이런 기술을 통해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개인들에게 도움될 수 있고 변호사들도 계약서 작성과 검토에 들이는 시간 자체가 줄어 드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용자가 입력한 사건에 적용되는 법령과, 과거 유사 판례, 변호사가 입력한 법률 상담 중 유사 사건을 AI가 찾아주는 서비스도 나와 있다. 이용자가 일상 용어로 질문해도 AI에 적용된 자연어처리와 법률 추론을 통해 이해하고 답변을 제시하기 때문에, 법을 잘 모르는 일반 이용자들도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AI 서비스는 학습량이 많아질 수록 정확해 지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많이 이용할수록 더 성능이 좋아질 수 있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는 "우리 법률QA 서비스 법률메카의 경우 이용자들의 질의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새로운 질문이 올라왔을 때 80%은 관련 사례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데이터를 강화하는 데 가장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텔리콘 '법률메카'

이용자가 형사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상황을 입력하면 양형 인자와 기존 판례를 분석해 '형량 확률분포' '벌금 확률분포'를 보여줄 수는 법률AI 서비스도 곧 대중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로앤컴퍼니는 법률 문서 자동작성 기능에 형량 예측 기능을 결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로앤컴퍼니 정재성 부대표는 "고소장을 작성할 때도 조건을 충족하는 가장 유사한 판결에 인용된 법령 정보나 형량 예측을 담을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좀 더 고차원의 유의미한 내용이 담긴 법률 문서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법률 서비스 시장 규모도 키운다

일각에서는 AI를 필두로 한 IT 기술이 변호사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히려 AI가 변호사들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켜 줄 가능성이 더 크다.

먼저, 현재 AI 기술은 복잡한 사건을 이해하고 판결문에 제시된 논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변호사 업무를 대체하기 보다 보조 업무를 처리해 업무 효율을 높여줄 수 있다.

예컨대 이용자가 상담 전에 AI로 법률 문서 자동 작성했다면, 변호사는 초안이 있는 상태에서 검토와 수정만 하면 된다. 문서 작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되니, 더 많은 의뢰인의 문서를 검토할 수 있게 되고 잠재 고객과 접점도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는 "변호사 업무는 워낙 종합적이고 고도의 추론이 필요한 영역이 많기 때문에 현재 변호사를 일대일로 대체하는 AI는 없다"며 "현재 AI는 업무 보조 툴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동안 대면으로만 가능했던 법률 서비스 상당부분이 비대면으로도 가능해지면서 변호사 입장에서도 의뢰 고객을 특정 지역에 국한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소속된 변호사 수는 3만명 정도인데, 서울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 수는 2만명 이상이다. 잠재 고객은 전국에 있는데, 변호사 3분의2는 서울에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비대면으로 가능한 서비스가 늘어나면, 서울의 변호사도 지방 사건을 수임하는 게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출처=뉴스1)

IT 기반 법률 서비스에서는 '나홀로소송족' 같이 그동안 법률 서비스 밖에 있었던 수요도 끌어들일 수 있다.

채민성 리걸인사이트 대표는 "나홀로소송족이나 혼자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 등 변호사 수가 증가한다고 해서 수요가 흡수되지 않는다"며 IT 기반 법률 서비스로 개인들 법률 이슈에 대응할 방법을 다각화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흐름과 IT 기반 법률 서비스의 지능화·고도화가 맞물리면서, 현재 연 3조원 규모로 알려진 법률 서비스 시장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로앤컴퍼니 정재성 부대표는 "법률 서비스가 원래는 쓰는 사람만 쓰는 서비스였는데 IT기술로 법률 서비스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의뢰인에게 편의성을 제공하고 변호사에는 효율성을 높여줘서 더 많은 의뢰인과 변호사가 만나서 결과적으로 시장 파이 자체가 커지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AI 법률 서비스 활성화 앞에 놓인 두 가지 과제...데이터와 규제

IT기반 법률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AI가 주목받고 있지만, 법률AI가 활성화되는 단계까지 가려면 풀어야할 과제도 많이 남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논리와 추론이 주를 이루는 법률 분야에 AI를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크다.

이상용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인공지능학회장)는 먼저 "다른 분야에 비해 법률에서 요구되는 AI 기술의 난도가 훨씬 높다"며 "AI 기술은 패턴을 찾아내는 데 특화돼 있는데 법률 분야의 데이터는 종합적인 이해와 논리, 추론이 필요한 형태다. 판결문의 이유 제시는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AI가 명확히 패턴을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AI를 학습시킬 데이터 부족한 것도 문제다. 현재 대법원은 법률 데이터 중에서 대법원 판례만 공개하고 있다. 하급심 판례는 극히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데, 전체의 0.2% 수준이다. 대법원 판례의 경우에도 열람하려면 건건이 비용을 지불하고 요청해야 한다. 한번에 대량의 판결문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사례도 있다.

대법원 전경. (사진=대법원)

이 교수는 판례 공개가 소극적으로 이뤄지는 이유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소송 당사자의 권익을 고려한 것"이라면서도 "헌법은 판결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하위법령인 개인정보보호법으로 판례 공개가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측면에서는 AI를 활용한 법률 서비스가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 걸림돌이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 업무와 관련해 변호사와 변호사가 아닌 자의 동업을 금지하고 있다. 동업 결과로 발생한 보수나 이익의 분배도 금지된다.

AI를 동업자로 볼 수 있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실제 2015년, 2016년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변호사협회는 변호사법 위반을 이유로 리걸테크 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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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는 한 논란은 재발할 수 있다. 리걸테크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법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성화시지 못하게 막는 요인이다.

이 교수는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니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융합적인 서비스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며 "AI를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변호사법 위반 대상에서 예외로 해주자는 법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