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P도 품질 유지 의무...요금인가제 역사 속으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통과

방송/통신입력 :2020/05/20 18:40    수정: 2020/05/20 18:40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부여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내 CP와 달리 글로벌 CP는 상당 수준의 트래픽을 유발시키면서 서비스 안정은 통신사업자(ISP)에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페이스북이 망 이용료 협상을 진행하면서 고의로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최근 넷플릭스 분쟁 사례에서도 CP의 서비스 품질유지 책임 소재가 논란을 빚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라 해외에서는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면서 국내에서만 이같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서는 이용자 수, 트래픽 양 등으로 따진 기준에 속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서비스 안정수단을 확보해야 하고 이용자의 요구 사항을 처리해야 한다.

CP의 의무를 늘려 결론적으로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는 정책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의무 대상 사업자가 정해지며, 소규모 앱 서비스나 스타트업 등에는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국내 데이터 트래픽을 살펴보면 실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진 유튜브,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가 절반 이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이번 개정안이 글로벌 CP의 무책임을 고치기 위한 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서비스 안전성 의무와 함께 글로벌 CP 중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소가 없는 회사 중에서 시행령이 정하는 기준에 속하는 회사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는 조항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국내대리인 제도를 도입해 국내에 사업장이 없더라도 국내 이용자 대상으로 인터넷콘텐츠 서비스를 할 때 이용자 보호 업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 29년 만에 사라지는 통신요금 인가제

1991년 도입된 통신요금 이용약관인가제가 사업법 개정에 따라 사라지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요금인가제는 통신사가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하기 전에 정부에 요금 약관 심사를 받아 허가를 얻은 이후 시장에 새로운 상품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인가제가 도입된 것은 초기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이유가 작용했다. 선발 사업자가 후발 사업자 대비 앞선 품질과 점유율을 내세워 새 요금제로 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동통신시장에서는 SK텔레콤, 유선통신시장에서는 KT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적용돼 지금까지 요금 인가를 받아왔지만 사실상 통신요금은 꾸준히 인하 추세였고, 오히려 자율적인 요금 경쟁을 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지배적 사업자가 새로운 요금제를 내놔 가입자를 유치할 전략을 세우더라도 정부 인가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 동안 다른 통신사가 유사한 요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실제 국내 통신시장에서 큰 차이점이 없는 각사 요금제도 이같은 이유가 일부 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통신사의 요금결정 권한을 정부가 민간 회사에 넘겼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실제 시민단체의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

인가제를 폐지하는 대신 유보신고제를 도입하면서 정부가 15일 내에 새 요금제를 반려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15일 내에 요금제의 문제점을 살피기 어렵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지만, 과거 요금 인가 과정과 달리 시장에 출시된 요금제는 소비자에 공개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심사가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아울러 반려 수준의 요금제를 통신사가 출시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알뜰폰 도매제공 2년 연장

알뜰폰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도 이번 사업법 개정안으로 마련됐다.

도매제공의무사업자가 다른 전기통신사업자에 자사의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전기통신서비스의 제공에 필요한 전기통신설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기간을 늘린 것이다.

유효기간은 2022년 9월22일까지다.

법률적 용어로 다소 어려운 설명이지만, 간단히 말해 알뜰폰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가 추가로 3년 연장이 됐다는 뜻이다.

알뜰폰 사업은 도매제공의무를 가진 SK텔레콤이 망을 제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설비 구축 없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동통신 상품을 내놓는 형식이다.

SK텔레콤이 도매제공 의무를 가지면 KT와 LG유플러스는 이 시장에 대응하고 경쟁하기 위한 도매상품을 내놓고 알뜰폰 회사에 망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과점 상태인 이통 3사 시장에 별정통신사업자인 알뜰폰 회사가 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고 이용자의 선택 폭을 넓히는 것이 알뜰폰이 도입된 경쟁촉진 정책 방향이다.

도매제공 의무기간이 끝나가면서 알뜰폰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지 여부에 현재 알뜰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고민이 컸다. 하지만 도매제공 유효기간 연장에 따라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추가적인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 디지털성범죄 2차 유통 피해 막는다

인터넷 기업들이 검열 또는 사찰이란 표현을 써가며 우려를 표했던 n번방 재발 방지법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속한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n번방 방지법은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속하는데, 사업법 개정안에서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서 정하는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는 유통방지 의무를 두는 내용이다.

텔래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공분을 많이 사면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무조정실 산하에 TF가 만들어지고, 여기서 나온 디지털성범죄 대책에서 시작된 법이다.

법 개정 이전에는 성폭력특별법이 정하는 촬영물의 유통방지 의무만 있었는데,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도 유통방지 의무가 추가되는 것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아동과 청소년 성착위물의 유통이란 점에서 아청법 관련 조항이 기존 사업법 22조의5에 추가되는 것이다.

n번방 방지법을 두고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회 상임위와 소관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성범죄물의 최초 유통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2차 유통에 따른 피해를 막는데 중점을 뒀다.

예컨대 한 SNS에서 디지털 성범죄물의 유통이 발견될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외에도 이번 n번방 방지법 등에 따라 도입된 특수경찰 제도 등으로 범죄행위를 막을 수 있다. 다만 쉽게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성범죄물 특성상 다른 인터넷 플랫폼으로 유통될 수 있다.

이 경우 디지털성범죄의 피해자는 더욱 큰 피해를 받게 된다. 앞서 웹하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성범죄 대응책도 같은 점을 고려했는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유통방지 의무 범위를 보다 확대하게 된 것이다.

삭제나 접속차단 조치를 위해 SNS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사실상 기우에 속한다. 이는 헌법이 정한 기본권을 넘어서는 위헌 법률이 되고, 이와 관련한 통신비밀보호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병립할 수 없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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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유통방지 의무는 공개된 온라인 상에서 적용된다. 유통방지 의무와 함께 시행령으로 정하게 되는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도 부여된다. 이는 인터넷 댓글에서 비방,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신고를 하는 것처럼 불법 촬영물을 발견한 이용자사 인터넷 사업자에 신고하는 기능을 도입하는 정도가 해당된다.

또한 방통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함께 불법 촬영물의 2차 유통을 막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