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터넷 정책만 '나쁜 규제'로 역주행하는가

[데스크칼럼] 20대 국회 막판 졸속 입법 우려 커

데스크 칼럼입력 :2020/05/12 10:42    수정: 2020/05/13 00:01

3년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인터넷·스타트업 기업들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이었던 2017년 4월14일 디지털경제협의회 초청포럼에서 우리나라를 창업열기가 뜨거운 창업국가로 만들어 혁신기업을 통한 혁신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특히 국내 인터넷 기업과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네거티브 규제체제로의 대전환과 ‘나쁜 규제’를 없애는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 혁파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고, 이전 정부보다 관련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였다. 적어도 세금으로 강을 갈아엎거나, 기업들을 압박해 보여주기식 ‘창조적 행정’을 하지 않을 것이란 안도감도 컸다.

하지만 2020년 5월 현재 인터넷 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은 20대 국회를 향해 ‘졸속 법안심사’를 당장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년 전 반짝 빛났던 눈빛은 붉게 충혈된 모습이다. 임기 종료를 앞두고 국회가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은, 심지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이용자들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비판이다.

이들이 반대하는 개정 법안은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각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쉽게 정리하면 'n번방'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사업자들이 책임지고 성착취물 같은 불법 영상물을 사전에 감지하고 이를 차단 조치하라는 내용이다. 카카오톡, 이메일 등 사실상 모든 이용자의 디지털 사적 영역을 사업자가 감시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또 방송통신재난으로 데이터 소실을 막는다는 명분을 앞세워 국내 민간 데이터센터(IDC)를 사실상 국가가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관련 시장을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외산 기업들이 과점한 상태에서 민간 IDC의 내부 데이터까지 국가 관리 하에 운영될 경우 공정한 경쟁환경이 깨지고, 과도한 중복규제와 불필요한 의무 부과로 사업자 피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서비스 안정 수단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에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대부분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모호하고 과도한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실무상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서비스 장애의 원인이 통신사의 문제일 수 있는데, 과연 당국이 통신사를 상대로 원인을 파악하고 조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권한이 있는지 의문이란 입장이다. 통신사와의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즉, 각 법률 개정안들이 기업들뿐 아니라 국민의 생활에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더 큰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데도 제대로 된 의견수렴과정 없이 급히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국내 인터넷 기업과 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문제 해소와 관련해 '낙제점'을 주고 싶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들린다. 오히려 없던 규제가 생겨나고 역차별은 더 심해지는 법안들이 속속들이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정부와 국회가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 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개인 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과 생존경쟁 하는 인터넷 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뻔하다.

과거 정부 때처럼 땜질식 법안을 만들어 실효성 없는 대책만 쏟아내선 안 된다. 특히나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워 외산 기업들과 국내 통신사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선 안 된다. ‘나쁜 규제’를 없앤다 해놓고, ‘더 나쁜 규제’를 만드는 문제를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