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책, A학점...코로나19 위기 상황서 빛났다

[혁신성장 정책 3년 성적표] ⑪과학기술 정책

방송/통신입력 :2020/05/12 15:49    수정: 2020/05/12 16:53

지디넷코리아는 5월20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3년’을 12개 분야로 나눠 평가하는 시리즈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해 업계와 학계의 전문가 41명으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소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 시리즈 기사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더 알차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⑪과학기술 정책, A학점...코로나19 위기 상황서 빛났다

“우리나라는 연구개발 투자를 꾸준히 적극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 긴급히 잘 대응할 수 있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과학기술계 역할 제고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속한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 정부 R&D 지원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식약처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긴급 사용승인을 받은 5개 기업 중 4개 기업은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 정책 3년 성적' 이렇게 매겼습니다]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을 강조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2019년 대비 정부 총 지출 증가율(9.1%)의 약 두배인 18%가 증액된 24.2조원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사상최초로 R&D 예산 20조원을 넘긴 데 이어 또 다시 국가 과학기술 연구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ICT 분야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최기영 장관.

공격적인 과학기술 R&D의 배경에는 최근 우리나라가 직면한 위기 상황이 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국산화가 필요해졌고,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진단 치료제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과학기술 R&D 확대를 통한 위기상황 대응에 대해 전체적으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기초연구 분야 R&D 확대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한층 높아졌고, 수출규제 및 전염병 확산과 같은 위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다.

■ 한 발 빠른 코로나19 대응에 전 세계가 주목

최근 글로벌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중심에는 국내 업체가 내놓은 ‘코로나19 진단 키트’가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진단키트 수입을 문의 요청한 국가는 47개에 이른다. 39개국은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빛난 우리의 진단키트는 그간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분석법을 연구해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진단키트 기업은 국내 확진자가 없던 1월부터 코로나19 진단 시약을 자체 개발하여 3주 만에 식약처 긴급사용 승인을 통해 상용화됐다.

이승복 서울대학교 뇌인지학과 교수는 “바이오·의학 분야 연구자들이 많이 배출돼 국내 경쟁력이 높아졌고, 감염병 진단에 대한 아이디어와 역량을 확보하게 된 것은 분명한 성과”라며 “정부가 생명과학 쪽에 기반이 되는 과학정책을 탄탄하게 수립한 덕분에 경쟁력이 확보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에 확보한 전염병 진단 기술이 바이오 분야 전체적인 경쟁력이 확대됐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상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특히 긍정적인 부분은 화려해 보이는 신약 등 분야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단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확인했다는 것”이라며“ 이는 일종의 기초 체력이라고 볼 수 있는 바이오 분야 경쟁력이 강화됐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거 메르스·사스 등 전염병 사태 이후 수립한 R&D 정책의 약점을 코로나19로 확인한 만큼, 다시금 전염병 방지를 위한 기술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도 전했다.

임기병 경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과거 메르스·사스 등 감염병 발발 이후 수립했던 대응책의 미흡한 점을 확인했다”며 “향후 전염병 발발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상설적이고 상시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자율적인 연구 체계가 가시적 성과 부른다

정부는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올해 자유공모 기초연구 예산을 2조300억원으로 늘렸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연구비 이월 허용 ▲연구직접비에서 행정인력인건비 사용 허용 ▲종이 영수증 제출 전면 폐지 ▲연구를 주업으로 하는 청년연구자 근로계약 체결 등 제도도 정비했다.

전문가들은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보장하는 제도가 과학기술계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보다 탄탄한 과학기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자의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특히 박상욱 교수는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R&D 정책이 이미 마련돼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연구자의 자율성이 실제 성과로 이어진 실례로는 최근 김빛나리 교수 연구팀이 코로나19의 RNA 전사체를 세계 최초로 분석해 낸 것을 꼽았다.

RNA·DNA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과 연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김빛나리 교수가 코로나19에 대응해 재량껏 연구를 진행한 결과,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박상욱 교수는 “우리나라는 긴급한 연구 수요가 발생할 때, 연구자들이 융통성있게 대응해서 연구할 수 있도록 재량을 인정하는 지원 체계를 확보하고 있다”며 “외국의 경우에는 연구비 지원을 받은 연구 외에는 다른 연구를 못하지만 우리나라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이미 있고, 이를 통해 코로나19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과학기술 R&D 방향은 맞다…현장 착근은 과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수립한 기초연구 확대 정책에 대해서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정부가 세운 과학기술 혁신체계가 일선 현장에 착근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승복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이전 어느 정부들에 비해 과학기술 역량 강화 및 제도 개선에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 현장에 착근되고 체계적으로 변화했는지 고민하면 아직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른다”며 “현장에 정착되는 문제는 시간이나 시스템이 부족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인 만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욱 교수는 이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무관심이 일선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과학정책의 부재가 일선 연구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상욱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고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없다는 점이 역설적이게도 현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돕고 있다”며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콘트롤하는 청와대의 과학기술보좌관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과학기술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인 과학기술계 발전을 위해 초기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첫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 체계가 아직 부족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다.

임기병 교수는 “학생 연구자가 박사 학위를 받으면 포닥으로서 연구 분야에 첫발을 내딛는데, 이 포닥을 지원하는 예산이 아직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정된 예산 탓에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신진 연구자가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 과학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포닥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며 “세심한 예산 배정이 필요하고, 젊은 과학자나 신진 연구자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제도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A 학점..과학기술 선진국 향한 지속적인 관심 필요

올해 과학기술계 R&D 예산은 24조원을 넘겼다. 국가 GDP에 대입하면 약 4.9%를 과학기술 R&D에 투입하는 셈이다. 민간에서 진행하는 R&D를 합치면 100조 이상으로 규모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이 많이 성장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과거에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완연히 리딩 국가가 된 만큼 과거와는 다른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박상욱 교수는 “기본적으로 연구자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하되, 도전성과 혁신성이 높은 과제 및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 등에는 약간의 전략성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과학기술 분야 선진국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세우는 기획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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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분야 국가 역량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성이 관건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권이나 여야의 문제를 떠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승복 교수는 “과학기술 정책은 어느 당이나 정부의 논리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되고, 범정부적으로 지속해서 추진돼야 한다”며 “기초연구 확대나 젊은 연구자 양성 등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된 만큼 정부는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하고, 정부와 국회는 책임감을 갖고 다음 정권에서도 지원이 이뤄수 있도록 합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