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꼼수에 시민단체까지 발끈한 이유

[이슈진단+] 넷플릭스 망 이용료 협상 분쟁

방송/통신입력 :2020/04/24 14:25    수정: 2020/04/24 21:08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 협상 과정에서 벌인 행태를 두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통신사업자(ISP)와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의 망 이용료 분쟁은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그런데도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한 넷플릭스의 민사소송 제기는 시장 지배력을 내세운 글로벌 CP의 무책임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지난 14일 넷플릭스의 한국 법인인 넷플릭스서비스코리아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통해 SK브로드밴드가 요청하는 망 운용, 증설, 이용 등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망 이용료 분쟁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트래픽 폭증을 유발시키면서도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 납부 의무가 없다며 트래픽 관리를 지원하는 캐시서버로 맞섰다.

두 회사의 갈등이 좁혀지지 않자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재정 절차에 돌입했다. 재정 절차는 전기통신 사업자 간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조치다. 두 회사는 방통위의 재정 절차에 따라 중재안이 나오길 기다려 왔다.

재정 절차는 이르면 다음달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돌연 넷플릭스는 법적 해결을 택했다. 관련 법에 따라 재정 절차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소를 제기하면 정부의 중재는 중단된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서비스 이용자보호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 기관이다. 이용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CP와 ISP의 분쟁을 해결하려 했지만, 넷플릭스는 이 절차를 진행하던 중 이를 무시하고 곧바로 법적 분쟁에 들어간 것이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넷플릭스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경실련은 지금까지 주로 대기업인 통신업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왔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글로벌 회사인 넷플릭스의 잘못을 꼬집었다.

경실련은 성명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외 사업자 간 불공정 거래 행위를 선제적으로 규제해 인터넷 시장에서 망 접속료 형평성과 생태계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 경실련 “넷플릭스, 적반하장”

경실련이 국내 통신사가 겪는 망이용료 분쟁에 대한 성명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도 성명을 내고, 통신사들이 글로벌 CP에 망 접속료를 사실상 면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경실련은 성실히 망 접속료를 지불하는 국내 CP와 거래 상 차별 행위라는 이유를 들어 공정위에 통신 3사를 신고하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화살이 글로벌 CP를 향했다. 글로벌 CP가 국내 인터넷 시장에 점유율을 높이며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고, 망 이용료 협상에서 시장지배력을 남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넷플릭스의 소송 제기는 “사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적반하장이란 의미다.

국내 네트워크를 독과점하는 실질적인 시장지배력을 행사했으면서 정부의 중재 절차를 밟다가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소를 제기한 것은 ‘재정 당사자 적격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넷플릭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부가통신사업자로 지위가 명확하다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해야 할 의무, 전기통신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 망 증설과 같은 재정협상에 응할 의무, 이용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져야 하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 망 이용료? 서비스 품질? 한국은 패싱

넷플릭스는 글로벌 1위의 월정액 기반 OTT 서비스 회사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나라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에서도 진통을 겪었고, 결국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현지 유선통신사인 컴캐스트와 망 이용료 협상을 마쳤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 지불 사례가 없고 그럴 의무도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 서비스 이용자들이 매달 통신사에 통신료를 납부하고 있는데 넷플릭스 법인이 망 이용료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넷플릭스가 갈등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국내 법원 판결을 입맛에 맞게 유도해 망 이용료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SK브로브밴드와 망 이용료 분쟁한 바 있는 페이스북도 망 이용료 협상 우위를 위해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거짓 증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결국 망 이용료 분쟁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CP의 서비스 품질 책임 문제로 귀결된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글로벌 CP가 국내 ISP와 마찰을 겪을 때 항상 자사 서비스의 품질은 ISP의 몫이라는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CP는 국내에서 이어온 주장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유럽연합(EU) 집행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동제한이 확대되면서 유럽 지역의 인터넷 망 과부하를 우려했다. 이에 따라 EU 집행부는 넷플릭스, 구글, 아마존 프라임 등에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비스 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 CP에 책임 소재를 두고 EU 당국의 우려에 동참해달라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이에 따라 유럽 전역에 비트레이트를 25% 줄였다. 시간 당 송출하는 비트 수를 줄이는 조치를 직접 취한 것이다. 트래픽 4분의 1을 줄였지만 UHD 화질이 HD 급으로 되지 않는다며 자사 서비스 품질을 내세우기도 했다.

즉, 서비스 품질도 넷플릭스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고 트래픽 규모도 넷플릭스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라는 게 넷플릭스 주장이다.

■ 페이스북 1심 판결 단초 역할

넷플릭스가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는 SK브로드밴드에 자사가 네트워크 품질과 관련된 망 운용, 증설, 관리 등의 채무가 있는지 법원에 살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망 이용료도 내고 서비스 품질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사실상 증명됐지만, 한국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망 운용, 증설, 관리 책임을 법원 판결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사 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도 한국에서 망 이용료 협상을 맺을 때 법적 근거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관련기사

특히, 지난해 8월 방통위와 페이스북이 공방을 벌인 1심 소송에서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주면서, 넷플릭스가 방통위의 중재가 아닌 법원을 선택한 이유가 됐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는 따르고 있는 CP의 의무를 한국 규제당국의 중재로는 불리하니 거대 로펌을 내세워 법원에서 공방을 벌인 뒤 회피하겠다는 전략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