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에서 최고까지...SKT 역사로 본 5G

이동통신 불모지에서 5G 상용화까지…모바일 대중화 선봉

방송/통신입력 :2020/04/02 11:48    수정: 2020/04/02 17:18

대한민국은 2G에서부터 5G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역사를 이끌며 ICT 생태계의 발전과 글로벌 위상을 높여 왔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 1년을 맞은 지금, 그 진행 과정에는 유선 전화도 제대로 구축돼 있 않은 한국에서 이동통신 시대를 열고 10년 간 불모지에서 흘린 SK텔레콤의 열정이 묻어 있다. SK텔레콤의 2G에서 5G, 그리고 하이닉스 신화를 만들기까지 흥미로운 과정을 짚어본다.

1984년 설립돼 올해 36주년을 맞은 SK텔레콤은 1990년대 민영화를 시작으로 2G부터 5G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을 이끌어 왔다. 이동통신 서비스를 비롯해 미디어, 보안, 커머스,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등 핵심 역량을 보유한 글로벌 뉴ICT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SK텔레콤 직원이 서울에 위치한 한 빌딩 위에서 5G 기지국을 점검하며 5G 상용화 1주년을 기념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36살 된 SK텔레콤, 이동통신 초석을 쌓다

선경그룹은 이동통신 초창기였던 1980년대부터 ‘텔레커뮤니케이션’ 조직을 구성하고, 10년간 이동통신 진출을 위한 기틀을 만들었다. 이후 1994년 김영삼 정부 당시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1996년 당시 실현이 어려운 기술이라 불리던 2G CDMA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휴대폰 산업과 네트워크 장비 산업을 일으켰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의 도전 정신은 5G 세계 최초 상용화와 글로벌 5G 선도 국가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한국을 지탱하는 핵심 기업으로 성장한 SK하이닉스도 SK텔레콤이 2012년 과감한 도전을 통해 인수하고 키워온 결과물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SK텔레콤이 통신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의 역사가 곧 이동통신의 역사라 할 만큼, SK텔레콤은 시장 변화와 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다.

1984년 3월부터 통신공사의 자회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차량전화와 무선호출서비스로 이동통신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1988년 4월에는 공중전기사업자로 지정돼 한국이동통신으로 거듭나면서 독립사업자로 새 출발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로 들어섬서는 신호탄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은 독립사업자로서 빠르게 기틀을 잡아가는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휴대용 이동전화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휴대폰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1990년을 전후해 통화품질 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국이동통신은 각종 장비 국산화와 운용 기술 자립을 이끌며 국내 이동통신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91년 12월에는 이동통신 100만가입자를 돌파하면서 이동통신 대중화 시대를 활짝 열 수 있었다.

1990년대로 진입하며 한국이동통신은 국내 통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거쳐 선경그룹에 인수돼 민영화됐다.

선경그룹은 1980년대부터 오랜 기간 이동통신 사업을 준비했으며, 이미 확보한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는 일각에서 노태우 정권에서 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다는 오해와 다른 사실이다.

오히려 선경그룹은 자사의 이통 사업권 확보에 반발한 당시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경영권을 인수했으며, 제2이동통신 사업권은 신세기통신(포철-코오롱)이 확보한 바 있다.

이처럼 한국이동통신이 선경그룹에 인수돼 민영화되고 제2이동통신 사업자가 선정됨으로써 1980년대 말부터 국내 통신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해온 정부의 이동통신사업 경쟁 도입은 마무리됐다. 이처럼 이동전화 사업이 경쟁체제로 돌입하면서 우리나라 이동통신 서비스는 질적 양적 측면에서 21세기 정보통신강국으로 향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됐다.

■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위한 첫 노력 백지화

선경그룹은 故 최종현 회장의 확고한 의지 하에 1980년대부터 10여 년 간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매진해왔다. 최 회장은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이후 다음 단계의 장기 경영목표를 정보통신사업 진출로 정하고, ‘2000년대 세계 일류의 정보통신기업’을 선경그룹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1986년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하고, 미국이 보유한 정보통신 관련 정보기술을 습득케 했다. 또, 1989년 10월에는 미국 뉴저지 주에 현지법인 유크로닉스사를, 1990년에는 선경정보시스템을, 1991년에는 선경텔레콤(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 등을 연이어 설립하며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1992년 체신부의 1, 2차에 걸친 심사 결과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통신사업 진출 준비를 착실하게 해오고 있었던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이 선두를 차지하며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다. 선경 포철 코오롱 쌍용 동양 동부 등 6개 그룹이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며 선경이 정당하게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면서 선경그룹의 제2이동통신 사업권 획득에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1992년 8월20일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경쟁을 거쳐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던 선경그룹은 일주일 만에 반대 여론을 감안해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당시 선경그룹은 “국민들의 불신을 씻어내기 위해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는 것이며, 오해 받을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재참여, 실력으로 승부해 정당성을 인정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체신부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문제를 차기 정권으로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불과 1주일 만에 백지화됐다.

■ YS정부에서 재도전, 이동통신 시장 진출 물꼬

이후 YS 정부는 제 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해 전경련에 단일 컨소시엄 구성을 맡기고,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도 동시에 추진했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방법을 민간 자율에 의한 단일 컨소시엄 방식으로 확정, 컨소시엄 구성을 전경련이 결정하기로 했으며, 한국통신이 보유한 한국이동통신 주식지분(64%) 가운데 민간업체가 경영권을 획득하는 데 충분한 규모의 주식(54%)을 매각하도록 함으로써 이동전화 사업 신규허가와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연계해 추진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던 최종현 회장은 선경그룹이 제2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 수 있다며 1992년 사업권 반납 결정에 이어 다시 한 번 불참키로 결정하고, 대신 막대한 인수 자금이 예상되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선경그룹은 1994년 1월 공개입찰을 통해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확보하고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성공했다. 선경그룹은 가장 반대가 심했던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공개입찰을 통해 경영권을 인수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했다.

특히 1주당 8만원 대에 불과했던 한국이동통신 주가가 공개매각 방침이 발표된 이후 급등함에 따라 당시 선경그룹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인수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선경그룹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정보통신사업에 대한 비전을 보고, 시세보다 훨씬 비싼 주당 평균 33만 5천원의 가격(총 4천271억 2천만원)으로 한국이동통신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한국이동통신 경영권을 인수했다. 선경 외에 경남창업그룹 한신기술개발금융 파이스트 인베스트먼트 한국유통조사연구소 등 4개사와 개인 2백85명이 참여했지만 예정 가격 미달로 주식 확보에 실패했다.

한편, 1992년 제2 이동통신 사업권 경쟁에 참여했던 기업 중 선경그룹이 사업권 확보 포기를 선언하자, 포철 코오롱 동양 동부 등이 경쟁을 벌였으며, 그 결과 1994년 2월 28일 신세기 이동통신(포철-코오롱)이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 한국이동통신 CDMA 신화를 쏘다

민영기업으로 새 출발한 한국이동통신은 1996년 1월, 세계최초로 CDMA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면서 세계 이동통신사에 한 획을 그었다. CDMA 방식은 이후 세계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CDMA기술 종주국으로서 한국 이동통신의 위상은 더욱 강화됐다.

1997년 3월에는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마켓 리더십 강화로 경쟁사업자를 따돌리면서 국내 이동통신 대표주자로서의 면모를 굳건히 하고, 가입자 면에서도 글로벌 이동통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SK텔레콤은 1999년 7월 업계 최초로 신세대 전용 이동전화 브랜드인 ‘TTL’을 출시, 이동전화 마케팅의 시작을 알렸다. 또, 인터넷 PC통신을 연동한 다양한 부가 서비스 개발에 주력해 1997년 8월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PC통신 넷츠고(NETSGO) 서비스를 개시했다.

또한 음성 위주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통신이 진화하는 시대에 대비해 1999년 8월 무선으로 최고 114Kbps를 구현하는 IS-95B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제공하고 12월에는 무선 데이터서비스 엔탑(n.TOP)을 출시했다.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개발을 선도해 온 SK텔레콤은 2000년 1월에는 이동환경 하에서 국가 간 IMT-2000 시험통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을 했으며, 2000년 12월에는 최고 점수로 IMT-2000 비동기사업자로 선정된 가운데 2003년 12월부터 서울지역을 시작으로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2000년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CDMA2000 1X 상용서비스 개시, 2002년 1월에는 동기식 IMT-2000(CDMA2000 1X EV-DO) 상용서비스도 개시하면서 유비쿼터스 시대를 앞장서 열어가는 리더로서의 위상을 구축했다.

그리고 2002년 11월에는 CDMA2000 1X EV-DO 망을 통한 멀티미디어 서비스인 ‘준(June)’을 제공하면서 유무선 멀티 미디어서비스를 강화했으며, 유무선 통합 인터넷 서비스인 네이트(NATE)를 탄생시켰다.

SK텔레콤은 2004년부터 시행된 010 번호통합제도에 맞춰 음성통화 품질 우위를 대표하던 기존 브랜드 ‘스피드 011’의 이미지를 벗고, 2006년 7월 3G 데이터 통신시대의 가치를 집약한 브랜드 ‘T’를 선보였다.

SK텔레콤은 3G 네트워크 경쟁에서도 세계 최초의 신화를 이어가며 기술 우위를 확고히 다졌다. 2006년 5월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기반의 HSDPA 상용서비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데이터 통신 시대를 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업로드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HSUPA 5.76Mbps급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SK텔레콤은 2004년부터 유무선 음악포털 ‘멜론’과 영화포털 ‘씨즐’, 3D 게임포털 ‘GXG’를 출시하며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 시장을 주도해 나갔다. 또한 2007년 1월에는 유무선 인터넷 포털 네이트를 유선 포털처럼 쉽고 편한 인터페이스의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개편했다.

한편,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 간 컨버전스를 통한 신규 복합서비스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04년 세계 최초로 DMB용 위성을 발사하고, 2005년 5월에 위성DMB 방송을 시작하며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알린 SK텔레콤은 USIM칩기반 신용카드 및 교통카드, 멤버십, 증권서비스 등 3G 시대를 맞아 진화한 형태의 모바일금융 서비스도 선보였다. 국가대표 텔레매틱스 서비스인 네이트 드라이브도 진화를 거듭해 2007년 7월 ‘T Map’으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네트워크의 진화와 차별화된 무선 인터넷 서비스의 등장, 컨버전스의 고도화로 인한 새로운 복합서비스의 개발은 개인화된 미디어인 휴대전화를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됐다.

■ 5G, MNO 넘어 뉴ICT 포트폴리오 완성으로

2008년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통해 유무선 종합 사업자로 거듭나며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2009년부터 기업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SK텔레콤의 ICT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유무선 통합 솔루션을 공급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갔다.

2009년 말부터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ICT 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9월 국내 최초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마켓 ‘T 스토어’를 오픈하고, 양질의 애플리케이션 공급을 담당할 개발자 양성 등 모바일 생태계 조성을 위해 힘을 쏟았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차세대 이동통신망에 대한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2010년 7월 HSPA+ 세계 최초 상용화에 이어, 2011년 7월에는 국내 최초로 4G LTE 서비스를 상용화하고, 2013년 6월에는 기존 LTE에 비해 두 배 빠른 속도를 구현하는 LTE-A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유선보다 빠른 초고속 무선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2014년 1월에는 최대 300Mbps의 3band LTE-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SK텔레콤은 새로운 스마트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2011년 플랫폼 사업을 MNO와 함께 양대 신성장축으로 선정하고, 같은 해 10월 플랫폼 사업을 분사해 SK플래닛을 출범시켰다. 2012년 2월에는 하이닉스를 인수함으로써 통신, 서비스 플랫폼, 하드웨어(반도체)를 아우르는 글로벌 종합 ICT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완성하였다.

지난해 4월3일 SK텔레콤은 전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또 같은 해 8월21일 5G 100만 가입자 돌파 등 각종 세계 최초 5G 타이틀을 달성하며 현재까지 5G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써 SK텔레콤은 2G~4G 통신에 이어 5G에서도 국민이 선택한 1등 이동통신사가 됐다.

SK텔레콤은 5G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x클라우드 게임을 베타 서비스하고 있으며, B2B에서도 모바일 엣지 컴퓨팅(Mobile Edge Computing)과 같은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SK텔레콤의 5G 리더십은 실질적인 글로벌 사업 성과로 이어졌다. 영역과 경계를 초월한 ‘초협력’ 기조 하에 마이크로소프트, AWS, 카카오 등 사업자와의 협력뿐 아니라 미국 최대 지상파 방송사 싱클레어와 설립한 캐스트닷에라, 컴캐스트와 설립한 ‘e-sports JV’를 출범시켰다. 또, 도이치텔레콤과의 ‘Tech. JV’, 싱텔과 협력한 게임플랫폼 ‘JV’도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매출은 3조4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Btv 가입자는 520만명으로 전년 대비 10% 늘면서 매출도 10% 이상 성장했다. 티브로드와의 통합 법인이 성공적으로 출범하면 유료방송 고객은 800만명, 웨이브(Wavve)까지 합쳐 1천만명에 이르게 된다.

보안 사업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두 자리 수 성장이란 성과 이뤄냈다. 물리보안의 핵심사업인 출동보안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신규 영역인 홈보안과 무인주차도 빠르게 안착해 물리보안을 담당하는 ADT캡스 매출이 19% 가량 늘었다. 또, 향후 클라우드 시대를 대비해 인포섹을 중심으로 클라우드 통합 관제 영역에서 기회를 보고 있으며, 양자 컴퓨팅 시대 대비해 확고한 보안이 가능한 양자암호(QRNG) 보안영역에도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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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머스 사업에서 11번가와 SK스토아는 내실 있는 사업 성장을 이룬 덕분에 모두 연간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도 시장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내실 경영을 지속할 예정이며, 11번가는 파트너십을 확대해 차별적 상품경쟁력을 강화하고 쇼핑 검색에 재미까지 더하는 고도화된 ‘커머스 포털’로 자리매김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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