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뉴IP 뭐길래…"더 똑똑한 인터넷 vs 더 정교한 감시망"

'IP주소 유연관리'가 핵심…"셧다운 명령, 차단수단 악용" 지적도

인터넷입력 :2020/03/31 11:28    수정: 2020/03/31 14:3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터넷은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소련과 대립하던 미국이 ‘어떤 폭격 상황에도 파괴되지 않는 통신망’으로 만든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의 시초다.

그래서 인터넷은 관리자의 판단보다는 ‘안전한 정보 전달’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보를 분해해서 전송한 뒤 수신자의 인터넷 주소(IP)에서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다.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정부와 기업들이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뉴IP’는 이런 기존 상식에 반기를 든다. 어떤 정보가 오가는 지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서 망을 좀 더 유연하게 관리하자는 제안이다.

(사진=화웨이)

뉴IP는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로 처음 알려지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8일(현지시간) 화웨이 등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뉴IP’란 새로운 인터넷 표준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파이낸셜타임스는 ‘뉴IP’가 구체적으로 작동되는 지에 대해선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다.

■ "IP 생성-소멸 좀 더 쉽게"…유연한 관리 강조

뉴IP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위해선 화웨이가 제출한 논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웨이는 ‘미래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뉴IP 프레임워크와 프로토콜(New IP Framework and Protocol for Future Applications)’이란 논문을 함께 제출했다.

이 논문에서 화웨이는 현재 인터넷의 근간인 TCP/IP 시스템은 한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여러 망들을 연결하는 데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고정IP는 요즘처럼 다양한 네트워크가 있는 시대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위계적인 IP 주소 방식 때문에 쓸데 없이 많은 용량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변화에 따른 망 진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화웨이는 이 논문에서 “현행 IP 주소는 특정 목적지로 향하는 물리적인 객체를 확인하도록 설계됐다”면서 “그러다보니 콘텐츠나 서비스 같은 가상의 객체는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뉴IP의 인터넷 헤드 구조. (사진=화웨이)

따라서 홀로그램이나 가상현실(VRP) 같은 신기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선 좀 더 유연한 IP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 화웨이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뉴IP는 크게 세 가지를 집중 강조했다.

첫째. IP 주소 길이를 좀 더 유연하게 조정. 망간의 끊김 없는 통신 지원.

둘째. 물리적, 가상적 객체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의미론적 IP 주소 구현.

셋째. 패킷 상에서 수행되는 특정 기능을 구분할 수 있도록 이용자가 IP 헤더 정의 가능.

화웨이는 논문에서 특히 “IPv4나 IPv6 헤더와 달리 뉴IP 패킷 헤더에선 소스와 목적지 주소 길이를 좀 더 다양하게 지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뉴IP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스마트홈을 사례로 들었다.

가정에 특이한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가정해보자. 보안 카메라가 스마트홈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 뒤 집 주인의 스마트폰으로 관련 정보를 전송하게 된다. 집 주인이 외부에 있을 경우엔 인터넷을 통해 전송된다.

집 주인은 정보를 토대로 결정을 내린다. 애완 동물들의 움직임 때문에 포착된 잘못된 정보일 경우엔 ‘수집 중단’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을 받은 보안 카메라는 다시 대기 모드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뉴IP는 상당히 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화웨이는 주장했다. 모든 기기들이 스마트홈 망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15, 16 같은 간단한 IP 주소를 할당하기 때문이다. 또 가정 내에 있는 기기 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8비트의 짧은 주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화웨이는 뉴IP시스템가 스마트홈 같은 개별망 연결에 특히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사진=화웨이)

보안 카메라가 스마트홈 외부로 수집한 이미지를 보낼 때는 가정 내에 있는 보더 라우터(border router)에 먼저 보내야 한다. 집 주인이 있는 외부 네트워크에서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는 뉴IP가 라우터에 새로운 주소를 부여한다. 화웨이 사례에선 4.3.2.1이란 IP 주소가 부과됐다. 그런 다음엔 이 패킷을 인터넷망을 통해 이용자의 스마트폰으로 보내게 된다.

집 주인이 별 일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보안 카메라에 정보 수집을 중단하라고 명령하게 된다. 이 때는 뉴IP가 스마트홈에서 이미지를 전송할 때 보더 라우터에 부여했던 IP 주소를 없애버린다. 바로 보안 카메라로 명령을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뉴IP는 이런 방식으로 외부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지연 시간과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는 게 화웨이의 주장이다.

화웨이는 “뉴IP는 짧은 주소로 데이터 패킷을 전달할 수 있는 라우터를 만들기 때문에 (6LoWPAN과 달리) 압축이나 해제 과정이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 "TCP/IP보다 효율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독재 수단 악용 우려"

결국 뉴IP는 좀 더 유연하고 똑똑한 인터넷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어떤 서비스가 오가는 지 명확하게 정의하기 때문에 맞춤형 관리가 가능한 구조다.

이런 부분은 분명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홀로그램이나 VR, AR 처럼 대역 소모가 많은 서비스일 경우엔 망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우려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다. 화웨이가 스마트홈 사례에서 소개한 ‘보더 라우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외부 이용자가 스마트홈 내부 감시 카메라에 명령을 보낼 땐 뉴IP가 필요에 따라 만들었던 라우터의 IP를 없애버린다. 효율적인 주소 자원 관리 때문이다.

그런데 뉴IP의 효율적 망 관리를 가능케 해주는 ‘셧다운 명령’이 오히려 감시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IP 주소 헤더에 ‘어떤 서비스’인지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역시 망 감시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서방 국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미국 IT매체 엔가젯은 “뉴IP가 이론적으로는 TCP/IP보다 더 효율적으로 망 관리를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독재 정권이 국민을 감시하거나 검열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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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뉴IP에 대해선 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오는 11월 인도에서 개최될 ITU 회의에선 뉴IP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