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코로나19의 비정상…그게 정상일 수도 있다

원격근무·강의 진지한 성찰 필요

데스크 칼럼입력 :2020/03/24 15:31    수정: 2020/10/05 13:4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비정상적인 상황이 생각보다 오래 계속되고 있다. 떠들썩 해야 할 대학 캠퍼스가 썰렁하다. 겨울잠에 빠진 것 같다. 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당수가 원격근무로 전환하면서 여기 저기서 삐걱거린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상황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혼란스럽다.

회사 관리자들은 눈에서 멀어진 직원들이 못 미덥다. 하루 종일 딴 짓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아웃풋에 조금만 차질이 생긴다 싶으면,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뭘 하느라 늦는지 당장 확인하고 싶다.

직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잠깐 휴식을 하려 해도 괜히 신경 쓰인다. 자리 비운 사이에 호출이라도 올 것만 같다. 예전처럼 부장 앞에 앉아 있는 게 속 편하겠다는 볼멘 소리도 들린다.

대학들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학생, 교수 모두 느닷없는 환경 때문에 괴롭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원격 강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몰입도도 훨씬 떨어진다. 걸핏하면 버벅대는 원격강의 시스템 때문에 짜증이 난다. 온라인 강의에 서툰 교수들을 보면 답답하다. 이런 저런 상황에 치이다 보니 ‘본전 생각’이 절로 난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난생 처음 해보는 온라인 강의가 영 낯설다. 그마나 이공계 쪽은 좀 낫다. ‘문송족’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알아서 하라”고만 하는 대학 측이 야속하기만 하다. 시험은 또 어떻게 치뤄야 할 지 걱정이 앞선다.

■ 갑작스런 원격근무와 강의, 새로운 혁신의 밑거름?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잠깐만 고생하면 끝날 것”이란 생각에 가볍게 시작했는데,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더 괴롭다.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무한정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곧 마무리되고 다시 ‘정상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모두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떤게 정상 상황일까? 까칠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다. 그 동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 상황에 최적화된 시스템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 하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원격 근무가 길어지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 따져보자. 많은 기업들은 전 직원을 한 곳에 모아서 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업무 효율성보다는 관리 효율성에 더 무게를 둔 측면이 강하다.

(사진=디즈니랜드)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임대 비용을 지출한다. 만만치 않은 고정 비용이다.

성과 관리도 애매하다. 인사고과에서 근태 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다. 제 때 출근하고, 제 때 퇴근하는 걸 최우선으로 친다. 원격 근무를 하고 보니 ‘성과 중심’ 평가 시스템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 공간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으로 출퇴근하는 게 효율적일까? 그건 산업화 시대의 산물 아닐까? 요즘처럼 모바일과 인터넷 기술이 발달한 시대엔 다른 상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

관리자들은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원격근무를 해보니 유휴 인력이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대학들은 그 동안 물리적인 건물을 쌓아올리는 데 많은 투자를 해 왔다. 교육 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대학들의 이런 정책 때문에 지금 교수와 학생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꾸어버려서는 안 될 것"

1914년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엄청난 생산 혁신을 이뤄 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노동자 앞으로 일거리를 던져주는 방식. 덕분에 임금을 두 배로 올려주고도 생산성을 대폭 높일 수 있었다.

그 대가로 노동자들은 ‘일하는 기계’로 전락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노동의 비인간화를 고발한 작품이다.

물론 그 때 이후 노동 환경은 꽤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한 곳에 모여서 근태 관리하는 전통적인 노동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그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

“전국민이 같은 시간에 TV앞에 앉아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요?”

로버트 터섹이 ‘증발’에서 전망하는 미래 그림이다. ‘선형적 편성표’에 의존하는 TV 시청 방식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 때가 되면 손자/손녀들로부터 저런 질문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동안 상식으로 생각했던 근무 방식, 교육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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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가 되더라도 지금 절감하고 있는 각종 불편 사항들을 좀 더 진지하게 따져봤으면 좋겠다. 좀 더 최적화된 교육/근무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게 명실상부한 ‘4차 산업혁명’이다. 기술만 바꿔서는 제대로 된 혁명이라 할 수 없다. 김수영의 싯구절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 버리는” 처사일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