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소니 무너뜨린 디지털화...'돈'도 예외 아니다"

[2020 블록체인을 말하다]②고려대 컴퓨터학과 인호 교수

컴퓨팅입력 :2020/02/26 14:05    수정: 2020/06/19 15:07

코닥, 소니, 모토로라는 아날로그 시대에 각 분야 1등 기업이지만 '디지털화'라는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맥 없이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만들고도 필름 카메라의 시장 잠식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신시장을 개척하지 못해, 결국 쇠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소니도 디지털TV 전환기에 삼성과 LG에게 밀려났고, 모토로라도 스마트폰 등장 후 하위권 모바일 디바이스 업체로 위상이 떨어졌다.

역사를 돌아 보면 어떤 분야든 디지털화에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생존을 장담 못하는 위기에 처해 왔다.

돈이 디지털화 된다면 어떨까.

최근 만난 고려대학교 컴퓨터학과 인호 교수는 "돈도 예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미 법정화폐 중심의 '아날로그 머니'에서 탈중앙화된 '디지털 머니'로 바뀌는 과정에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기존 금융 기업들도 디지털 머니 시대를 준비 하지 않으면 코닥처럼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려대 컴퓨터학과 인호 교수(고려대블록체인연구소장)

인 교수는 학계를 대표하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꼽힌다. 2016년 한국블록체인학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직을 수행하며 국내 블록체인 전문가 네트워크 풀을 확장했고, 2018년부터 지금까지 고려대 블록체인 연구소에서 원천 기술 개발과 산학합력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국내 블록체인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한 2014년 비트코인을 처음 접하고 "인류 역사에서 돈의 형태가 또 한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변화가 가져올 파괴적 혁신에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적인 메시지다.

인 교수는 이미 2015년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금융혁명: 디지털화폐에 길을 묻다'를 주제로 강연하며 "디지털 머니가 아날로그 금융 체계에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인 교수가 블록체인이 나가야 할 방향으로 주목하는 분야도 '디지털 자산' 쪽이다. 여기에 더해 개인에게 데이터 주권을 돌려주고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데이터 마켓플레이스까지 크게 두 축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는 3월 중 출간할 책 '부의 미래, 누가 주도할 것인가: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혁명'을 통해 이런 생각을 상세히 소개할 계획이다.

책 출간에 앞서 인 교수를 만나 블록체인이 가져올 자산의 디지털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Q.블록체인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학생 창업을 지원하다가 관심을 가지게 됐다. 8년 전에 학교에 '소프트웨어 융합전공'이 생겼다.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아 '벤처'를 전공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친 거다.

졸업 조건 중 하나가 기업 인턴이라, 개인적으로 아는 회사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받아달라고 부탁을 많이 하고 다녔다. 그 중 하나가 어준선 대표가 창업한 코인플러그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생긴 비트코인 거래소다.

생소한 분야라 점검 차원에서 살펴봤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돈이 또 한번 바뀌는 거라고 느꼈다. 인류가 원래 조개를 화폐로 쓰지 않았나. 돈이 계속 바뀌어서 지금의 지폐가 된 것처럼 이제 디지털 머니라는 새로운 형태의 돈이 만들어진 거라고 봤다."

Q.돈이 디지털화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지금 아날로그 머니가 디지털 머니로 바뀌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기존 아날로그 머니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은행, 보험, 증권, 파생상품도 다 디지털 머니 위에서 다시 생겨날 것이라고 본다. 그게 디지털 자산에서의 기회다.

중요하게 봐야할 부분은 아날로그 머니에서는 기업과 소비자가 연결되는 B2C 구조가 만들어졌지만 디지털 머니에서는 B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은행 없는 은행서비스, 거래소 없는 증권거래, 보험사 없는 보험서비스가 이미 생기고 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광물, 콘텐츠, 지적재산권 등의 소유권을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화해, 디지털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전 세계 경제 발전이라는 게 곧 '돈의 흐름 속도'다. 토큰화를 통해 이 속도가 빨라지면 경제성장에도 플러스가 될 것이다."

Q.돈이 디지털화되면 산업 지형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 거라고 보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머니로 전환이 이뤄졌을 때 기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금융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카메라 분야에서 절대 강자였던 코닥은 디지털 변화에 적응 못해 망했다. 코닥은 120년된 회사로 전세계 직원이 15만명이나 됐지만 12년만에 직원이 1만5천명으로 줄어들면서 쇠락하고 말했다.

디지털 머니 시대가 온다면 아날로그 머니에서 먹고 살았던 플레이어들이 코닥화될 수 있다고 워닝을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5~10년 안에 변화가 올 것 같다."

Q.페이스북 리브라 이후 디지털 머니에 대한 논의가 실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 같다

"페이스북 리브라가 발표되고 폭발력이 대단했다. 달러 사용자가 3-4억 명인데, 24억 명이 쓰는 페이스북 자체 디지털 화폐가 생긴다고 하니 난리가 난 것이다. 여기에 맞서 중국은 위안화를 디지털로 만들겠다고 하고 있고, 미국도 한국도 연구를 시작했다.

앞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법정화폐와 민간화폐가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쫓아 낼 것 같지 않고 서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커 나갈 것 같다."

Q.민간에서 화폐를 발행해도 문제 없을까

"10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은행마다 노트를 발행했다. 미국에서 쓰이는 돈이 한 6천개 있었던 시대다. 경제 대공황이 오면서 은행들이 망하니까 발행한 노트의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일이 생겼고, 연방준비제도(Fed)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민간에서 돈을 발행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정부만 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100년 밖에 안된 아이디어다."

Q.화폐 경쟁시대 원화는 경재력이 있을까?

"원화가 사라질 수 있다. 위안화가 디지털화 됐다고 보자. 아파트 담보 대출을 비대면으로 중국은행에서 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내 시중은행보다 0.5%, 1%만 이자가 싸도 다 넘어갈 것 같다.

그러니까 한국은행도 빨리 디지털화폐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최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데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Q. 5~10년 안에 이런 변화가 올 거라 예측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현재 블록체인이나 디지털 화폐의 효용성을 대중적으로 체감하기는 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디지털 머니는 인터넷 위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빠르고 편하다, 또 중간자가 없으니까 싸다. 소비자는 싸고, 빠르고, 편리한 것으로 가게 돼 있다.

문제는 정부의 규제다. 하지만, 결국 보팅파워를 가진 소비자를 이길 수 없다고 본다. 시간이 걸려도 변화의 흐름대로 갈 수 밖에 없다. 채택과 규제 속도를 고려하면 2030년 되면 대중들한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본다.

또 아직 대중까지 확산되지 않았지만, 대중까지 오면 이미 끝난 게임이니 이 산업에 뛰어들려는 플레이어들은 지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Q. 디지털자산과 더불어 데이터 거래도 블록체인이 갈 방향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블록체인이 가야할 방향은 크게 두가지 '디지털 자산'과 '데이터 거래'라고 본다. 이 두 분야에서 블록체인이 임팩트 있는 사례를 만들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사용자 정보를 이용해 20~30조원씩 벌고 있다. 이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데이터 소유권을 탈중앙화시키는 것 밖에 없다.

블록체인을 통해서 데이터 주권을 찾아오자는 거다. 블록체인 스마트컨트랙트로 누가, 무슨 목적일 때만 내 데이터에 액세스할 수 있고, 데이터를 쓸 때 얼마를 보상해야 하고 또 언제 폐기할 것인지 등의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로 발전하면 데이터가 하나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또 블록체인으로 이미 검증된 데이터이기 때문에 AI가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다.

결국 블록체인은 4차산업혁명 뿌리와 같다. 나무에서 뿌리는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지 않나. 신뢰성 있는 자산과 데이터를 빨아들여서 줄기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으로 보내야 4차산업혁명 꽃이 필 수 있다."

Q.디지털 자산 시대,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디지털 자산 시대 3가지 큰 기회가 있다고 본다.

먼저 자산 평가분야다. 데이터나 지적재산권, 콘텐츠가 토큰화되면, 이게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일종의 디지털 자산 평가사다.

또 실제 자산을 담보로 토큰을 발행하는 신탁형 토큰 발행회사도 필요하다. 신탁형 토큰 발행사가 있어야 부동산, 그림 등을 담보로 토큰을 발행할 수 있다.

여기에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가 필요하다. 지금 주식시장처럼 KRX 하나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래서 빗썸 같은 곳이 디지털 자산 거래소로 빨리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3가지 사업이 가능하도록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제도화하면 전 세계 자산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평가받고 토큰화돼서 거래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수수료 1%만 받아도 금융선진국이 될 수 있다."

Q.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과 고려대 블록체인 연구소가 협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얘기한 것처럼 암호화폐 거래소가 디지털 자산 거래소로 성장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빗썸도 자체 블록체인 연구소를 설립한다고 해서 고려대 블록체인 연구소와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으로 함께 협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려대 블록체인 연구소는 다양한 전공의 20명 정도 교수님이 계신다. 컴퓨터와 정보보호 대학원이 참여하고, 경영대, 법대, 의대, 공대 교수도 계시다. 기술은 물론 법제도부터 비즈니스 모델까지 다룰 수 있는 역량이 집결돼 있다.

기본적으로 빗썸 임직원을 대상으로 기술 교육, 최고위 교육 등을 진행할 수 있고, 또 우리 연구 결과를 빗썸에서 활용할 수 있을 거 같다.

장기적인 과제는 우리가 수행하고 빗썸에서 기술을 이전 받아서 바로 상용화한다면 시너지가 좋을 것 같다."

Q. 얘기를 듣다보니 컴퓨터공학 보다 융합전문 교수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금융회사 사외이사도 하고, 학교에서는 뇌파 분야 의료공학을 가르치는 의대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일단 컴퓨터공학부터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다. 컴퓨터는 이제 수학 같은 베이직 학문이 됐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사람이 온다면 일단 컴퓨터하고 또 같이 디자인을 공부하라고 한다.

'컴퓨테이셔널 씽킹(컴퓨터적 사고)'이라고 하는데, 컴퓨터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컴퓨터에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어떻게 이걸 표현할 수 있는지,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이 어떻게 구현해 줄 수 있는지 인터페이스는 알아야 생존이 가능한 시대다.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어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했던 분야는 이제 다 컴퓨터로 자동화되고 있다. 금융은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추가된 것이다.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나면 더 이상 사람은 필요 없어진다. 지금 금융 산업 전체 인력 중에 60%는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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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블록체인을 말하다] 시리즈 인터뷰

블록체인 산업이 침체되고 대중화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블록체인이 진짜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기술이 맞나'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탈블(블록체인 업계를 탈출한다는 뜻의 신조어)'이 유행처럼 번진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탈블 덕분에 블록체인에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만 업계에 남아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어로 '찐(진짜)'이란 수식을 붙일 만한 블록체인 열성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긴 침체기를 겪고 흔들리는 산업에 방향키를 제시할 적임자이기도 하다. 이에 지디넷코리아는 '찐블'의 길을 택한 사람들을 만나 블록체인 기술의 진짜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는 '2020 블록체인을 말하다'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한다.

①스트리미 이준행 대표 "블록체인 산업, 천천히 성장해야 정상"

②고려대 컴퓨터학과 인호 교수 "코닥·소니 무너뜨린 디지털화...'돈'도 예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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