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자 만드는 도파민 괴담?...게임 마약론의 함정

[KGMA 신년기획⑧] 게임질병코드, 어떻게 볼 것인가...게임규제 50년사

디지털경제입력 :2020/02/23 11:15    수정: 2020/02/24 09:15

온라인뉴스팀 기자

한국사회에서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수출 효자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중독물질로 낙인 찍혔다. 정부의 게임육성 이면에는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성공한 게임회사 경영자는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게임은 마약 취급받는다.

정부는 육성이라는 당근과 규제라는 채찍을 써가며 게임을 ‘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놓았다. 사건만 터지면 사회의 책임을 게임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외화 벌어 오는 ‘게임산업’은 환영하지만, 게임이 일상과 어울리는 ‘게임문화’는 배척한다. 게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어왔다.

급기야, 올해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또 다른 탄압의 명분이 제공됐다. 총 10부작으로 진행될 이번 기획은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를 맞아 그간 한국게임이 받아온 게임 규제의 역사, 그리고 게임질병 코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두고 찬반진영의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찬성 진영에서는 게임이 중독을 일으키는 요소인 만큼 마약과 다름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심지어 “알코올, 도박, 마약, 담배 등 중독 물질에서 마약을 빼고 게임을 넣어야 한다”고까지 발언한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즐기는 게임에 대한 과몰입이 중독 프레임에 갇히기 시작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다. 사람들이 게임에 탐닉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혼돈하며 중독 증상을 보이고, 이를 하지 않을 경우 금단 증상을 보이는 것이 마약과 같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게임은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로 취급되며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이 마약이라는 주장…마약의 정의는?

그렇다면, 게임은 정말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일까? 그 전에 먼저 마약의 진짜 뜻부터 살펴보자. 사전적 의미로 마약이라 함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면서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약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약을 투여하면 의존성이 나타나고, 투여를 중단하면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 마약을 몹시 갈망하게 되는 정신적 의존성과, 신체적으로 구토, 불면, 발작 등의 신체적 의존성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게 되면 게임을 하는 시간 조절을 하지 못하고 계속 하게 되는 것이 의존성의 증거이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계속 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금단 증상의 증거이기 때문에, 찬성 진영에서 게임이 마약과 유사하다고 접근하는 기반으로 삼고 있다.

마약은 말 그대로 약물로서, 신체적 의존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물질이다.

■ 마약 주장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 도파민, 그 실체는?

게임을 마약 등의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단체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소재는 바로 '도파민'이다. 게임을 하면 중독자처럼 뇌에서 도파민이 나온다며 이것이 게임이 마약처럼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럼 먼저 도파민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도파민은 신경 전달 물질의 하나로 실행, 운동, 동기부여, 각성, 강화, 보상 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물질이 많으면 행복과 쾌감, 의욕과 흥미를 느끼고, 부족하면 의욕과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마약은 도파민을 얼마나 나오게 할까?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코카인이나 필로폰 등의 마약 복용자에게서는 도파민이 평상시 대비 350%에서 최대 1,20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다른 행위에서 나오는 도파민의 양은 얼마나 될까? 연구 결과 평상시에 비해 음식은 50%, 성행위는 100% 정도로 분비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게임을 할 때는 30~40% 정도만 분비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을 할 때 도파민이 증가하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일 때 분비량이 높아지는 도파민의 특성 때문이다. 결국 마약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비율로 도파민이 더 나오는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인지과학 협동과정 이경민 교수는 “사람이 밥 먹을 때, 연애할 때도 도파민이 나온다. 평소에 하지 않은 것을 할 때 분비된다. 필요한 활동을 더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도파민이다. 도파민이 많아도, 적어도 문제가 된다.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적당한 순간에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임의 마약 논란에 많이 활용되는 도파민. 보상과 동기 유발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사진=픽사베이)

■ 게임과 마약이 다른 핵심은 ‘불감증’…게임은 마약이 아니다

무엇보다 게임이 약물 중독이나 도박 같은 행위 중독과 다른 가장 큰 부분은 불감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마약은 물질을 넣음으로써 계속 쾌락을 얻고, 도박은 더 큰 보상을 노리고 끊임없이 파고든다. 하지만 게임은 일정 목표에 도달하거나 다른 중요한 것들이 생기면 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불감증이다.

우리는 성장을 하면서 어떤 콘텐츠에 몰입을 하는 경험을 한다. 그 당시 다소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있더라도 그 경험은 오래 가지 않았고 하고자 하는 의지는 떨어졌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몰입하는 소재는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도파민 때문이다. 도파민에 의한 욕구는 목표가 달성되면 사라진다.

건국대 정의준 교수가 지난 2014년부터 4년간 2천여명의 청소년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과몰입 수준은 매우 변화무쌍했고 오래 지속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들에게는 별도의 치료 같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마약이었다면 결과가 동일했을까?

여기에 더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문화에 대해 배척하는 사회 성향도 마약 논란을 거들고 있다. 과거 우리는 이런 경우를 많이 겪어왔다. 자녀의 공부에 방해가 되고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되면 여지없이 배척됐다. 70년대부터 음악이 그랬고,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TV, 영화가 그랬다.

무엇보다 게임이 마약 취급을 받으며 중독 논란이 벌어지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게임이 하나의 문화이자 일상이 된 선진국에서는 이런 논란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행위를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도파민은 신경 전달 물질이어서 게임을 하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런데 마약을 복용할 때도 도파민이 나오니 나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엉터리 삼단논법”이라고 지적한 만큼, 게임이 마약이라는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도파민이 게임의 마약론에 쓰이는 것은 엉터리 삼단논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글/게임뷰 박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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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동기획은 한국게임미디어협회(KGMA)와 한국게임기자클럽(KGRC)에서 2020년 신년특집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KGMA 소속 15개 매체 편집장과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표 편집자 이덕규 게임어바웃 국장, 김미희 게임메카 기자, 김성렬 게임포커스 기자, 김한준 지디넷코리아 기자, 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박상범 게임뷰 기자, 이원희 데일리게임 기자, 임영택 매경게임진 기자, 허새롬 PN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