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에 꽂힌 부장 판사..."블록체인은 새로운 성장 동력"

이정엽 블록체인법학회장 인터뷰...블록체인 책도 집필

컴퓨팅입력 :2020/02/17 18:50    수정: 2020/02/18 16:47

제주에서 태어난 소년은 과학과 소설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학창 시절 친한 친구는 컴퓨터 마니아였고, 이 친구와 함께 과학 잡지를 많이 읽었다.

'겉 멋'이 들어 '국산'인 과학동아보다 사이언스를 더 많이 봤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V'라는 TV 드라마가 인기였다. 파충류 외계인과 지구인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다. 'V'때문에 소년과 친구들은 과학을 더 동경했다.

소설책 읽는 걸 좋아하던 소년은 생화학과(연세대 91학번)에 진학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생화학과 2학년 때였다.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고 있는데 '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그는 연세대를 자퇴했고, 서울대 철학과(93학번)에 다시 입학했다. 의정부에서 부장 판사로 일하고 있는 이정엽 판사 이야기다. 그는 현재 블록체인법학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블록체인에 관한 책도 완성, 초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지디넷코리아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공동으로 마련한 최근 인터뷰에서 이 부장 판사는 "블록체인은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며 "우리나라가 세계적 금융국가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 부장 판사는 서울중앙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을 거쳐 현재 의정부지방법원 부장 판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아래는 이 부장 판사와의 일문일답

블록체인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엽 부장판사.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블록체인과 부장 판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어떻게 블록체인과 인연을 맺게 됐나

"중고등학교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으로 보는 세상' 같은 책을 많이 봤다. 판사 시절엔 인터넷과 혁신이 궁금해 정보법학회에 들어갔다. 원래부터 신기술이 바꾸는 미래에 관심이 많았다. 비트코인 해설서인 '넥스트 머니'라는 책을 2015년 읽었다. 우리나라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빗'을 공동 창업한 김진화 씨가 쓴 책이다. 내가 과학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아는 동료 판사가 "동문이 쓴 책"이라며 읽어보라고 줬다. 책을 읽은 후 소감은 "너무 이상적인데, 이게 잘 될까? 도토리나 게임머니랑 다를게 뭐지" 하는 정도였다."

=처음 접한 비트코인 책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는데도 계속 블록체인을 공부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7년에 김진화 씨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대전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이상용 건국대 교수와 인공지능법학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시절이다. 인공지능법학회 초청 강사로 김진화 씨를 불렀다. 이후 블록체인을 계속 공부했다. 대전 법원에 블록체인을 공부하는 '런치 모임'도 만들었다. 김밥과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며 블록체인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당시 김진화 씨 외에 박성준 동국대 교수, 구태언 변호사, 전명산 씨 등을 초청했다. 강의 듣는 사람이 많을 때는 40명, 적을때는 20명 정도 됐다."

=블록체인법학회를 만들게 된 동기는

"보통 판사들이 한 지역에서 2년 정도 근무한다. 대전 '런치 모임'을 계속 이어 가고 싶어 외부학회를 만들었다. 2018년 8월 24일 서울중앙법원 대강당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 200명 정도가 참석했다. 앞서 2017년말에 암호호폐 광풍이 있어 블록체인에 관심이 높던 시기다."

=학회 현황은

"우리는 블록체인 기술과 사회 현상을 법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회원이 참여하는 단체 카톡방이 있다. 500여명 정도가 들어와 있다. 이중 판사가 60여명이다. 검찰 쪽도 10여명있다. 아무래도 변호사가 많다. 교수와 기업인, 블록체인 기자들도 멤버다. 회원 자격은 회원이 추천을 하고 회원관리위원회가 승인을 하면 된다. 블록체인 정신을 반영해 네트워크 형태로 운영한다. 누구나 연구 프로젝트를 올리고 평가와 협업을 할 수 있다. 정식 사무국도 없다. 자원 봉사 형태로 운영한다."

=중앙에 거버넌스가 없으면 조직관리가 힘들지 않나

"그런 면이 있다. 설립 당시 자발적 네트워크가 회사(거버넌스가 있는)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체 설립 초기에는 아무래도 회사 모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학회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생각이다. 위원회도 만들고, 법인 회원도 보강할 계획이다. 논문을 평가해 1위한 논문에 상금을 주는 경쟁(컴피티션) 체재도 도입할 예정이다."

= 전공이 법학이 아니다.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학번이 두개다(웃음). 하나는 연세대 생화학과 91학번이고, 또 하나는 서울대 철학과 93학번이다. 연세대 들어갈때 생화학과가 인기였다. 당시 친구들이 대부분 과학자를 꿈꿨다. 생화학과 2학년때 실험실에 들어갔는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퇴했다. 소설을 쓰려고 서울대 철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라이선스를 가지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또 덜 무시당하는 직업을 찾다 보니 사시를 보게 됐다. 내가 좀 '아웃사이더'인 부분이 있다. 와이프가 나에 대해 MBTI라는 성격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돈키호테' 형으로 나왔다고 하더라.(웃음) 사시는 대학교 3학년때 붙었다. 연수원 30기로 합격했다. 연수원 생활은 31기와 같이 했다. 연수원 생활은 2년이다. 당시 700명이 연수원 생활을 했다. 판사가 되려면 상위 성적 200등안에 들어야 한다. 2002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18년째다. 첫 부임지는 북부지방법원이였다."

이정엽 부장 판사. 학창시절 소설책 읽기를 좋아했다.

=법조계는 블록체인을 어떻게 보나

"대부분 판사는 일이 너무 많아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법원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 비트코인 몰수 때문이다. 무언가를 몰수하려면 사회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 몰수 문제가 법정에 올랐는데, 1심은 비트코인이 소프트웨어(SW)에 불과하다고 봤다. 사회적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2심(고등법원)은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몰수한 판결이 있었다. 결국, 대법원도 비트코인을 몰수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암호화폐를 채권으로 인정, 양도할 수 있는 지도 법원에 닥친 현안이다. 채무자가 채무를 비트코인으로 숨겨놨다며, 비트코인을 채권자에게 양도해달라는 요청이 법원에 접수되면서 이를 담당하는 판사들도 블록체인을 공부해야 했다."

=가상통화에 과세를 부과할 지가 이슈다.

"주식 시장을 보자. 대주주 외에는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암호자산에 양도소득세를 매기자는 말이 있는데 시기상조로 본다. 주식 시장에 양도소득세를 매기지 않는 이유가 있다. 시장이 죽을까봐서다. 암호자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법인세는 내야한다."

=가상화폐를 부르는 용어가 통일돼 있지 않다. 여러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자산(디지털 애셋)이 가장 맞다고 생각한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버추얼 애셋(Asset)으로 정의했다. FATF가 내년 6월에 우리나라를 실사한다. 이에 대비해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의 블록체인 입장을 어떻게 보나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보다 유연히 대처했으면 한다. 암호자산이 한국에서 거래 될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전통적 기관투자가들이 들어올 수 없다. 투자자 보호 등 자본 시장처럼 블록체인도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블록체인 산업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생태계를 빨리 만들었으면 한다."

=블록체인에 대한 책을 썼다던데 어떤 내용인가

"사람들이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책을 썼다. 초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넘겼다. 자비라도 출판할 생각이다. 책 제목은 '블록체이니즘 강령'이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가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감기약을 보자. 어렸을때 먹은 감기약 효과를 네트워크에 올리면 좋은 정보가 된다. 이런게 모이면 돈이 될 수도 있다. 국민 모두가 이런 정보를 올리면 엄청난 양이 된다. 이렇게 쌓인 정보를 자본화하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긴다.

두번째는 정보를 만드는 건 회사가 아니라 네트워크라는 거다. 회사가 네트워크로 변화되고 있고, 수직 구조가 수평구조로 바뀌고 있다. 새로운 미래는 네트워크 정보사회로 갈 것이다. 영국이 산업화에 성공해 세계를 지배한 것처럼 우리도 디지털 네트워크를 먼저 선점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디지털 행위나 정보를 네트워크화해 자본화하면 몇 백조의 새로운 시장과 가치가 생길 수 있다."

=블록체인이 석유와 같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석유 자체는 가치가 없다. 하지만, 기술을 사용해 정제하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석유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석유 가치가 올라갔고 석유 산업도 발전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만, 아직 어떤 정보가 가치가 있는지 모르니, 석유처럼 '쇼핑리스트'를 만들면 정보를 채굴하고 가공하는 사이클이 생겨날 것이다. 정보 자체가 금융으로 바뀌려면 정보단위가 필요한데, 이 정보 단위가 바로 코인이고 토큰이다. 중동이 석유를 활용해 부(富)를 만들어 냈듯이, 기술과 인프라가 강한 우리가 정보를 잘 활용하면 정보기술 시대의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유전이 폭발하고 있는 것과 같다. 블록체인 시대에는 기존 부동산과 채권 외에 정보가 새로운 부의 원천이 된다. 이런 면에서 블록체인은 기득권에도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

이정엽 부장 판사. 블록체인에 대한 책도 써 최근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다.

=블록체인 정당을 표방한 정당이 등장했다. 블록체인과 정치를 어떻게 보나

"블록체인이 선거 풍속도를 크게 바꿀 것으로 본다. 블록체인은 투표 위변조 방지에 효과가 있다. 대통령 선거 한번하는데 2조 원이 든다고 한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투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비용이 줄면 선거도 더 자주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새로운 세상을 열 것으로 보나

"블록체인은 미래 네트워크 정보사회에 훨씬 더 큰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다. 기존 주주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위기를 타개할 혁신 기술로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부를 창출하게 해 줄 것이다. 특히나 글로벌 금융이 약한 우리나라가 블록체인을 잘 활용하면 세계적 금융국가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서둘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쁜 잡초는 빨리 뽑고, 좋은 꽃은 활짝 피게 해야 한다. 블록체인법학회를 만든 것도 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로 사명감을 갖고 학회를 만들었다."

=오는 5월에 학회가 대형 블록체인 행사를 개최한다. 어떤 행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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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회와 한국블록체인학회, 오픈블록체인협회 등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날짜는 5월 21~22일이다. 장소는 아직 안 정해졌다. 서울창업허브나 서강대, 연대 100주년 기념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기사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웹진에 공동으로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