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IT, 사람·권력 관점으로 본다"…美 신생매체의 흥미로운 도전

'IT계의 폴리티코' 지향하는 프로토콜

데스크 칼럼입력 :2020/02/06 16:06    수정: 2020/10/05 13:5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아이폰11이 출시됐다. 모든 매체가 트리플 카메라에 주목한다. 하지만 우린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 기능을 추가하기까지 애플 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회사 내 어떤 경쟁을 통해 지금 모습을 갖게 됐나? 그 과정에서 사내의 어떤 팀이 승리하고, 또 어떤 팀이 패배했나?”

굉장히 흥미로운 논점입니다. 대다수 IT매체와는 조금 다른 관점입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폴리티코 프로 편집장을 역임한 팀 그리브가 배너티페어와 인터뷰에서 한 얘기입니다.

저 인터뷰는 아이폰11 출시 직후인 지난 해 11월 게재된 겁니다. 그가 아이폰11 보도 얘기를 꺼낸 건 자신들의 차별화 포인트를 강조하기 위한 비유였습니다. 당시 이미 폴리티코 출신들이 새로운 IT 매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 출신들이 주축이 된 새로운 IT 매체 프로토콜이 공식 출범했다. (사진=프로토콜)

이들이 준비하던 매체가 5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했습니다. 프로토콜(Protocol)이란 매체입니다. 폴리티코 창업자인 로버트 알브리튼이 발행인입니다. 그리고 배너티페어와 인터뷰했던 팀 그리브가 편집장이구요.

■ "출시된 아이폰보다 나오기까지 과정에 더 많은 관심"

미국 IT뉴스 시장은 과포화상태입니다. 씨넷, 테크크런치, 와이어드를 비롯해 디인포메이션, 리코드, 더버지,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다양한 매체들이 활동합니다. 주요 경제지들도 IT 소식을 발빠르게 전해줍니다. 최근 출범한 악시오스 같은 매체도 만만치 않습니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IT 매체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제 아무리 폴리티코 출신이라고 해도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데 ‘프로토콜’은 예사롭진 않아 보입니다. ‘테크 분야의 폴리티코’란 캐치프레이즈부터 상당히 눈길을 끕니다.

더 관심을 모으는 건 IT 시장을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입니다. 프로토콜은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테크 분야의 사람, 권력, 정치학에 초점을 맞춘다. 테크, 비즈니스, 공공정책 분야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사실을 바탕으로 한 편향되지 않은 뉴스와 분석을 제공한다.”

이 설명 만으론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전 팀 그리브가 예로 들었던 아이폰11 출시 관련 보도 얘기를 함께 읽어보면 이들이 어떤 쪽을 지향하는 지 짐작이 됩니다.

팀 그리브는 “IT 매체가 많지만 대부분 기기 얘기를 다룬다. 테크 분야 사람이나 권력, 정치를 다루는 매체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강조합니다.

(사진=프로토콜)

그렇다면 프로토콜은 어떤 관점에서 IT 뉴스를 다루겠다는 것일까요? 역시 그리브가 배너티페어와 했던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IT 산업과 기존 산업 간의 생존 경쟁. 테크 산업 내의 권력 투쟁. 거대 IT기업과 정부 규제 관계자들 간의 다툼. 무역과 기술을 둘러싼 국제간 분쟁. IT 기술이 사람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심오한 질문들.”

그리브는 프로토콜이 공식 출범한 5일 미디어 전문매체 니먼랩과 인터뷰에서도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습니다.

“(IT)기술은 더 이상 경제나 산업의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나라의 자본과 유사한 글로벌 권력이다.”

아이폰이나 에어팟 같은 제품 얘기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기술이나 정책, 비즈니스 의사 결정권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뉴스를 다루겠다는 겁니다.

편집 방향만 놓고 보면, 그 동안 우리가 봐 왔던 IT 매체들과는 확실히 달라 보입니다. IT를 기술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동력으로 보는 관점 역시 신선합니다.

초기에 합류한 인력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폴리티코 출신들이 주축이 된 가운데 와이어드, 기즈모도 등 IT매체 기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 같은 기존 매체 기자들도 동참했습니다.

프로토콜은 초기엔 광고나 스폰서 모델로 운영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유료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광고나 스폰서에 의존하는 건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란 판단에 따른 겁니다.

■ 프로토콜의 차별화된 편집, 시장에서 통할까

갓 출범한 매체의 성패를 논하는 건 성급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첫날 보도한 기사들은 꽤 눈길을 끕니다. 대통령 선거 당내 경선에 돌입한 미국 민주당의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집계 오류 사태의 원인이 된 앱을 개발한 섀도우란 회사 최고경영자(CEO) 인터뷰 기사는 흥미롭습니다. 앱 때문에 이번 참사가 일어났다는 비판에 대해 의미 있는 반론을 제기하는 기사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시아 IT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올해 대형 IT 기업들이 왜 게임에 공을 들이는 지 등을 다룬 기사도 눈길을 끕니다.

최근 뉴스 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업체들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수익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비욘드 뉴스’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는 이런 상황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제공하는 뉴스를 생산하는 건 공짜로 물을 제공하는 노점상들이 몰려 있는 해변에서 또 다른 노점상을 차리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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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은 최소한 ‘해변에 또 다른 노점상을 차리려는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새롭고 차별화된 매체를 구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구상하는 것과, 시장에서 실제로 만들어내는 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상큼한 첫 발을 내디딘 ‘프로토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 지, 조금은 식상한 IT 뉴스 시장에 어떤 새바람을 몰고 올 지 궁금해집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