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DLF 사태는 금융회사만의 책임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펀드 가입 장면을 상기하며

기자수첩입력 :2019/09/03 17:58    수정: 2019/09/03 17:58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NH농협은행을 찾아 '엔에이치-아문디(NH-Amundi) 필승코리아 펀드'에 가입했다. 이 가입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서류를 차근히 읽어보지 않고, 직원이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에 서명을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직원은 "대통령이니 금융이해도가 높은 편으로 해라"라고 권유하는 장면이다.

최근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했던 해외 채권금리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이 예고된 가운데 이 같은 장면은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투자상품 판매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을 투자자로, NH농협은행을 우리은행이나 KEB하나은행으로, 가입한 NH-아문디 필승코리아 펀드를 DLF로 치환하면 어느 누구도 피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단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곳은 금융사다. 금융회사 직원들은 금융소비자보다 상대적으로 금융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난이도가 있는 투자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를 확실히 이해시켜야 한다. 투자자는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할 경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상품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DLF를 판매하고 권유했던 직원이 '안전하다'는 말로 가입을 독려했다면 금융사의 책임이 크지만,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상품 가입에 동의한 투자자도 책임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투자상품의 책임은 상품 설계의 결함이나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면 투자자가 오롯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8월 26일 NH농협은행을 방문해 펀드에 가입한 문재인 대통령.(사진=NH농협금융지주)

더 나아가 투자성향 테스트는 명확한 단어로 설명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사가 투자상품 가입 시 소비자에게 내놓는 투자설명서로는 투자자 성향을 제대로 간파하기 어렵다. 주식에 투자해본 적은 있지만 주식 투자 메커니즘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제 뉴스를 읽는다해서 금융이해도를 '높은 수준' '매우 높음'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획일적인 투자성향서를 만들어놓고, 투자 등급을 짜맞춘 뒤 고위험군 투자 상품을 판매하면 피해를 보는 투자자가 생길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인공지능(AI)의 성능이 날로 발전하고 빅데이터를 통해 이것저것 해보려는 금융사들이 늘고 있다. 맞춤형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투자성향을 감별하는 데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물론 금융당국이 규격화해놓은 투자성향 진단서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 추후 문제가 된다면 금융사를 일벌백계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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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내년부터 브로커와 딜러에도 신인(信認) 의무를 부과한다. 고객에게 금융상품 권유 시 고객 이익을 최우선하고 이해상충을 배제해야 한다. 기존 투자자문업과 신탁업 등에 대해서만 신인 의무를 부과했으나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해 범위를 넓힌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의 DLF 불완전판매나 상품 설계 시 결함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몇몇 사례들은 불완전판매가 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전체 판매 건은 아닐 것이다. 금융사가 그간 해왔던 안이한 투자상품 판매와 성과주의, 금융당국의 땜질식 처방, 투자자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끝날 것으로 관측된다. 언제든 이런 사태는 반복된다. 금융당국·금융사·투자자들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