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카카오은행을 카카오뱅크라 부를 수 있을까?

[백기자의 e知톡] 반쪽 인터넷전문은행 언제까지

인터넷입력 :2019/06/12 13:37    수정: 2019/06/12 13:37

영화 제목이 ‘아이언맨’인데 알고 보니 영화 속 주인공이 아이언맨 역할을 맡은 토니 스타크가 아니라, 그를 돕는 인공지능 비서인 자비스라면 어떨까요. 영화 제목을 자비스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또 ‘스파이더맨’이라고 해서 본 영화에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는 조연에 불과하고, 닉 퓨리가 주연이라며 영웅 행세를 한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그래도 스파이더맨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업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에도 주연은 여전히 기존 금융사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당시 정부는 혁신적인 ICT기업이 주도하는 점포 없는 은행을 만들어 오랜 시간 정체돼 있던 금융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켜보자 했지만, 정작 주연은 기존 금융권이 맡고 있습니다.

케이뱅크의 경우 우리은행이 13.79% 지분을 소유해 단일 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으며, 카카오뱅크의 경우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58% 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타이틀은 인터넷전문은행인데, 기존 금융사들이 가장 많은 지분을 들고 있는 셈입니다.

카카오뱅크 주주별 지분율
케이뱅크 주주별 지분율.

반면 주연인줄 알았던 KT, 카카오는 각각 10%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영화라 한다면, 두 인물(KT, 카카오)은 주인공과 찰싹 붙어 다니는 ‘비중있는 조연’일 뿐입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조연으로 전락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를 계속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불러야 할까요.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이 문을 연 지 2년이 넘었습니다. 오랜 진통 끝에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까지 완화했지만,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 심사의 문턱을 넘지 못해 케이티와 카카오는 대주주 지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 대주주 적격 심사 문턱 넘지 못한 케이뱅크·카카오뱅크

최종구 금융위원장.

일단 KT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혐의로 과징금 처분과 함께 검찰 고발 조치를 받아 금융당국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중단한 명분은 타당해 보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는 산업자본이 법령을 초과해 은행 지분을 보유하려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즉, KT가 케이뱅크 대주주로 올라서려면 공정거래법을 잘 지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금융당국이 KT에 대한 대주주 적격 심사를 중단한 이유가 어느 정도 수긍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카카오의 카카오뱅크마저 대주주 적격 심사를 손 놓게 된 배경과 이유를 파고 들면 의문이 생깁니다.

카카오는 지난 2016년 공정위로부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모든 계열사를 공시해야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즉, 자산이 늘어난 카카오가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되면서, 규제 당국에 기업의 자산과 지분 구조 등을 투명하게 보고하고 건전한 기업 운영을 위한 감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는 엔플루토 등 계열사 5곳의 공시를 누락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대기업 집단 자료 제출 시 계열사 임원이 지분 30% 이상 보유한 회사(계열사의 계열사)까지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실무자가 놓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모르는 것도 죄고 실수도 잘못이지만, 고의적으로 잘못하지 않았다는 카카오 억울하다는 입장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 공정위 "고의성 없는 단순 실수" vs 검찰 "실수도 잘못...처벌 받아야"

공정거래위원회(사진=지디넷코리아)

공정위 역시 고의성 없는 잘못이란 판단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카카오가 공시 누락 사실을 뒤늦게나마 스스로 찾아내 자진신고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카카오가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에 지정되는 데 있어 계열사 5곳 누락은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만약 누락한 계열사 때문에 카카오가 당시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에서 빠졌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누락된 5곳의 회사 총자산은 20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리저리 따져도 카카오가 고의적으로 굳이 부정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카카오가 기업집단 지정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고, 기업집단 제도에 대해 정확히 숙지가 안 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서 “카카오가 문제를 인지해 자진신고했고, 누락된 계열사가 기업집단 지정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 않았으므로 경고 조치로 끝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카카오처럼 신규로 지정된 기업의 경우 관련 제도를 정확히, 또 완벽히 알지 못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카카오 말고도 유사한 잘못을 하는 기업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검찰 자료 이미지(사진=뉴스1)

이 같은 공정위 결론에도 검찰은 10개월이 지나서야 해당 신고 누락건을 문제 삼으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약식기소했습니다. 공정위는 카카오의 계열사 누락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만 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지만, 검찰은 뒤늦게 문제를 파헤쳐 법원으로부터 벌금 1억원이라는 약식명령을 받아냈습니다.

그러자 김범수 의장은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어렵사리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은 다시 항소했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KT 대주주 적격 심사 중단 때와 마찬가지로, 해당 결과나 나오기 전까지 카카오에 대한 대주주 적격 심사를 보류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1심 재판 결과를 뒤집고 김범수 의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 공정위 "검찰이 (기존과 달리) 다른 해석 한 것 같다"...전속고발권 힘겨루기?

지난 3월 공판에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사진=뉴스1)

공정위는 검찰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례적이라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기존 유사 사건에서는 시각을 같이했던 검찰이 카카오의 계열사 누락 건에서는 공정위와 다른 해석을 한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풀어 말하면 카카오 수준의 잘못 정도는 공정위와 같은 편에서 가볍게 넘겼던 검찰이 이번에는 강한(형사적) 처벌이 필요하다는 상반된 입장을 냈다는 뜻입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검찰과 공정위 간 갈등이 엉뚱한 결과로 표출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기존에는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 분야 법 위반 행위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했습니다. 전속고발권은 일반인, 주주 등이 고발권을 남용하면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그런데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지난해 공정위와 법무부는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에 합의한 상태입니다. 그 동안 공정위만 쥐고 있던 칼자루를 검찰도 쥐게 되면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난 셈인데, 카카오의 계열사 누락 건에 대해 공정위와 검찰이 다른 판단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런 힘겨루기의 단적인 결과란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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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지부진한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대주주 적격 심사는 카카오 실무자의 단순 실수에서 시작됐고, 어쩌면 원만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검찰이 기소권을 행사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때부터 계획했던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대주주 지위 확보 계획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습니다. 야심차게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취지와 어딘가 맞지 않은 상태에서 표류하는 모양새입니다.

반쪽 인터넷전문은행이 유지되는 것과 별개로, 문득 계열사 신고를 누락시켰던 카카오 실무자의 자괴감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사소한 실수인 줄 알았고, 조기에 수습될 줄 알았던 실수가 회사의 실세 중 실세를 재판장에 서게 했고, 나아가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게 했으니 그가 느꼈을 죄책감은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