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원인 22개월만에 규명됐다

보호시스템·운영관리 등 미흡…정부, 안전강화 대책 발표

디지털경제입력 :2019/06/11 14:06    수정: 2019/06/12 09:43

(세종=박영민 기자) 지난 1년 10개월간 전국에서 23건이나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원인이 11일 규명됐다.

배터리 보호시스템과 운영관리·제어체계가 미흡했던 점과 설치상의 부주의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일부 배터리 제조업체의 제품에서는 제조상의 결함도 발견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ESS 분야 학계·연구소·시험인증기관 등 19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간 총 23개 사고 현장 조사와 자료분석, 76개 항목의 시험실증을 진행했다.

이승우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가운데)과 김정훈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장(오른쪽). (사진=지디넷코리아)

■ 2017년 8월부터 23건…4가지 화재 원인 밝혀졌다

ESS 화재 사고는 지난 2017년 8월 2일 전북 고창군을 시작으로 경기·강원·경북·경남·전남·충북·충남 등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총 23건 발생했다.

김정훈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장은 "전체 ESS 화재사고 중 14건은 충전이 완료된 후 대기 중에 발생했다"며 "나머지 6건은 충방전 과정에서, 3건은 설치·시공 도중 화재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보호체계 미흡 등 총 4가지로 파악됐다.

다만, 일부 배터리 셀(Cell)에서 제조상 결함이 발견됐고, 이 배터리를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조사위는 설명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1개 제조사의 일부 셀에서 극판접힘, 절단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의 제조 결함을 확인했다"며 "극판접힘과 절단불량을 모사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이상 수행했지만,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셀 내부의 단락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정 배터리 제조사의 셀에서 발생한 결함 사진. (사진=국표원)
ESS 화재사고 원인과 그에 따른 안전대책. (자료=산업부)

■ 8월부터 ESS 배터리 셀에 안전인증 도입

정부는 화재원인을 토대로 ESS 제조·설치·운영 단계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소방기준 신설을 통해 화재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종합 안전강화 대책을 시행키로 했다.

우선 ESS용 대용량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PCS)는 안전관리 의무대상으로 지정된다.

정부는 오는 8월부터 배터리 셀에 안전인증을 도입해 관리하고, 생산공정상의 결함 발생 가능성을 예방할 계획이다.

또 PCS는 올해 말까지 안전확인 용량범위를 현행 100킬로와트(kW)에서 1메가와트(MW)로 높이는 한편, 오는 2021년까지 2MW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달 31일에 제정된 KS표준에 이어 업계와 민간이 자율적으로 협력해 배터리 시스템 보호장치 성능사항과 ESS 통합관리 기준 등을 단체 표준에 추가한다. 이를 통해 고효율 인증, 보험 등과 연계해 실효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ESS 화재 예방 안전조치와 재가동 방안. (자료=산업부)

■ ESS 설치 기준 강화…가동 중단 사업장에 보상도

ESS 설치 기준도 강화된다. 용량이 600킬로와트시(kWh)를 초과하는 ESS는 앞으로 옥외 전용건물에 설치해야 한다. 누전차단장치·과전압보호장치·과전류보호장치 등 보호장치 설치도 의무화된다.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한 후에 추가 충전도 금지된다. 만약 배터리에서 과전압·과전류·누전·온도 상승 등 이상 징후가 탐지되면 사업자는 비상정지 시스템을 가동한 후 관리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사고 시 원활한 원인규명을 위해 전압·전류·온도 등 배터리 상태도 별도로 보관해야 한다.

ESS 정기점검 주기는 4년에서 1~2년으로 단축되고, 설비의 임의 개조·교체에 대한 특별 점검도 수시로 실시될 전망이다. 또 ESS는 앞으로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돼 소상시설 설치도 의무화된다.

ESS에 특화된 화재안전기준은 오는 9월까지 제정될 전망이다.

ESS 전 주기 안전기준 강화 및 관리제도 개편 내용. (자료=산업부)

정부의 가동중단 권고에 따라 설비 가동을 자발적으로 중단한 사업장에 보상도 이뤄질 전망이다.

수요관리용 ESS는 전기료 할인특례 기간 이월을 지원하고, 재생에너지 연계 ESS에 대해서는 화재 사태 이후 ESS 설치 중단기간을 고려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적용을 6개월 연장한다.

안전조치에 따른 설치비용 증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보험료를 낮춘 단체보험 신규 도입도 추진된다.

이와 함께, ESS에 대한 '고효율 에너지기기 인증제' 활용 확대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고효율 에너지기기 인증을 받은 ESS에 대해 투자 금액의 3%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에너지저장장치(ESS).

■ ESS협회도 신설…"질적성장 위한 경쟁력 강화가 우선"

정부는 잇따른 화재로 위축된 ESS 산업의 성장활력 회복을 위해 단기 인센티브와 새로운 수요 창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ESS 생태계 전분야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ESS 협회' 설립도 추진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신규발주 지연에 대한 업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이달 중순 '사용전 검사' 기준에 개정사항을 우선 반영, ESS 신규발주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도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가정용 ESS 등 신규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적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ESS 시장 규모는 약 3.6기가와트시(GWh)로 글로벌 시장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자료=산업부)

ESS는 태양광·풍력에너지를 통해 공급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한 후 필요할 때마다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설비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면서 ESS 산업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글로벌 각국에서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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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ESS 시장 규모는 약 3.6기가와트시(GWh)로 글로벌 시장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잇따라 발생해 업계는 한순간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

정부 관계자는 "화재 사태로 양적 성장에 치우쳤던 우리 ESS 산업을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다"며 "안전제도 강화 조치를 기반으로 우리 ESS 산업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해 분야별 경쟁력 강화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