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을 뛰어넘은 공포 DNA, 바이오하자드 RE:2

90년대 호러 문법, 새로운 옷을 입다

디지털경제입력 :2019/01/30 10:55    수정: 2019/01/30 10:55

2004년 개봉한 영화 ‘새벽의 저주’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좀비들이 고함을 지르며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이 좀비 영화의 기본소양이 된 요즘이지만 본래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는 좀비의 이미지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좀비 영화의 시조격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나오는 좀비들은 모두 느릿느릿 움직이고, 어지간한 공격에는 쓰러지지 않는 강한 맷집을 갖고 있다. 과거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은 수는 적지만 지치지 않고 사람을 향한 명백한 적의를 갖고 계속해서 접근하는 존재가 주는 압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강조했다.

1968년 개봉한 호러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1996년 출시된 바이오하자드와 2년 후 출시된 속편 바이오하자드2는 이런 초기 좀비의 설정을 최대한 반영해 20세기 호러 게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최초의 좀비 영화는 아니지만 좀비 영화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시민을 보호하는 기관인 경찰서가 좀비에게 점령당했다는 급박한 설정 속에서 이용자들은 헤드샷을 몇 번을 성공해도 쓰러지지 않는 좀비와 싸우기보다는 이들의 눈을 피해 최대한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며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좀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을 전한 것이 바이오하자드2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던 요인이다.

바이오하자드 RE:2는 바이오하자드2 출시 후 21년만에 리메이크된 게임이다. 시리즈 5편 이후 바이오하자드가 좀비가 등장하는 액션게임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했다면, 바이오하자드 RE:2는 원점으로 회귀해 초기 시리즈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각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바이오하자드2의 주인공 레온 케네디와 클레어 레드필드

시점이 고정시점에서 3인칭 숄더뷰로 변경됐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게임 그래픽 역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경된 것을 제외하면 바이오하자드 RE:2는 집착이 느껴질 정도로 원작의 게임성을 그대로 담아내려한 개발진의 노력이 드러나는 게임이다.

좀비에 맞서기 위한 총기와 탄약은 항상 부족하며, 시야의 사각에서 슬며시 등장하는 좀비를 비롯한 다양한 괴물들은 이용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멈추지 않는다. 덕분에 영화에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무력하기에 살아남기 힘든 인물들의 심리가 이용자의 플레이에 그대로 반영된다. 바이오하자드 RE:2를 하다가 게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는 이유다.

이런 점 때문에 게임 플레이 역시 여타 호러 게임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교전보다는 도망이나 우회를 택하게 되고, 교전을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좀비의 머리나 다리를 쏴서 휘청이게 만들고 그 틈에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는 방식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배틀로얄 장르가 일종의 슬로건처럼 사용하는 ‘생존’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게임이라 하겠다.

바이오하자드 RE:2 이미지

이런 요소 때문에 인해 바이오하자드 RE:2는 최근 출시된 호러 게임에 비해 무척 어려운 게임이 됐다. 문제는 이 높은 난도가 좀비의 다양한 공격패턴이나 뛰어난 인공지능 때문이 아닌 게임 내 시스템의 제약 때문에 생겨나기에 어렵다기보다는 불편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다는 점이다.

바이오하자드5 이후부터 시리즈를 접한 이들이나 2000년대 후반 이후 이어진 호러 게임 문법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바이오하자드 RE:2는 무척 답답한 게임으로 여겨질 여지가 크다. 주인공 캐릭터의 움직임은 좀비보다야 날래다지만 최근 출시된 호러 게임 주인공들에 비하면 좀비 수준으로 굼뜨다. 도망과 우회가 진행의 기본이 되는 게임이기에 이런 움직임은 더욱 답답하게 여겨진다.

반대로 좀비의 반응속도는 상향됐다. 원작에서는 좀비의 근처로 지나갈 시에 좀비가 주인공 캐릭터를 돌아보고 인식한 후에 공격을 시작했으나, 바이오하자드 RE:2에서는 인기척만 느껴져도 빠르게 공격을 해오는 식이다. 때로는 느릿한 이동속도와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다.

게임 내 배경 '라쿤시티 경찰서'

이는 상술한 캐릭터의 느릿한 움직임이 조합되어 좀비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 좀비의 등 뒤로 빠르게 달려서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플레이를 더욱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피해를 입지 않고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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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점은 있으나 이를 상쇄할만한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하자드 RE:2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갈수록 호러 게임이 ‘무서운 괴물을 상대하는 액션게임’의 형태로 흘러가는 판국에 무거운 분위기로 압박하며 긴장감을 공포로 탈바꿈하는 호러 게임은 찾아보기 어렵기에 이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90년대부터 게임을 즐겨온 이용자들은 새로운 옷을 입은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고, 2000년대 후반부터 게임을 즐긴 이들이라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호러 게임의 문법을 경험하게 된다. 최근 출시된 게임 중 이런 경험을 보장하는 게임은 바이오하자드 RE:2 외에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