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저널리즘, 한국 언론의 새로운 희망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척박한 환경에서 핀 꽃

데스크 칼럼입력 :2018/12/26 14:43    수정: 2018/12/26 14:4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데이터 분석이 저널리즘의 미래다.”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가 2010년 한 말이다. 영국 정부의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축하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한 발 더 나가 “기자들은 데이터 더미에서 이야기를 찾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버너스 리는 저널리즘 전문가가 아니다. 웹을 만든 기술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분석이 저널리즘의 미래라는 그의 진단은 핵심을 꿰뚫고 있다.

미국 대표 통신사인 AP의 최근 행보도 관심을 끈다. AP는 지난 2017년 스타일북에 ‘데이터 저널리즘’ 항목을 추가했다. 취재 기자들은 데이터나 통계에 능통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빼놓지 않았다. 정부기관, 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데이터나 통계 형태로 자료를 내놓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방의 문법을 알아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 장면. (사진=데이터저널리즘 코리아)

그런데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암울하다. 버너스 리가 만든 바로 그 웹이 뉴스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언론의 존재감이 확 줄어들었다. 속보 경쟁에 내몰린 국내 언론들은 ‘검색어 어뷰징’을 비롯해 눈꼴 사나운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기레기’란 비아냥을 들어도 크게 항변할 말이 없을 정도다.

물론 이런 모습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땀나게 뛰어다니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최순실 사태 당시 우리는 한국 언론들의 취재 능력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 데이터 속에서 발견한 진실…풀뿌리 저널리즘 새싹

지난 주 열린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DJCON)은 데이터 저널리즘이 한국 언론의 또 다른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행사였다.

이날 행사에선 중앙일보(‘우리 동네 의회 살림, 어떻게 털었나’), 뉴스타파(‘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각종 비리를 파헤친 사례들이 소개됐다. YTN 함형건 기자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방화사건을 추적한 사례를 소개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부산일보의 맞춤형 후보찾기 프로젝트는 데이터 저널리즘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SBS ‘마부작침’ 팀의 데이터 저널리즘 사례 발표도 눈길을 끌었다. 마부작침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고사성어다. 이 말 속엔 데이터 저널리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가 잘 담겨 있다. 이날 발표에도 그런 고충과 노력들이 그대로 전달됐다.

이날 발표된 보도 사례들은 그 동안 한국 언론의 빛나는 성과들로 많이 회자됐던 보도 사례들이다.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대상 수상작인 중앙일보의 ‘우리 동네 의회살림’ 기획보도나, 뉴스타파의 ‘가짜 학문 제조공장’ 보도는 감시견이란 언론 고유의 의무를 수행한 대표적인 탐사 보도로 꼽힌다.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 장면. (사진=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데이터 저널리즘에서 ‘IT와 저널리즘의 행복한 만남’을 떠올린다. 우아하게 자료 뽑아낸 뒤 멋진 그래픽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연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데이터 저널리즘은 우아한 작업이 아니다. 작은 단서를 찾기 위해 단순 반복작업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할 때도 있다. 밤샘 취재 못지 않은 힘들고 성가신 작업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작은 단서를 찾게 된다.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은 그 순간을 ‘매직 아이(magic eye)’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날 발표된 보도 사례 역시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 이뤄낸 성과물들이다.

물론 데이터 저널리즘에 양지만 있는 건 아니다. 언론 현장에선 여전히 ‘비주류’ 취급을 받기 일쑤다. 성급한 간부진들은 “빨리 성과를 내라”며 눈치를 주기 일쑤다. 많은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이 ‘언론사의 아웃라이어’를 자처하는 건 이런 환경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여러 사례들은 이런 한계를 이겨낸 작품들이다. 그래서 데이터 저널리즘 성과물들에서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파트2에 ’언론사의 아웃라이어’란 말 앞에 ‘특이점이 왔다’는 메시지가 함께 붙어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을 잘 반영한 것이다.

■ 토양은 척박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전통 저널리즘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달라진 기술 환경과 콘텐츠 소비 방식 변화로 인해 전통 문법이 한계에 부닥치기도 했다. 새로운 변신과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이런 상황을 돌파해 나갈 중요한 무기 중 하나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국내엔 아직 데이터 저널리즘의 토양이 풍성하진 못한 편이다. 몇몇 열정 있는 기자들이 척박한 토양을 힘들게 개간하고 있다. 그래서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공개된 수 많은 프로젝트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팀 버너스 리는 저널리즘 전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저널리즘 문외한에 가깝다. 그런 그가 “데이터 분석이 저널리즘의 미래다”고 선언하는 건 주제 넘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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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버너스 리는 저널리즘은 잘 모를지언정, 웹의 특성은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선언이 더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비슷한 관점에서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를 통해 소개된 많은 사례들에서 작지만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한국 언론의 미래를 키워나갈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