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넷플릭스, 핵심은 '머니볼'

장르 구분만 8만건…배우-감독도 소셜분석 통해 결정

방송/통신입력 :2016/01/08 15:51    수정: 2016/01/08 15:5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넷플릭스는 지난 2006년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자체 영화 추천시스템인 ‘시네매치’의 정확도를 10% 이상 끌어올린 팀에겐 100만 달러 상금을 주겠다고 선언한 것.

시네매치는 그 때까지 넷플릭스의 자랑거리로 꼽혔던 알고리즘. 하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게 당시 넷플릭스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당시 넷플릭스가 내걸었던 ’정확도 10% 향상’은 간단한 목표가 아니었다. 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별 다섯 개 평점 체제에서 오차를 별 반 개 이내로 줄인다는 의미. 가입자들이 영화를 본 뒤 어느 정도 점수를 줄 지 사전에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가 CES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130개국 동시 진출 사실을 발표했다. (사진=씨넷)

■ 2006년부터 매년 거액 상금 걸고 알고리즘 콘텐스트

첫 해 대회에선 AT&T 연구원 출신인 로버트 벨이 우승했다. 우승자인 벨은 데이터 마이닝 기법을 활용해 추천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매년 비슷한 이벤트를 개최해오고 있다.

'넷플릭스 프라이즈(Netflix Prize)'로 불리는 시네매치 알고리즘 향상 공모전은 넷플릭스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추천시스템은 굉장히 정교하다. 장르 구분부터 굉장히 세분화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애틀랜틱은 지난 2014년 넷플릭스가 어떻게 영화 장르를 구분하는지 분석한 적 있다. 당시 기자는 수 주 동안 분석한 결과 총 7만6천897개 장르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매년 개최하는 시네매치 알고리즘 개선 콘텐스트 메인 화면. (사진=넷플릭스)

애틀랜틱은 넷플릭스 영화 분류 공식을 나름대로 추론해냈다.

Region + Adjectives + Noun Genre + Based On... + Set In... + From the... + About... + For Age X to Y

저 공식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지역(Region)은 미국, 유럽 등등으로 다시 세분화된다. 형용사(adjectives)는 영화 성격을 분류하는 세부 항목이 또 따르게 된다. 이를테면 슬픈 영화인지, 감동적인 영화인지 등으로 다시 분류할 것으로 추정된다.

바탕(based on)은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인지, 아니면 소설 원작인지 등등의 세부 항목이 또 있다. 타깃 연령대(For Age X to Y)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분류한다. 이를테면 18세부터 24세까지가 볼만한 영화라든가, 이건 35세~40세 여성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라는 등으로 다시 나누게 된다.

이런 기준을 적용한 장르가 8만 건에 이른다는 것이 당시 애틀랜틱의 분석이었다. 물론 애틀랜틱이 분석해내지 못한 장르가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많다.

■ 보유 타이틀 7천건으로 7천만 고객 만족시켜

현재 넷플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는 7천100건 남짓한 수준. 반면 지난 분기말 현재 가입자는 7천만 명에 이른다. 넷플릭스가 1만 건도 안 되는 콘텐츠로 엄청난 가입자를 만족시키는 건 정교한 분석 시스템 덕분이다. 참고로 경쟁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은 보유 영화건수가 9만 건을 웃돈다.

넷플릭스의 ‘빅데이터 분석’은 영화 추천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대폭 비중이 확대된 자체 제작 영화나 드라마에도 빅데이터 분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 첫 신호탄이 된 것이 지난 2013년 1월 선보인 ‘하우스 오브 카드’다. 시청자들이 어떤 드라마를 원하는 지, 어떤 배우와 감독을 선호하는지, 원하는 스토리는 어떤 것인지 등을 분석한 결과를 적용해서 만들어낸 드라마가 바로 ‘하우스오브 카드’였다.

‘하우스오브카드’는 원래 영국 BBC가 만든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제작 당시 넷플릭스는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해 BBC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용자들은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한 드라마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검색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분석은 그대로 영화 제작진과 주연 배우를 선택하는 작업에 적용됐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드라마 성공 이후 넷플릭스는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만들면서 가입자를 확대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보유 타이틀 건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 현재 7162건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사진=instantwatcher.com)

미국의 경제 전문잡지 포브스는 지난 2013년 넷플릭스이 이런 접근 방식을 ‘머니볼 전략’이라고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해 화제가 됐다.

‘머니볼’은 마이클 루이스가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팀 빌리 빈 단장의 성공 전략을 분석한 책 제목으로 사용해 널리 인용된 용어다.

빌리 빈 단장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큰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출루율’과 ‘장타율’을 잣대로 숨은 보석을 싼 값에 영입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성공했다. 오클랜드 팀의 성공 이후 저예산팀이 숨겨진 선수를 발굴해내는 효율적인 투자를 ‘머니볼’이라고 일컫고 있다.

■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팀과 흡사한 분석 전략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수급하는 전략이 오클랜드의 ‘머니볼 전략’과 흡사하다는 분석이었다. 넷플릭스는 외면 당한 드라마 중 뜰만한 것들의 속편 제작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

흥행과 작품성 모두 성공적이었단 평가를 받은 ‘하우스오브 카드’는 넷플릭스 머니볼 전략의 대표적 성공작이다. ‘하우스오브 카드’ 뿐만이 아니다.

‘미국판 살인의 추억’으로 통하는 ‘킬링(The Killing)’ 역시 넷플릭스가 재활용에 성공한 작품이다. ‘킬링’은 2011년 4월 3일부터 2012년 6월 17일까지 AMC에서 방영된 드라마다. 하지만 AMC는 폭스와 함께 시즌3까지 제작한 뒤 시리즈에서 손을 뗐다.

넷플릭스 가입자 확보 최고 공신격인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

하지만 넷플릭스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넷플릭스는 AMC가 완전히 손을 뗀 ‘킬링’을 단독 제작하기로 했다. 소셜 분석 등을 토대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결국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에 착수해 지난 해에 공개했다.

지난 2006년 시즌3로 종영했던 ‘못 말리는 패밀리(Arrested Development)’ 역시 ‘킬링’과 같은 길을 걸었다. SNS에서 탄탄한 팬 기반을 확인한 넷플릭스가 결국 2013년 여름 시즌4로 부활시켜 큰 인기 몰이를 했다. ‘테라 노바’ ‘더 리버’ ‘제리코’ 등도 같은 방식으로 넷플릭스가 살려낸 드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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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넷플릭스의 이런 전략이 한국 시장에서도 통할 지는 미지수다. 또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을 빅데이터 분석에서만 찾는 것도 단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의 성공을 얘기할 때 정교한 데이터 분석은 빼놓을 수 없다. 그게 ‘작지만 강한 업체’ 넷플릭스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