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등 로봇 '휴보' 일등으로 바꾼 SW의 힘

컴퓨팅입력 :2015/10/13 17:03    수정: 2015/10/13 20:29

지난 6월 카이스트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가 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 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13년 대회에선 9등에 그쳤던 터라 이런 쾌거를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른 팀 로봇과 달리 후원해 주는 업체 하나 없이 대회에 출전한 것을 보면 그렇다. 반면 2등한 IHMC 로보틱스는 아마존과 아틀라시안이, 3등한 카네기멜론대학팀 로봇은 아마존, 구글, 허니콤, 폭스콘 등이 스폰서십을 제공했다.

우승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매스컴의 관심이 쏟아졌고 휴보에 이런저런 지원을 해주고 싶다는 기업도 생겨났다. 글로벌 3D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도 그 중 하나다. 다쏘시스템은 3D 설계 소프트웨어(SW) 솔리드웍스를 기증하고 로봇 개발에 필요한 기술 지원도 제공하기로 했다. 휴보 설계에 솔리드웍스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다쏘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지원에 나선 것이다.

지난 7일 협약식이 열린 대전 카이스트에서 팀카이스트를 이끌고 있는 오준호 교수를 만나 2년 만에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이유를 들어봤다.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왼쪽)과 솔리드웍스 지안 파올로 바시 CEO

2년 만에 확 달라진 휴보… 비결은?

“말이 좋아 9등이지 꼴등이라고 봐도된다. 대신 우리는 2년 사이에 많은 반성을 했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13년 9등에 그쳤던 휴보가 어떻게 2년 사이 우승까지 할 수 있었을까. 오준호 교수는 실패를 통해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고장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오 교수가 뼈저리게 경험한 문제의 본질이다. 각 팀에게 주어지는 도전시간은 60분이다.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진 로봇이 한 시간 씩 고장나지 않고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고 배터리 방전이나 발산되는 열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다. 고장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만들어야 미션도 풀 수 있다. 운전하고 차에서 내리기, 벨브 돌리기, 장애물을 넘기, 계단 오르기 등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는 건 오히려 간단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 교수는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고 완성도 높은 다른 팀 로봇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문제를 정확히 보지 못했고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했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1~2시간은 견딜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로봇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완벽하게 통제하도록 했다. 이 부분에 노력의 80%를 쏟았다.”고 말했다. 미션을 해결하는데만 치중해서 만들어진 다른 로봇들이 문고리를 잡고 돌리기도 전에 '픽' 쓰러져 버리는 대회 영상을 봤다면 이해가 쉽게 되는 말이다.

오 교수는 특히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안 보이는 내적인 부분을 향상시키는데 더 많은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내적인 향상이란 게 곧 SW적인 부분을 개선 했다는 얘기다.

"힘을 세게 키우고, 다리에 바퀴를 달아 구부리면 굴러갈 수 있게 만든 것이나 팔을 길게 만든 것은 정말 외향적인 장점일 뿐이다. 이동성, 힘, 자율성(오토노미), 커뮤니케이션 등 각각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로봇 운영체제(robot operating system)도 직접 개발해 우리식대로 최적화시켰다. 또 이전까지 하드웨어와 워킹에 많이 집중해왔다면 최근 1년 동안은 운영체제를 비롯해 커뮤니케이션, 영상인식(비전) 등 SW 기술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이 과정에서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휴보

■ 휴보 성공사례는 특이 케이스일 뿐...장기적 투자 필요

휴보는 오준호 교수가 10년 넘게 리더십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02년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정부 연구비도 없었을 만큼 휴머노이드 로봇은 소외된 분야였다. 연구해봐야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곳도 없고 앞서가고 있는 일본을 뒤따라가는 모양 밖에 안될 것이라는 시선이 많았다는게 오 교수의 설명이다. 지금 연간 4억 정도 정부 지원을 받으며 연구할 수 있게 된 건 사정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시간이 없어서 논문도 안쓰고 특허도 안 내고 연구만 하고 있다. 정부 프로젝트를 하나 따내 그냥 걸을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끝냈다면 지금의 휴보는 없었을 것이다. 완벽한 로봇을 추구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고 오 교수는 말했다.

휴보의 성공사례는 오 교수와 그의 팀이 집념을 가지고 오랫동안 한 연구에 매진해 일궈 낸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헌신과 집념으로만 우리 로봇 경쟁력을 키우기엔 로봇 기술의 중요성이 너무 커지고 있다.

오준호 교수는 정부와 대기업이 로봇 기초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봇 연구를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더 중요한 기초연구분야에 약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초연구에 도움을 줘야한다고 본다. 응용연구는 사업성만 있으면 투자가 자연스럽게 몰리기 때문이다. 부품, 소재, 모터, 감속기, 센서 이런 기초 연구는 지금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대기업 역시 10년은 내다보고 기초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지금 로봇 시장이 크지 않다. 로봇 청소기, 교육용 로봇 등이 팔리고 있다. 대기업이 뛰어들려면 적어도 조 단위 시장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몇 백억 정도다. 대기업은 더 먼 미래를 보고 큰 그림을 보고 기초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중소. 중견기업들은 지금처럼 돈이 되는 응용분야를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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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로봇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오준호 교수는 유럽, 미국, 일본 등 로봇 선진국과 비교하면 떨어지지만 우리도 선진국 그룹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기술역사가 30년 남짓 밖에 안되기 때문에 따져보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1~2%를 향상시키 위해 지금껏 쏟아 부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공부를 안 하던 아이도 2주 열심히 하면 80점까지는 맞을 수 있겠지만 95점 맞던 아이가 98점 맞으려면 1년을 해도 어려운 것과 같다. 지금 우리가 딱 성과도 잘 안나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시기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