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서 외국인노동자로 사는 건…

美서 일하는 한인 직장인 5명의 일과 생활 이야기

일반입력 :2014/03/25 18:40    수정: 2014/03/26 11:51

한국서 태어나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인생은 어떤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는 현업 엔지니어의 경험담이 한자리에 쏟아졌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5일 경기도 분당 네이버 사옥에서 개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에서 트위터, 징가, 어도비, 인텔 등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발표자로 나서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를 소개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소개했다.

첫번째 연사로 나선 트위터의 유호현 엔지니어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해 어떻게 트위터란 IT회사에서 일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문헌정보학과 정보과학으로 석사학위을 받은 후 박사과정 중 자연언어처리를 담당하는 인력으로 트위터에 들어갔다.

그는 “사용자와 컴퓨터 사이언스 사이를 이어주는게 자연어 처리인데, 사람을 이해하는 인문학과 모든 학문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며 “어떤 전공을 하든, 무슨 일을 하고 있든 IT업계가 그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엔지니어링을 하는 것이 작아보이지만, 실리콘밸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며 “내가 잘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서 그것을 끝까지 파고 있으면, 언제가 기회가 온다”고 조언했다.

게임회사 징가에서 근무중인 서준용 엔지니어가 다음 발표자로 나섰다. 이날이 징가에서 일한 지 581일째라고 자신을 소개한 서준용씨는 영어와 일상과 회사 생활에 대한 내용을 전했다.

그는 “대우나 연봉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하는데, 실리콘밸리에서 35%는 세금으로 나가고, 27%가 주택임대료다”며 “실리콘밸리는 가장 세금을 많이 떼가는 도시이며, 월세도 엄청나게 비싼 곳이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자신의 업무를 멈추고 남의 일을 도와준 뒤 다시 자기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 일과 함께 남의 일을 도와줬다가, 다시 자기 일로 돌아오는 게 중요한 평가요소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을 외국인 노동자라 생각한다면서, 고용안정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언급했다. 영주권 없이 H1B 취업비자로 일할 경우 해고를 당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불안해 한다고 전했다. 향수병, 친구와 소소한 대화에 대한 그리움 등 고충도 밝혔다.

그는 “문화가 바뀐다는 건 적응에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며 “외국인 노동자는 사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것으로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스트레스가 된다”고 조언했다.

인텔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근무중인 허린 엔지니어는 소통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다.

그는 “제 담당인 시그널 인테그리티 엔지니어는 여러 팀을 조율해 결과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며 “그러다보니 다른 팀과 일할 게 많고, 협업과 타협을 많이 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팅이 정말 많은데, 협업과 타협이란 업무형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미팅에 참석했다가 존재감없이 구석에 앉아만 있거나, 발제를 했다가 공격을 받아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인텔의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강하게 공격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데, 그때 내가 가진 데이터에 기반한 자신감으로 대응해야지 당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통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4가지를 요약했다.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남을 먼저 이해하려 하고, 그다음에 이해받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가운데 감이나 추측으로 발언하면 힘을 얻지 못한다고도 강조했다.

다음은 리더십을 들었다. 경력차이가 큰 사람과 일하게 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내 분야에선 내가 전문가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리더십은 포지션이 아니라 액션이다”며 “인텔은 이끈다기보다 영향력으로 리더십이 표현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함께 일할 때 무임승차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프로젝트 기여를 공식적인 형태로 적극 어필하라고 조언했다.

이어진 패널토의에선 좀 더 구체적인 조언이 나왔다.

얼마나 엔지니어로 오랜 시간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일정 경력이 되면 개발자라 해도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는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도비의 UX디자이너로 근무중인 김나영씨는 “트랙이 두개가 있어서, 매니지먼트 트랙과 프린시펄 트랙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며 “현역으로 남고 싶다면 계속 개발자로 일할 수 있고 매니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유호영씨는 “실리콘배리에서 매니저는 연예인 매니저 같은 역할이다”며 “한국처럼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무가 전혀 다른 존재”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미국에 취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있었다.

서준용씨는 “많은 경우 미국에서 석사나 박사를 취득해 1년간 학생신분으로 일할 수 잇는 비자를 받고, 3년짜리 H1B 취업비자로 일하면서 한번 더 연장할 수 있고, 그러다 영주권을 신청해 받는다”며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다 미국 본사로 가면서 받는 L1비자에서 영주권으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은 건 포트폴리오가 좋다면, 미국에 와서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면접을 봐서 H1B 비자를 받고 일하는 건데, 이는 정말 힘들다”고 덧붙였다.

허린씨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O비자도 학계 저명인사 6명의 추천서를 받고, 포트폴리오로 유능함을 증명할 수 있다면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준용씨는 오픈소스 커미터가 되거나, 기트허브를 경력관리 수단으로 잘 관리하는 것을 추천했다. 김나영씨는 일하고자 하는 회사가 원하는 스킬세트를 갖춰야 채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펙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직무에 딱 맞는 스킬세트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어문제에 대한 조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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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현씨는 “저의 경우 회의를 하게 되면, 시작 전에 먼저 가서 하고 싶은 말을 화이트보드에 그려놓는다”고 말했다. 김나영씨는 “커뮤니케이션이 목적이니 말이 아니라도 시각적인 부분을 동원해도 된다”며 “언어가 소통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거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면서 하고 싶은말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준용씨는 “미국엔 네이티브가 아닌 엔지니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배려가 있다”며 “오히려 서로 언어가 서툴 경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