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닭이나 씨암탉 되려면 독립적이어야"

실리콘밸리 IT 한인 개척자들이 주는 조언

일반입력 :2014/03/25 13:08    수정: 2014/03/25 14:14

남혜현 기자

실리콘밸리를 잘못 따라하다가는 닭이 아닌 살찐 병아리가 된다. 실리콘밸리에 온 한국인들은 남이 다 떠먹여 주길 바라는데, 현지에선 그런 의존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쌈닭이나 씨암탉이 되려면 독립적이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2천여명이 넘어섰다. 실리콘밸리 하이테크 부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 '베이에어리어 K그룹' 회원만 2천600여 명이다. 알만한 미국 IT 기업에 한두명은 한국인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막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는 후배들에 어떤 조언을 해줄까.

페이스북에서 IT컨설턴트로 일하는 K그룹 윤종영 회장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5일 경기도 분당 네이버 사옥에서 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참여, 독립적인 주체로서 네트워크를 탄탄히 해야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이 강조한 것은 네트워크와 적극성이다. 실력은 기본이다. 실력을 갖췄다면 실리콘밸리에서 차별 받지 않는다. 다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무조건 찾아오지 않으니 적극성을 갖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활용해야 한다. 그를 포함한 K그룹 멤버들이 한국까지 날아와 청중 앞에 선 이유다. 경험을 공유할테니, 또 다른 성과를 함께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는 2천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다며 실리콘 밸리는 굉장히 열려 있는 공간이므로 내 아이디어를 나혼자의 지식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픈하고,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구하라고 말했다.

윤 회장의 기조연설 이후, 독립성과 적극성을 갖춘 실리콘밸리 한인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투자 받기 위해 무려 70여곳의 벤처캐피탈을 찾아 다닌 배정융 에잇크루즈 대표도 실리콘밸리에서 투자 받기를 주제로 연단에 섰다. 그가 강조한 것 역시 탄탄한 네트워크다. 가능한 많은 이들을 만나고 각각의 만남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한국과 다른 문화를 먼저 배우고, 철저한 준비 끝에 사람들을 만나라고 조언했는데, 한국과 같은 '빨리빨리' 습성은 잊어야 가능한 일이다. K그룹을 포함해서 현지 다양한 모임과 파티에 참석, 시간을 들여 미국의 스탠드업 네트워크 문화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 네트워크를 탄탄히 쌓고 자신의 스피치 능력, 레퍼런스를 체크한 후에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더디게 보일지몰라도 훨씬 빠르게 성공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배 대표는 빨리빨리 문화는 실리콘밸리에서 통하지 않는다. 시간 계산을 해서 투자자 뿐만 아니라 고객, 기술자 등 관련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나야 한다며 아이디어를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지금은 실행이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에서 일하다 퇴사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창업에 도전한 에릭 킴 스트림라이저 대표는 '비전'을 먼저 만들고 그에 맞는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후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한다. 기술력을 갖춘 후에 투자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배운 토종 엔지니어로서, 미국식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인들에 가장 힘든 것은 영어가 아닌 토론 문화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는 토론에 익숙해진 미국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도 겪었다고 했다. 물론, 거듭된 토론 훈련만이 해결법이다.

디자이너 출신 창업자인 이동일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시민권자다. 이민 1.5세로서 그가 본 한국인 창업자들은 대기업에 취업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 많은데, 도전 정신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라며 용기 있는 도전 정신을 갖고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델, 모토로라 같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에서 일하다가 창업한 도전자다. 렌트비를 못 내서 차가 압류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창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구글글래스와 관련한 스타트업을 진행 중이다. 강남스타일에서 싸이가 입은 턱시도를, 저렴한 가격에 한국에서 1천500벌 들여와 미국에서 대박을 냈던 사업 감각이 구글글래스를 보자 다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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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로 창업하면 많이 어려워요. 기술도 만들어야 하고, 사업도 해야하는데 디자이너가 하기 어려운 점들이죠. 해야 할일이 눈덩이처럼 쌓이게 되고요. 그런데 디자인을 아는 사람이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어요. 애플 아이폰, 닥터 드레 헤드폰은 디자인으로 성공한 제품들이잖아요.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참가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250명 정원의 컨퍼런스 룸이 꽉 찼다. 유료 행사임에도 사전 등록만 300명이 넘었다. 실리콘밸리와 하이테크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에, 그만큼 개발자들과 예비 창업자들의 목이 말라왔었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