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 이스라엘에서 배워라"

일반입력 :2011/06/27 11:58    수정: 2011/06/27 15:16

남혜현 기자

소니, 삼성전자, 아이리버 같은 하드웨어 회사에 있다가 출판사에 처음 왔을 땐 적잖이 당황했죠. 생각하는 구조 자체가 서로 많이 달랐어요. 원고 마감 날짜 앞두고 작가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찌나 황당하던지…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 외국계 하드웨어 업체를 두루 거친 김군호 부사장이 연초 유명 출판사인 미래엔에 합류했다. 미래엔은 대한교과서를 전신으로, 교과서와 아동용 도서, 문학서 등을 펴내는 국내 대표 출판업체다.

교과서 출판은 종이책 일변 출판업계서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둘째라면 서러운 분야다. 작가나 편집자들에 효율과 수익은 창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개념이었다. 때문에 그가 처음 출판사에 들어왔을 때, 업계서는 미래엔과 김군호 부사장의 향방에 주목했다. 하드웨어와 콘텐츠가 불협화음 없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을까?

6개월 만에 중간평가를 내리자면 적어도 김 부사장과 미래엔 편집자들은 제법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났다. 김 부사장은 직원들로부터 출판에 대한 이해를, 직원들은 그에게 효율과 수익의 관점을 공유한다.

아이리버 사장 시절 꼼꼼한 일처리 덕에 '김 대리'란 별명을 얻었던 그는, 이제 '김 변태'로 업그레이드 했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러 불러들여진 대장장이이기에, 이종적인 두 분야를 줄타기하며 욕도 먹고, 칭찬도 듣다보니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 것이다.디지털 콘텐츠 공부에 재미를 붙인 김군호 부사장을 최근 미래엔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이자리에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향후 전자책 사업 성패의 열쇠가 될 것이라며 미래엔의 미래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미래엔은 오는 2015년까지 그룹 매출 목표를 1조원으로 잡았다. 이 중 매출 다수를 책임 질 핵심 사업은 바로 '콘텐츠'다.

김 부사장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사업을 확장하겠다며 정부와 학교를 대상으로 한 국정교과서 사업을 넘어, 이젠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문화 회사로 발돋움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자책 활성화, 대기업도 책임 있다

이스라엘에 부러운 점이 있어요. 정부가 뭐라하던 기업이 우선 시행하고 본다는 것이죠. 한 기업이 사재를 털어 영리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초등학생을 위해 전자책 사업을 진행하더군요. 엄청나게 큰 IT기업인데, 자기네 사재 천억원을 들여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아이들이 멀티미디어로 잘 만들어진 콘텐츠로 수업을 하는데 50분 동안 자기도 모르게 딴 생각을 안하고 공부를 하더군요. 이게 디지털 교과서가 지향해야 할 모습 아닙니까?

단순히 텍스트를 PC나 태블릿으로 옮긴다고 해서 제대로 된 전자책인 것은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자책은 수단일 뿐, 목적 그 자체는 교육의 효율성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교과서가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은 많다. 통신, 단말기, 콘텐츠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에는 '돈'이 많이 든다. PC든 태블릿이든 교실 내에 제대로 된 환경을 갖추려면 가장 먼저 직면하는 게 비용 문제다.

김 부사장이 이스라엘을 부러워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그 빈 공간을 기업이 사재를 털어 메운다는 것이다. 정부나 출판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을 기업이 나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에서 그는 가능성을 봤다.

디지털 교육 환경이 정착되면 지금 국내서 논란이 되는 열반제도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학습 능력에 맞춰 수업을 할 수 있어, 한 교실내에서 교사가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죠.

이스라엘 모델이 국내서도 가능할까? 그의 대답은 물론 가능하다이다. 이스라엘서도 그같은 모델이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 고유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듯, 이스라엘도 PC로 사용하던 콘텐츠를 태블릿으로 바꾸면서, 대신 편리와 재미 요소를 넣었다고 그는 강조한다.

단순히 주기만 하는 인터넷 교수법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데, 정부와 출판사, 학교, 기업이 모두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디지털 교과서, 더 쉬어져야 한다

전자책은 텍스트가 단순히 스마트폰으로 옮겨 간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로 표현 가능한 콘텐츠를 100% 발휘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를 만났다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멀티미디어와 결합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는 전자책 발전이 종이책 앞길을 막지나 않을까 하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일침을 날렸다. 디지털 출판과 아날로그 출판은 기본적인 성격부터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엔이 준비 중인 콘텐츠 사업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적어도 교과서 업체에선 전자책 사업의 비전과 발전 속도가 가장 앞섰다고 자부하는 그다.

지난 2월 미래엔이 국내선 처음으로 아이패드용 과학실험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한 것은 물론, 상반기 내 '내일은 실험왕'을 중국어와 영어, 일어로 번역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태블릿과 스마트폰 앱 개발을 통해 디지털 출판 사업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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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전자책이 성공하려면,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금보단 많이 쉬어져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메가스터디가 왜 인기를 끌었는지 아세요? 유명 강사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교과서든, 일반 서적이든 전자책은 직관적인 아이폰 인터페이스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용자경험(UX)를 극대화한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하나의 시험 작업이이라고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