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데이터센터 장비 왜 직접 만들까

NIC기술원 이강원 원장-안재석 매니저에게 묻다

컴퓨팅입력 :2016/03/04 07:36    수정: 2016/03/17 16:46

출범 5년을 앞둔 페이스북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가 일반 기업뿐아니라 통신사업자를 위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술을 다루는 방향으로 확장 추세다. 올들어 5G 네트워크를 비롯한 미래 인프라 구축을 위해 OCP 활동에 적극 나설 뜻을 밝힌 SK텔레콤의 행보가 주목된다. 공식적인 OCP와 SK텔레콤의 관계는 올초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지난 1월말 독일, 미국, 영국, 한국 등 지역의 5개 통신사와 함께 'OCP텔코프로젝트(OCP Telco Project)'라는 이름의 OCP 부속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한국뿐아니라 아시아권내 유일한 참가자였다.

연초 SK텔레콤같은 통신사의 OCP 합류는 그 자체가 화젯거리였다. OCP는 페이스북이 고효율 데이터센터 기술을 직접 연구하다, 관련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며 발족시킨 기술개발 프로젝트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랙스페이스, 콴타 등 일반 기업용 IT인프라 공급업체들이 주류였다. 그간 IT인프라 시장에서 SK텔레콤같은 통신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기술 공급자나 생산자보다 소비자 쪽에 가까웠다. 이런 통신사가 OCP 관련 활동에 목소리를 내고 그 성과를 강조하는 모습은, 향후 국내외 통신인프라 솔루션과 관련된 시장 생태계의 변화를 예상케 했다.

OCP와 OCP텔코프로젝트에서 SK텔레콤의 누가, 어떤 변화를 추구하려는 걸까. 앞선 물음의 해답은 간단하다. SK텔레콤 종합기술원 산하 'NIC기술원'이 그 주인공이다. NIC기술원의 'NIC'는 네트워크IT컨버전스(Network IT Convergence)를 줄인 건데, 이는 별개였던 기존 통신 인프라와 IT 인프라의 융합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걸로 일단 뒤이은 물음, SK텔레콤이 OCP와 OCP텔코프로젝트 활동으로 추구하려는 변화의 성격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다. 나머지 구체적인 설명은, 최근 만난 이강원 NIC기술원장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 원장은 통신사가 통신인프라를 통합할 차세대 데이터센터에 OCP 하드웨어를 쓰는 게 맞는 방향이라 봤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같은 OTT 회사들이 IT인프라에 그런 구성을 적용해, 대규모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높은 비용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점과, 벤더들이 지적하는 안정성과 효율성 우려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SK텔레콤이 도입하려는 차세대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OCP 기술을 활용할 건데, 곧바로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OCP 커뮤니티 안에서 직접 개발에 참여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밟으려 한다고 한다.

SK텔레콤.

"우리는 OCP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활동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앞으로의 활동을 봐(줘)야 한다. OCP 스위치와 서버 등을 우리가 도입하는 게 타당할지, 아닐지 검토 중이다. 현 OCP 기술은 페이스북 데이터센터에 맞춰 개발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과 간극을 보인다. 어떤 갭을 메워야 하느냐(를 검토한다)가 첫번째(활동 목표)라 생각한다. 둘째로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과 자체 노하우를 그 쪽에 공개하려 한다. SW스택이 될 수도, 어플라이언스가 될 수도 있다. 공개에 따른 이점은 (공개 기술을 사용할) 잠재 고객들로부터 구체적인 피드백과 요청을 받을 수 있다는 서버나 스위치 등을 양산하는 대만 ODM 업체들과 손잡고 일할 기회도 얻을 수 있겠다."

■"차세대 인프라, OCP 하드웨어로 가야"

NIC기술원은 실제로 OCP 규격 기반 스토리지와 스위치 장비를 개발 중이다. SK텔레콤이 지난달 중순 서울 잠실에서 열린 '오픈스택데이코리아' 행사장에 전시한 데이터센터용 스토리지 장비도 NIC기술원 작품이다.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저장매체로 쓴다. 실제 역할을 엄밀히 구별하자면 NIC기술원은 설계를 맡았고, SK하이닉스는 핵심부품인 플래시 저장매체를 생산했다. 스토리지 시스템이라는 형태로 제작한 건 협력사 KTNF다. SK텔레콤은 이 장비를 SK브로드밴드같은 그룹 계열사에 시범 공급 중이라고 밝혔다. 왜 만들었을까.

"(자체 개발한) 스토리지는 SK브로드밴드에 BMT를 거쳐 미디어 서버로 들어갔다. 실 운영 환경에서 테스트 중이고, 본격적인 공급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SK텔레콤이 하드웨어를 파는 게 의외라고 하는데, 트렌드에 대응하려는 것일 뿐이다. 기존 주류 스토리지는 하드디스크 기반이었지만 플래시 기반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도입 비용면에서 1년 안에 플래시 가격 하락세가 디스크를 추월하는 시점이 올거다. 그리고 SK하이닉스가 단품 판매하는 플래시를, 우리가 망 운영 개선 위한 데이터 분석 장비에 쓸 목적으로 패키지화하려는 이슈(목적)가 있다."

즉 이 원장이 말한 SK텔레콤의 자체 플래시스토리지 제품의 존재 의의는 표면상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직접 만들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사실 스토리지만이 아니라 네트워크 스위치같은 다른 영역에도 OCP 기반 인프라 장비를 만들어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더 큰 목적은 여기서 드러난다. 단순한 기성 솔루션 수요 대체가 아니라, 벤더 종속성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구상이다.

SK텔레콤이 스토리지와 함께 언급한 자체 스위치 개발 계획도 이런 기술 공급자에 대한 의존성 탈피로 연결된다. 플래시스토리지 제품을 양산해 외부에 팔 시점으론 내년을 예상하라는 답이 나왔다. 즉 수익화는 나중 얘기였다.

"우리의 주안점은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사업적으로 어떻게 이익을 내겠다든지 하는 얘기는 좀 먼 얘기다. 물론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자체 개발하는 게 다 좋진 않다. 우리가 생각할 때 (스토리지를 예로 들어, 제대로 만들려면)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플래시 기술력과 우리가 가진 현업 인프라 운영에 대한 이해를 조합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벤더 종속성을 벗기 위해 OCP같은 오픈소스 기술을 도입한다는 얘기는, 결과적으로 해당 분야의 장비 벤더들과 시장에서 대립할 가능성을 전제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OCP 스토리지가 많이 쓰이면 그만큼 기성 EMC, 히타치, IBM, 넷앱같은 회사가 돈을 덜 벌게 된다. OCP 스위치가 많이 쓰이면 그만큼 시스코, 주니퍼, 노키아, 에릭슨같은 회사의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이런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이강원 SK텔레콤 NIC기술원장 상무.

"네트워크 벤더들이 그런 (OCP 장비 확산) 트렌드를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의 비즈니스가 하드웨어보다 SW기반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우리에게 솔루션을 제안할 때 그런 기술 로드맵을 제시한다. 시스코와 에릭슨의 협력이나, 노키아의 '에어프레임(OCP 규격 호환 장비)'도 그 연장이다. 에어프레임도 기술적으로 오픈스택 기반, SDN 기반, NFV 기반이다. 화웨이 엔터프라이즈 포트폴리오도 그렇다. 결국은, 우리가 변신하고 있는 것처럼 벤더들 역시 변신하고 있다. 양측은 기존 관계가 해체되는 게 아니라 변신하는 과정에 있는 거다."

■"기술 기여 말고도 가능한 역할 많아"

SK텔레콤 측에 따르면, 현업 노하우 기반의 자체 기술 개발이 결국 필연적으로 OCP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활동 참여로 귀결된다. NIC기술원 소속의 SW엔지니어 안재석 매니저의 설명이다.

"지금 오픈소스 하드웨어 프로젝트 참여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 오픈소스SW가 유명하지 않았을 때와 비슷하다. 상용SW와 오픈소스SW의 차이가 어떤지를 물었던 것처럼, 벤더의 하드웨어 솔루션과 OCP같은 오픈 하드웨어를 바라보는 상황이다. 이제 하드웨어 인프라 쪽에서도 오픈소스에 대한 가치 인식이 강해졌다. 시장 수요에 따라 개방형 아키텍처가 나오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앞서 존재했던 오픈소스SW와 맞물려 시너지를 발휘할 여지가 생겼다. 우리는 이런 기술이 통신사 환경을 잘 지원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

NIC기술원은 OCP의 오픈소스 하드웨어 프로젝트 이전에 오픈소스SW 관련 프로젝트에서도 활동해 왔다. 소속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데 꽤 노력을 기울였다고. 플래시스토리지 하드웨어 제품화에 앞서, 오픈소스 분산스토리지 '세프(Ceph)'를 플래시 저장장치에 최적화한 버전으로 만들어 해당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기여한 바 있다. 현재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과 네트워크기능가상화(NFV) 기술을 다루는 비영리재단 오픈네트워킹랩(ON.Lab)은 SK텔레콤의 직원이 파견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안 매니저에 따르면 SK텔레콤 종합기술원의 NIC기술원은 원래 'NIC랩'이라 불린 조직을 키운 것이다. 당시 조직의 기능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쏠려 있었다. 기술원으로의 확장은 오픈소스 하드웨어 기술을 개발하는 OCP 관련 활동을 위해 이뤄졌다. NIC기술원은 기존 오픈소스 SW쪽의 참여 경험을 살려 OCP 오픈소스 하드웨어 쪽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향후 코드 컨트리뷰션도 가능한 수준으로 가도록 하는 과정으로 보고, 오픈소스 기술 사용중 얻은 경험이나 요구사항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지금보다 열린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같은 기업이 프로젝트에 대한 요구사항을 잘 정리해 전달하는 것도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컨트리뷰션)라고 본다. 커뮤니티 입장에선 오픈소스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방향을 잘 잡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개발된 결과물을 가져가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현장의 문제를 제보하는 것도 컨트리뷰션의 한가지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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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게 페이스북처럼 전체 데이터센터 하드웨어를 설계, 제작하겠다는 얘기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NIC기술원의 입장은 SK텔레콤같은 대기업의 오픈소스 SW 및 하드웨어 프로젝트 참여가 현시점에 더 이상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어지는 안 매니저의 설명이 이를 함축한다.

"5년쯤 전엔 아무도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대기업이면 다 참여해야 하는 대상이라거나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활동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요즘은 오픈소스가 '경제' 그 자체다.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실패하더라도 배워나가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오라클도, 우리가 들어본 모든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기업들은 모두 (SK텔레콤이 OCP 이전부터 주력해 온 클라우드 구축 오픈소스 SW) '오픈스택'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기여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오픈소스의 빠른 변화를 끌어안지 못하면 세계적 흐름을 놓칠 거라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