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멀리가기 위해 같이 가자

전문가 칼럼입력 :2015/11/27 11:01

황민철 이피피어패럴 대표

2차 대전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 걸어가는 것이 성공이다”는 말로 패전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국민의 마음에 용기를 되살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성공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벽한 아이템으로 성공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이피피어패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피피어패럴 황민철 대표

2013년 필자는 패션잡화 브랜드 ‘토마스브라운(THOMAS BROWN)’을 론칭했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트렌디한 감각의 남성 서류가방이 주품목이었다. 남성용 가방 시장은 투미, 샘소나이트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외에 닥스, 빈폴, 헤지스 등 거대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신제품이 출시되기 무섭게 카피 제품을 쏟아내는 동대문 업체들까지 가세해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감각의 토마스브라운 가방이 출시돼 인기를 끌자 동대문 업체들은 물론, 대기업 패션 브랜드까지 카피 제품을 출시했다. 당연히 소송을 통해 제품을 회수시키고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했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얼마 후, 이번엔 해외 패션 브랜드 ‘T사’에서 자사 상표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상표권 무효소송을 걸어왔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일에 몰리는 상황에서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소송장을 받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500V 김충범 대표를 만났다. 10년 이상 중소기업을 운영해온 김 대표는 이피피어패럴이 직면한 상황과 초보 경영자로서 내가 겪고 있는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리고 “작은 기업이 혼자 힘으로 시장에 맞서긴 정말 힘들다. 멀리 가기 위해서 같이 가자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500V 합류를 제안했다.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소기업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500V의 지원에 힘입어 T사와의 상표권 분쟁에서 최종 승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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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V를 통해 재무적인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제조업은 타 업종과는 다르게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제조비용이 투입된다. 자본금과 매출 수준에 적정한 재고 수준을 유지하면서 현금 흐름을 원활하게 가져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내 유통업계의 특성상 매출 발생과 현금 흐름 사이에 2개월 이상의 시차가 발생한다. 적은 자본금으로 회전율을 극대화해야 하는 소규모 제조 스타트업이 시차를 극복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매출을 일으키고도 도산하는 흑자도산 기업이 생겨나는 이유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질 때마다 500V는 기꺼이 이피피어패럴의 구원투수가 되어주었다.

패션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지속성'이다. 한 시즌에 바로 홈런을 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패션 비즈니스에서는 무엇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튼튼한 체력이 필요하다. 이피피어패럴은 500V 합류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영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고, 전통적인 패션제조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도모하는 안목과 기회를 가지게 됐다. 자라, 풀앤베어, 마시모두띠, 버쉬카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매출액 240억 달러 규모의 거대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성장한 스페인 인디텍스그룹도 ‘디자인-생산-유통’의 3단계 혁신 이전에는 스페인의 조그만 여성의류 공장에 불과했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선 한 우물에 고이지 않고 함께 혁신하여 변화하는 능력이야말로 '멀리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는 것을 선택한 필자의 경험담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혁신 스타트업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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