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기술 뜨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천국

일반입력 :2014/10/23 18:03

손경호 기자

사업자 제휴부터 시작했지만 프로세스를 거꾸로 가서 결국 사업자 지위부터 확인해야했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

한국에서는 창업지원법상 금융업에 대한 투자가 제한돼 있다.

-이승건 비바퍼블리카 대표

영국서 핀테크 스타트업 해 본 경험이 있어서 한국에 부푼 꿈을 안고 왔지만 이렇게 어려운 장벽이 많은 줄은 몰랐다. 차라리 해외 액셀러레이터로부터 투자 받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신재은 퓨처플레이 CFO

'핀테크(Fintech)'는 금융(Finat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글로벌 시장에서 전통적인 금융회사의 영역이었던 결제, 송금, 대출 등 업무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IT기술을 결합을 통해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넓게 보면 페이팔, 알리페이는 물론 국내서 최근 서비스가 시작된 카카오페이, 카카오 뱅크월렛, LG CNS 페이나우플러스 등 간편결제가 이 분야에 포함된다.

전 세계에서 수 많은 스타트업들이 핀테크 분야에서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일부에서는 연말에 상장 계획까지 내놓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스타트업들의 하소연을 듣기 바쁜 실정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금융관련 규제들이 많은 탓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본격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서울 삼성동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개최된 '제1회 핀테크 미니 컨퍼런스'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발표자 혹은 패널로 참석해 규제로 둘러싸인 금융 관련 스타트업의 현실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발표를 맡은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국내서 사용되는 대부분 신용카드에 붙어있는 근거리무선통신(NFC)칩 기반 교통카드결제(페이온)를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쇼핑 결제와 연동시키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문제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스마트폰에 신용카드를 갖다대는 것만으로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기술을 모바일 쇼핑과 연동시키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먼저 모바일 쇼핑 사업자들을 찾아가 제휴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런데 담당자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신용카드사들과 먼저 제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사에서는 금융감독원 보안성 심의를 받아오면 협력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금감원을 찾아갔지만 전자금융업자가 아니면 심의를 받을 수 없다고 답만 돌아왔다. 결국 황 대표는 전체 금융 관련 사업에서 가장 첫 단계인 사업자 지위를 확인하는 단계에서부터 다시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NFC는 전자금융보조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 경우에는 아예 보안성 심의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에 결국 9월 부터 자격이 부여된 결제대행(PG)사와 함께 보안성 심의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황 대표는 적어도 보안성 심의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열어줬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시범서비스를 하기 위한 기회는 줘야하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다른 스타트업들도 충분히 공감하는 분위기다.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뱅킹앱에 접속하지 않고서도 송금 업무를 할 수 있게 하는 '토스(toss)'라는 서비스를 개발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전자금융거래법 상 공인인증서를 쓰지 않고서도 다양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허용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전규제를 통해 사업을 할 수 있는 싹을 잘라버린다는 우려가 든다며 해외에서는 먼저 사업을 허용한 뒤 규모가 커지고, 이슈가 되면 그때서야 규제를 만들고, 절대 허용 안 되는 사항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네거티브 룰셋을 만드는 방식이라 국내 환경과는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창업지원법상 금융 분야에 대해서는 관행적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스타트업들에게는 어려움이다. 벤처캐피털은 물론 연기금 등에서도 감사가 나왔을 때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핀테크들에 대해 사실상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에서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인 '스프레딧(spreddit)'을 창업하기도 했던 신재은 퓨처플레이 CFO는 유럽에서는 지난 5년 간 전 세계 핀테크 분야 투자 규모에서 13%를 차지하는 4억달러 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영국과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꾸준한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CFO는 한국과 영국의 상황을 비교하면 크게 3가지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먼저 앞서 지적과 마찬가지로 규제가 많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영국에서는 기업을 만드는 일 자체는 상당히 쉽다고 말했다. 스프레딧 같은 경우에도 고작 자본금 1천700원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자본금이 얼마 이상 돼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고 전했다. 핀테크 분야의 경우에도 영국에서는 2개 분야로 나눠 월 거래량이 300만달러 이하일 경우에는 소액결제 수준으로 거의 규제가 없고, 자본금이 얼마 이상 돼야한다는 요구사항도 없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펀딩이다. 영국에서도 아직까지 핀테크에만 집중하는 벤처캐피털을 찾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은행이나 기존 금융권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지원이다. 펀딩만큼이나 핀테크에서는 금융권과 핀테크 스타트업들 간 협력관계가 중요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바클레이 은행은 핀테크 액셀러레이터라는 모임을 만들어 핀테크에 필요한 API까지도 지원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가에서 JP모건 등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홍병철 레드헤링 대표는 경제시스템 상 외환거래를 포함한 금융시장은 동맥역할을 하는데 지금은 여러 규제에 막혀 정책이 동맥을 끊고 있는 상황이라고 현상을 진단했다.

그는 또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금융분야 내에 결제를 제외하더라도 분석, 위기관리, 컴플라이언스, 보안 등 영역에서 충분히 핀테크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최기의 전 국민카드 사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27년 동안 금융업에 종사했던 최 전 사장은 우리나라에 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창의성 부족, 여러 조건 상 금융이 서비스 상품이라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핀테크라는 기술이 금융권과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서는 관련 종사자들이 함께 하는 단체를 구성해 국회 정무위원회와 같이 입법이 가능한 의원들과 함께 풀어가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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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규제 개혁 철폐를 강조하며 공인인증서 의무사용폐지, 간편결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들이 마련됐다. 이 와중에 LG CNS의 엠페이 기술이 적용된 카카오페이, 페이게이트 금액인증4.0 등 새로운 결제기술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국내 스타트업들도 사용자들 입장에서 10여 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절차 없이도 송금, 대출 등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증권사쪽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모태펀드라 불리는 한국벤처투자 대표를 맡기도 했던 서강대 경영학부 정유신 교수는 은행, 카드, 보험 등 금융업 각 섹터별로 이렇다 할 수익처를 찾지 못하면서 변환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며 지금 시기가 핀테크와 같은 기술이 금융권 내부에서도 다양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