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웹툰2] “좋은데 슬퍼”...애매한 인생사 '삶은 토마토'

캐롯 작가 “인간적인 만화로 기억되기를”

인터넷입력 :2020/04/05 10:54    수정: 2020/04/13 09:45

대중문화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웹툰은 요즘 사람들에게 익숙한 디지털 디바이스인 스마트폰을 통해 주로 전달되면서도, 드라마나 예능 등 쉴 틈 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콘텐츠와 다르다. 감상할 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거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백의 미학을 갖고 있다. 이런 공감과 반추의 매력 때문에, 정서적 위안과 위로를 원하는 이들이 웹툰을 많이 찾고 있다.

이에 지디넷코리아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레진코믹스와 함께 지친 일상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다양한 웹툰 속 이야기를 전한 쇼미더웹툰 시즌1에 이어, 쇼미더웹툰 작가에게 직접 듣는 시즌2를 마련했다.

여섯 번째 인터뷰는 현대인이 느끼는 다양한 연애 감정을 일상의 음식으로 전하는 '삶은 토마토'의 캐롯작가다. 작품은 젊은 시절 겪는 삶의 여러 감정들을 돌아보며 차분하게 녹이고 있다. 연애와 이별 그리고 추억 등 때론 벅차고 때론 가슴 아팠던 청춘의 감정들을 한 그릇의 음식을 통해 전하는 캐롯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참고기사: 쇼미더웹툰 '삶은 토마토']

캐롯 작가가 그린 인터뷰 관련 이미지(이하 동일)

다음은 캐롯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작품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이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토마토가 채소냐, 과일이냐 하는 문제는 미국 대법원에 오르기까지 했을 만큼 전 세계적인 논제입니다. 채소라 하기에도, 과일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토마토. 나이가 많지 않아 아직 삶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저의 짧은 생을 비유함에서는 이 토마토만큼 적절한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며칠 전 멋진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던 일을 떠올려 보면요. 제 소시민적인 삶에서는 말도 안 되게 멋진 분들과 만났고, 그 순간을 집에 돌아가서도 며칠이고 떠올리며 설렜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슬프기도 했답니다. 왜냐면 사실 대다수의 멋진 분들에게 저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고 삶일 뿐이고, 더 이상 삶의 접점이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즐거운 시간이 흘러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과하게 슬프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과장이 아니고 저는 항상 가장 기쁠 때 가장 슬픕니다. 명료하게 한 감정을 느낄 때는 운이 좋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삶은 이토록 애매하구나. 삶은, 참 토마토 같구나. 그런데 내 만화는 주로 삶의 아주 짧은 순간. 복잡하고 애매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들을 그리고 있지.' 해서 삶은 토마토입니다.“

Q.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웹툰 작가가 된 배경과 계기 등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웹툰 그리는 캐롯입니다. 저는 레진코믹스에서 ‘삶은 토마토’, 다음웹툰에서 ‘이토록 보통의’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웹툰 작가라는 직업은, 선택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버린, 혹은 그 직업이 제게 찾아와준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원래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 만화거든요. 광고 일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직업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기 보다는, 삶을 바꿀 기회가 갑자기 찾아온 상황에서 선택했던 것뿐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원래는 투잡으로 시작했는데, 도저히 가능한 스케줄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 그만두고 만화만 그리게 됐습니다.

지금은 하루하루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웹툰 작가가 되고, 독자님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며 이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후에는 또 광고 일도 해보고 싶습니다.”

Q. 작가님이 평소 작품 활동에 영감을 받게 되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을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해주세요.

“주로 휴식하기 위해 작품들을 즐기는 편이라서 좀 어려운 질문이네요… 식견이 얕기 때문에 무슨 콘텐츠가 가장 좋았고, 영감이 됐냐고 하면 당황스러운데, 최근에 무슨 책을 읽었냐고 질문을 바꾸면 좀 편해질 것 같아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있는데, 복제인간들의 슬픈 운명과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사실 복제인간이라는 게 스포일인데 책 소개에 그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정말 아름다운 소설인 것 같습니다. 전 낯선 이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외계인, 복제인간, 외국인…

'내가 절대 될 수 없는 이들'. '나와 절대 동일하지 않은 그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Q. 연재 과정에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들었나요.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은 모든 직업군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기 때문에 옆으로 밀어두고, 웹툰 작가가 가진 직업적 특수성 때문에 힘들었던 일에만 주목해보자면요. 만화가 주목을 받고, 출판, 영화,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그 전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명인이나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하게 됐고요. 갑자기 멋진 장소에 초대받는 것과 같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들도 일어나고, 계약이나 미팅 시에 너무나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친구들이나 부모님도 마구 띄워 주고요. 이 같은 일들이 기쁘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한 독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그 마음을 다잡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앞에 계신 분들이 훨씬 대단하고 훌륭한 분들이다. 다만 그분들이 나에게 좋은 작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것일 뿐이다. 멋대로 착각해서 우스운 사람이 되지 말자.' 하고 많이 노력했고 지금은 다시 차분해진 상태입니다.”

Q. 작가가 꼽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어떤 장면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삶은 토마토' 에피소드 중 '첫 마카롱' 편.(자료제공: 레진엔터테인먼트)

“단편들로 구성된 이야기라 하이라이트를 꼽는 것이 어렵고 어색하네요. 하이라이트랄 것까지는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 마카롱’ 이야기입니다. 초반에 게재했던 에피소드라서 매우 거칠지만요. 첫 만남은 너무 달아 깜짝 놀랄 정도였지만 일생에 걸쳐 가끔씩 떠오르는, 그 잘 부서지고 금세 사르르 녹아버리는 마카롱이라는 디저트를 첫사랑에 비유한 작품입니다. 나중에 마카롱이 남학생의 심장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장면이 있는데 재미있는 은유였던 것 같아 좋아합니다.”

Q. 이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공개한 적 없었던 에피소드 있을까요?

“사실 가끔 만화 속에 나온 음식들을 제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시고 선물해주시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다룬 음식들 중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도 많습니다. 표현했을 때 누구나 쉽게 맛을 떠올릴 수 있는 음식들을 위주로 선별했고요. 역시 마찬가지로 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삶은 토마토와 오이를 못 먹는 남자친구도 없었고, 비 오는 날 파스타보다는 부침개와 막걸리가 당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느꼈던 대부분의 감정은 제가 느꼈던 감정들입니다.

생각해보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네요. 어느 날 저는 공항에서 우연히 전에 같이 조과제를 했던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됐고, 카페에 들러 도넛을 나눠 먹고 헤어졌습니다. 시시하지만 재밌는 대화를 핑퐁처럼 나누던 중에 '이 사람과 내 생은 더 이상 접점이 없겠구나'하는 직감이 들었어요. 그 순간 너무나 슬펐고 이 사람과 지금 당장 결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죠. 물론 진짜로 하자고 하면 안 했겠지만. (웃음) 그 후로 진짜로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또 연락도 하지 않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그린 것이 ‘기차역과 도넛츠’입니다.

Q. 이 작품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는 누구인가요. 독자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제가 만화에서 표현하고 싶은, 집중하는 주제들은 언젠가 한 번씩 느껴봤음직한, 하지만 강렬하지는 않은 서늘한 감정들입니다. 찌질하지만 불쌍하고, 이해받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고, 가엾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웠던 감정들…. 저는 이런 것들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만화 역시 인간적인 만화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가 10년 뒤에 웹툰을 그리고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일 거예요. 전 사실 10년 뒤에도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 자체가 계획이자 목표입니다. 거기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겠죠. 만화를 그리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할 테니까요.

농담으로 저는 하루만 산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계속 떠오를지 확신할 수 없고, 제가 현실적인 이유로 만화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그때도 제가 잘 견디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만화를 계속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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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인터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궁금해 해주시고,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것이 무척 과분하게 느껴집니다. 변변치 않고 사사로운 저이지만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만화를 그리고 먹고살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열심히 그리겠습니다. 모쪼록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언제나 차 조심. 감기 조심하세요. (코로나19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