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인터넷 패권전쟁, '뉴IP'로 더 뜨거워졌다

'체제 내 거버넌스 경쟁→체제 공방' 급선회…귀추 주목

인터넷입력 :2020/03/30 17:25    수정: 2020/03/31 11: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중국이 미국의 50년 인터넷 패권에 도전장을 던졌다. ‘뉴 IP’란 새로운 아키텍처를 제안하면서 TCP/IP 중심의 '미국산 인터넷'을 뜯어 고치자고 제안했다.

중국의 이번 제안은 '인터넷 거버넌스 공방’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 체제 내 주도권 확보’ 전략에서 한 발 더 나가 ‘새로운 인터넷 질서 창조’ 야심을 드러낸 셈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중국이 오는 11월 인도에서 열리는 ITU 총회에서 ‘뉴 IP’를 안건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ITU 의장국 지위를 십분 활용해 자신들이 인터넷 패러다임을 주도하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뉴IP의 인터넷 헤드 구조. (사진=화웨이)

화웨이가 주도하는 ‘뉴 IP’의 핵심 명분은 2030년 이후 새로운 인터넷 시대 준비다. 홀로그램과 자율주행차 같은 신기술이 본격 적용될 그 때가 되면 TCP/IP 중심의 현재 인터넷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미국, 영국 등은 “인터넷에 독재 시스템을 심으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나 거대 통신사업자들의 인터넷 검열 행위가 일상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미국, ICANN 통해 인터넷 지배…중국, "ITU 체제로 전환" 주장

‘뉴 IP’는 분명 깜짝 반란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공방을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국, 러시아 등이 중심이 된 제3세계 국가들은 그 동안 꾸준히 미국 중심의 인터넷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선 인터넷 탄생 시기까지 잠시 거슬러 갈 필요가 있다.

잘 아는대로 인터넷의 효시는 1968년 등장한 아르파넷(ARPAnet)이다. 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이 만든 아르파넷은 ‘어떤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는 통신망’으로 기획됐다. 미국 국방부가 인터넷의 밑그림을 그린 셈이다.

그 덕에 미국은 50년 이상 인터넷 세상을 지배했다. 초기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존 포스텔 교수가 인터넷 도메인 시스템(DNS)을 관리했다. 그가 월드와이드웹 초기 개척권자였기 때문이다.

1968년 존 포스텔 교수가 사망한 이후엔 본격적으로 미국 정부가 관여했다. 상무부 산하 국가정보통신국(NTIA)이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와 계약을 맺고 주소 관리를 위임했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상무부 등 미국 정부가 갖고 있었다. 각종 인터넷 주소 신설부터 관리까지 미국 정부의 입맛대로 움직였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본부.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인터넷 독점에 대한 불만은 적지 않았다. 특히 제3세계 국가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ICANN 회의 때마다 이런 부분들이 이슈가 됐다. 그 때마다 미국은 각종 이유를 내세우며 불만을 잠재웠다.

그런데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국토안보국(NSA)이 전 세계 인터넷을 전방위 사찰해온 사실이 폭로된 때문이다. 그 이후 반미 여론이 확산됐다.

특히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다자간 국제기구가 DNS를 비롯한 인터넷 관리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인터넷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TU는 국가별로 한 표씩 행사하는 의결구조다. 반면 ICANN은 ITU와 달리 직능 대표별로 할당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ITU가 인터넷 정책을 총괄할 경우 중국, 러시아 등이 숫적 우세를 앞세워 인터넷 거버넌스를 장악할 수 있다. 중국이 ITU 체제를 주장하는 것은 이런 속내에서 나온 것이다.

■ 스노든 이후 분위기 반등…11월 ITU 회의에 시선 집중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호소가 통했다. 하지만 스노든의 사찰 폭로 이후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인터넷을 독점한 미국이 불법 사찰을 무차별 진행한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 때문이다. 특히 중국, 러시아 뿐 아니라 우방으로 통했던 나라들의 고위 관료들까지 사찰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인터넷 세상에서도 반미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은 지난 2016년 상무부 산하 NTIA가 ICANN과 체결했던 인터넷 도메인 시스템(DNS) 관리 권한을 연장하기 않기로 했다. 인터넷 주소관리 권한을 민간 기구인 ICANN에 완전히 넘겨준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ICANN 관리를 포기한 것은 “민간 인터넷 부문이 성숙한 때문”이라고 밝혔다. 상무부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민간의 역량이 올라왔다는 의미다.

에드워드 스노든(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복잡하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군 역량 강화다. ICANN을 상무부 관할 하에 계속 남겨둘 경우 우군이 되어야 할 서방국가들의 지지마저 잃을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중국, 러시아 등이 주도하는 더 큰 공격의 씨앗을 자른다는 점까지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제3세계에 맞설 서방국가들의 결집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이양을 단행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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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뉴 IP’ 제안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시도에 맞서 ‘새로운 인터넷 질서 구축’이란 기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열릴 인도 ITU 회의에선 그 동안의 인터넷 거버넌스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