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은 왜 유튜브가 '공적포럼' 아니라고 했나

"공공 플랫폼 운영하는 사기업은 정부행위자 아냐"

인터넷입력 :2020/02/28 15:13    수정: 2020/02/29 10:5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유튜브는 공적 포럼이 아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적용할 수 없다.”

유튜브와 프레이거유(PragerU)란 미국 보수 미디어 회사간 소송에서 나온 판결입니다. 유튜브가 프레이거유의 콘텐츠 노출을 제한한 행위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이 판결을 한 곳은 미국 제1연방순회항소법원입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유튜브 이용자는 13억명에 이릅니다. 매일 방문하는 사람도 3천만명 수준입니다. 매시간 4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공적 포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법원은 왜 “유튜브는 공적 포럼이 아니다”고 판결했을까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제1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문을 읽어봤습니다. 판결문은 총 16쪽 분량입니다.

유튜브. (사진=pixabay)

■ 연방대법원, 뉴욕주 공공채널 판결 때 '정부행위이론' 엄격 적용

법원은 유튜브 승소 이유로 크게 쟁점을 꼽았습니다.

첫째. 수정헌법 제1조가 적용되는 공적포럼.

둘째. 연방대법원 판례(맨해튼 커뮤니티 액세스 vs 할렉)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 언론자유 규정에 대해 ‘국가행위이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행위자(state actor)는 엄격하게 규제합니다. 반면 민간행위자(private actor)에 대해선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선 지난 해 나온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습니다.

MNN이란 비영리단체가 뉴욕주의 공적이용채널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채널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던 디디 할렉(DeeDee Halleck)이란 제작자가 소송을 걸었습니다. MNN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차단했다는 게 소송 이유였습니다.

공적이용 채널 접근을 제한했기 때문에 수정헌법 1조를 침해했다는 게 할렉 등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은 “공적 채널을 이용한다는 사실만으로 국가행위자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해 연방대법원 판결엔 흥미로운 비유가 등장합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진=씨넷)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지역 식료품 가게가 지역사회 게시판을 열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또는 코미디클럽 주인이 자유발언대를 열기도 하지요.

게시판이나 자유발언대를 연 주체가 특정인의 발언을 막을 경우 어떻게 될까요? 개인의 언론 자유를 침해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식료품 가게나 코미디클럽 주인은 ‘국가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공적 광장’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행위자에 준하는 제재를 가할 순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MNN은 조금 달라보입니다. 뉴욕주가 공적채널 운영자로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정부 면허를 취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면허를 받고 영업하는 기간통신사들은 실제로 엄격한 규제를 받습니다.

대법원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정부가 사인에게 면허를 주거나 독점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그 사인을 국가행위자로 바꾸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민영화된 공익사업자가 해당 지역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강한 규제를 받으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국가 행위자가 되는 건 아니란 겁니다.

따라서 MNN이 공적이용채널에 대해 편집권을 행사하는 행위는 수정헌법 1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 유튜브 콘텐츠에 '표현자유' 적용하지 않는단 의미 아냐

연방대법원 판례가 유튜브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항소법원 판단입니다.

일단 유튜브는 사기업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발언하는 공간이라도 ‘공적 포럼’으로 보긴 힘들다는 겁니다.

이건 미국 법원이 오랜 기간 견지해온 입장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초기 AOL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한 적 있습니다. 한 때 AOL은 유튜브 못지 않은 거대 포럼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9순회항소법원은 “AOL은 (수정헌법 1조 적용을 받는) 국가행위자는 아니다”고 판결한 적 있습니다.

이용자 제작 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돼 있는 디지털 인터넷 포럼은 국가행위자가 아니란 게 미국 법원의 대체적인 입장입니다.

프레이거유는 또 “유튜브는 사실상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유튜브의 편집권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국가행위자는 오직 “전통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정부의 전유물이었단 겁니다. 따라서 “과거에 정부가 행사했던 기능이라든가, 혹은 어떤 형태로든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작업”이란 사실만으론 국가행위자라 판단할 수 없다고 적시했습니다.

(사진=씨넷)

오직 정부만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특별한 권한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선거 관리’라거나 ‘기업도시 운영’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유튜브가 하는 행위는 이런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단순히 많은 이용자들이 몰려든다는 조건만으론 ‘국가행위자’에 준하는 규제를 가하긴 힘들다는 겁니다.

항소법원은 “유튜브를 공적포럼으로 규정짓는 건 패러다임 전환이 될 것이다”고도 했습니다.

정리해볼까요? 항소법원은 “유튜브는 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와는 관련이 없는 공간이다”고 판결한 건 아닙니다.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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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튜브가 플랫폼 내에서 적용하는 각종 알고리즘 같은 것들에 대해 수정헌법 1조를 적용할 순 없다는 겁니다. 유튜브가 정부 기관이 아니라 사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예로 들었던 식료품 가게 주인이 개최한 포럼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식료품 주인은 포럼을 열면서 “고기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포럼 참가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볼 수 없지요. 유튜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