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 캐서린 존슨 별세…"우주 가는 길 열고 떠났다"

향년 101세…우주궤도 계산 탁월한 능력 발휘

과학입력 :2020/02/25 14:49    수정: 2020/02/25 19:1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그(그녀)를 데려오라.”

196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 궤도 비행을 앞둔 우주비행사 존 글렌은 뜻 밖의 요구를 한다. “그(그녀)가 괜찮다고 해야만 떠나겠다.”

사상 첫 지구 궤도 비행이다. 한 치 오차가 없어야 한다. 자칫하면 우주 미아가 된다.

그런만큼 당대 최고 기술들이 총동원됐다. 가장 중요한 ‘비행 궤도’는 IBM7090로 계산했다. 지구상에 있는 컴퓨터 중에선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이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기계는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캐서린 존슨이 10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NASA)

그런데 그 순간, 글렌은 ‘그’를 찾았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그가 괜찮다고 해야만 떠나겠다.”

절체절명의 순간 글렌이 찾은 인물은 캐서린 존슨이었다. IBM 컴퓨터의 계산을 검증한 존슨은 “OK” 신호를 줬다. 그제야 존 글렌은 사상 첫 지구궤도 비행을 떠났다.

2016년 개봉된 영화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장면이다. ‘히든 피겨스’는 NASA ‘머큐리 프로젝트(유인 우주탐사 계획)’를 이끈 세 흑인 여성 영웅을 다룬 영화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존 글렌과의 일화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캐서린 존슨은 우주 비행 궤도 계산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의 사상 첫 달 착륙 때도 존슨이 비행 궤도를 계산했다. 4년 뒤인 1973년 아폴로13호 때도 마찬가지였다.

■ 지구궤도 비행했던 존 글렌 "그가 괜찮다고 하면 떠나겠다"

‘인간 컴퓨터’로 불리면서 미국 우주 탐험을 이끌었던 캐서린 존슨이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24일(현지시간) NASA는 홈 페이지와 SNS 계정을 통해 위대한 한 수학자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존슨은 1918년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태어났다. 이후 100년 이상 계속된 그의 삶은 늘 ‘흑인’과 ‘여성’이란 두 장벽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그가 이뤄낸 수 많은 업적들이 더 밝게 빛난다.

존슨은 수학과 계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흑인들은 공교육 한계는 8학년이었다. 우리 기준으론 중학교 정도. 하지만 존슨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부모님 덕분에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금기를 깨고 입학한 고등학교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덕분에 14세 때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곤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에 입학해서 수학과 과학을 전공했다.

1937년 웨스트버지니아대학을 졸업한 존슨은 한 때 수학자를 꿈꿨다. 하지만 한 동안 교사로 활동했다. 또 첫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존 글렌이 우주 비행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21세기폭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존슨은 1953년 NASA의 전신인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에 몸 담게 됐다. 이 때부터 그는 탁월한 수학 실력을 발휘해 미국 우주 탐사의 밑거름이 됐다.

그가 처음 몸담은 곳은 랭리연구센터였다. 당시엔 흑백 차별이 심했던 시절. 존슨 역시 유색인종들만으로 구성된 연구실에서 일했다.

1958년 미국 정부는 NACA를 NASA로 확대 개편했다. 그 무렵 우주 탐험에도 컴퓨터가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 탁월한 계산 능력 덕분에 ‘컴퓨터’로 불렸던 존슨도 ‘인간 조력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하지만 영화 ‘히든 피겨스’로 유명해진 존 글렌과의 일화는 존슨의 이력에도 결정적인 이정표가 됐다. 이후 NASA가 수행한 수 많은 우주탐사 때는 늘 존슨이 참여했다. 미국 최초 우주 비행사인 앨런 셰퍼드 역시 그가 계산해 낸 궤도를 따라갔다.

■ 2016년 개봉된 영화 '히든 피겨스'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

이런 탁월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존슨의 역할을 외부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NASA 내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을 정도였다.

숨겨져 있던 존슨의 삶은 마고 리 셔털리가 ‘히든 피겨스’를 출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2016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는 흑인이자 여성이었던 그의 삶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NASA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위대한 우주 영웅 캐서린 존슨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진=NASA)

캐서린 존슨. 그는 33년 간 NASA에서 일한 뒤 1986년 은퇴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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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영국 BBC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존슨의 이름을 올리면서 그의 업적을 기렸다.

NASA는 캐서린 존슨 별세 소식을 알리면서 “인종 평등의 선구자이자, 미국이 우주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캐서린 존슨은 NASA에서 가장 뛰어난 영감을 가진 인물 중 한 명”이라면서 우주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