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안드로이드 대부'는 왜 처참하게 몰락했나

에센셜과 앤디 루빈의 실패

데스크 칼럼입력 :2020/02/13 14:56    수정: 2020/10/05 13:5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그는 로봇을 무척 좋아했다. 동료들은 그에게 ‘인간을 닮은 로봇’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예 그 이름으로 된 개인 사이트를 운영했다.

그는 타고난 엔지니어였다. 세상을 바꿀 멋진 물건을 내놓고 싶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멋진 혁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모바일’이었다. 그 때가 2003년. 아직 PC가 IT세상의 중심이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그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를 했다.

“이용자의 위치 정보와 취향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 모바일 기기를 개발하려 한다. 그곳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2년뒤, 그의 회사는 구글에 인수된다.

안드로이드 대부 앤디 루빈. (사진=씨넷)

■ 스티브 잡스와 앤디 루빈, 그리고 애플과 구글의 '모바일 포에니 전쟁'

그는 앤디 루빈이다. ‘안드로이드 대부’로 통하는 인물. 이쯤에서 정정하자. 동료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안드로이드’였다. 그리스어 어원을 갖고 있는 이 말은 ‘인간을 닮은 로봇’이란 뜻이다. 그가 운영했던 개인 사이트도 ‘안드로이드닷컴’이었다.

구글에 합류한 앤디 루빈은 승승장구했다. 핵심 사업인 안드로이드 부문 수장을 맡았다.

그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구글에 합류한 지 2년 만에 공개된 아이폰 때문이었다. 물론 애플의 아이폰 프로젝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제품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충격에 사로잡혔다. 고민 끝에 그들은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재점검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구글의 첫 안드로이드 폰이 세상에 공개됐다.

이 때부터 애플과 안드로이드 군단의 전투가 본격화됐다. ‘영웅’ 스티브 잡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구글을 멸망시켜버려겠다”며 길길이 뛰었다.

2007년 맥월드 행사에서 아이폰 첫 모델을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사진=유튜브 캡처)

초기엔 애플이 압도했다. 사람들은 세련된 아이폰에 열광했다. 안드로이드폰은 촌스럽고 투박했다.

삼성을 상대로 한 특허전쟁도 안드로이드 말살 전략의 일환이다. 애플은 구글을 압박하기 위해 삼성을 공격하는 전략을 택했다.

모바일 시장을 놓고 벌인 구글과 애플의 전투는 ‘포에니 전쟁’을 연상케했다. 포에니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를 놓고 벌인 싸움이다.

당시 카르타고의 선봉엔 한니발이 있었다. 세계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 뛰어난 장수였다. 한니발은 거침 없었다.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향했다. 한니발의 기세는 로마를 압도했다.

하지만 로마는 노련했다. 영웅 한니발과 정면으로 맞붙어선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택한 전략이 지구전이었다. 풍부한 물적 자원을 토대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기세등등한 한니발의 힘을 빼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로마의 젊은 장군 스키피오는 후방을 치면서 한니발을 괴롭혔다. 그 무렵엔 로마군도 한니발의 뛰어난 작전을 어느 정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결국 스키피오는 자신이 사숙했던 한니발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지중해의 강자로 떠올랐다.

■ 2017년 스마트폰 사업 도전…'안드로이드 신화 재연' 자신

애플과 구글의 전쟁도 비슷했다. 모바일 전장에서 스티브 잡스는 한니발 못지 않았다. 혁신성이란 무기로 당대 기업들을 조롱했다. 2007년 1월 아이폰을 내놓을 때 모습이 딱 그랬다. “손가락이 있는 데 펜을 왜 쓰냐”는 그의 질문은 세상의 문법이 애플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구글은 ‘안드로이드 군단’을 구축하면서 기다렸다. 삼성이란 뛰어난 장수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그 덕에 안드로이드 군단의 위세는 나날이 강해졌다. 한니발과 싸우면서 한니발의 노하우를 습득했던 스키피오처럼, 안드로이드 군단도 어느 새 애플의 장점을 다 흡수했다.

그 사이 시장의 중심은 서서히 안드로이드 쪽으로 기울었다. 앤디 루빈은 바로 그 안드로이드 군단의 심장이었다.

물론 스티브 잡스와 앤디 루빈을 직접 비교하는 건 무모하다. 둘의 그릇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니발과 로마 군단의 이름 없는 한 장수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의 ‘포에니 전쟁’으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바꿨다면, 앤디 루빈은 그 세상이 좀 더 빠른 속도로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에센셜)

2013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앤디 루빈이 안드로이드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었다. 안드로이드와 크롬 사업이 통합되면서 선다 피차이가 그 자리를 맡았다.

그리고 1년만인 2014년 앤디 루빈은 구글을 떠났다. 모바일 시장의 문법을 바꿨던 영웅의 퇴장이었다.

하지만 영웅은 그대로 사라지진 않았다. 2015년 에센셜이란 모바일 회사를 설립했다. ‘또 한 번의 혁명’을 이뤄내겠다고 자신했다.

‘안드로이드 대부’가 새롭게 출범시킨 스마트폰 프로젝트. 당연히 관심이 집중됐다. 물론 의구심 어린 시선도 적지 않았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디 루빈은 자신만만했다.

“내가 처음 안드로이드를 시작할 때도 사람들은 똑 같은 얘기를 했다.”

정체 상태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을 새롭게 바꿔놓겠다는 선언. 사람들은 그가 다시 한번 마법을 부릴 것으로 기대했다.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3천300만 달러를 모았다. 신생기업 에센셜의 가치는 순식간에 10억 달러에 이르렀다. ‘루빈의 힘’이었다.

■ 앤디 루빈의 잇단 실패, 이유는 뭘까

하지만 앤디 루빈의 두 번째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에센셜이 야심차게 내놓은 스마트폰은 실패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루빈의 성추문이었다. 2017년 11월 디인포메이션이 루빈 성추문을 특종 보도했다. 그가 구글을 떠난 건 ‘새로운 꿈’ 때문이 아니라 성추문 때문이란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구글이 루빈 성추문을 무마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오히려 퇴사할 때 9천만 달러 특별 보너스까지 지급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안드로이드 대부’와 구글 모두 큰 타격을 받았다.

루빈은 에센셜의 얼굴 마담이자 전부였다. 신생기업에 투자금이 몰린 건 ‘안드로이드 대부’란 그의 이력 때문이었다. 이것이 무너지는 순간, 에센셜의 가치는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8년 직원 30% 해고 소식이 전해졌다. 추문에 휩싸인 앤디 루빈은 아예 무대 뒤로 숨어버렸다.

2019년 1년 이상 사라졌던 루빈이 갑자기 다시 등장했다. 그리곤 젬(Gem)이란 새로운 제품을 들고 나왔다. TV 리모컨 처럼 생긴 IoT 기기였다.

하지만 에센셜은 12일(현지시간) 젬 프로젝트도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에센셜의 문을 닫는다고 공지했다.

한 때 기대받던 에센셜은 왜 몰락했을까? 간판인 앤디 루빈의 성추문 때문일까? 만약 성추문이 없었다면 루빈은 또 한 번의 마법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보기 힘들다. 왜? 2000년 중반과 2010년대 후반은 시장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잠시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사진=에센셜)

중국의 AI 전문가 리 카이푸는 2018년 출간한 ‘AI 슈퍼파워’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는 오해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뭘까?”란 질문이었다. 그리곤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AI 발견의 시대란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설명을 좀 더 따라가 보자.

AI는 이젠 위대한 천재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젠 상용화를 통한 실행의 시대로 바뀌었다. 발견의 시대엔 낡은 패러다임을 무너뜨릴 획기적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실행의 시대엔 실행 가능한 사업이나 서비스로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그 대목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유리하다는 게 리 카이푸의 주장이다.

리 카이푸의 얘기는 앤디 루빈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글을 떠난 앤디 루빈은 여전히 ‘발견의 시대’란 문법에 매달렸다. 안드로이드로 세상을 바꿨던 꿈을 다시 꿨다.

그래서 그는 자신 있었다. 안드로이드 같은 또 다른 혁신으로 시장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다”는 투자자들의 의구심에 대해 그가 “안드로이드 때도 똑 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 시장은, 리 카이푸의 말을 빌자면, 실행의 시대에 가깝다. 더 이상 깜짝 놀랄 혁신을 내놓기 힘들다. 시장이 상향 평준화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2010년대 말에도 여전히 '발견의 시대' 문법에 매달렸던 앤디 루빈

최근 출범한 미국 IT전문매체 프로토콜은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인 데이비드 피어스 기자가 에센셜 초기 루빈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 당시 피어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였다.)

당시 루빈은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폰은 모양과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더 개인적인 기기로 변해갈 것이다. 궁극적으론 사람들의 일상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된 어떤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 일화를 전해주면서 피어스 기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우리는 알렉사와 폴더블폰, 그리고 5G 세계로 들어왔다. 그런 점에선 앤디 루빈은 다시 한번 옳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든 건 루빈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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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피어스 기자의 진단에 절반만 동의한다. 폴더블폰과 5G로 대표되는 최신 스마트폰 기술 역시 ‘발견의 시대’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기술들은 전형적으로 ‘실행의 시대’에 나옴직한 혁신들이다.

그런 점에서 ‘안드로이드 대부’ 루빈의 실패는 이미 예정돼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시장의 문법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이에 터져나온 성추문 때문에 그 실패가 좀 더 빨리 다가왔을 뿐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