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 강남구 행정이 방해한 전기차 급속충전

사전 통지 없이 전기차 충전구역면 지워

일반입력 :2019/12/30 12:39    수정: 2019/12/30 14:30

전기차 충전구역면을 지운 강남구의 결정이 전기차 이용자들의 충전 불편 스트레스를 일으켰다.

전기차 이용자 C씨(가명)는 서울 압구정로29길 공영노상주차장에 설치된 환경부 공공 급속충전기에 충전을 하다가 황당한 사연을 겪었다.

이 충전기 왼쪽 주차면에는 한 때 초록색 바탕과 함께 ‘EV 전기자동차’ 글자가 새겨졌다. 전기차 충전을 위한 구역임을 뜻한다.

하지만 이달 들어 이 주차면에는 ‘EV 전기자동차’ 표기명과 초록색 바탕이 사라지고, ‘유료132’ 글자가 새겨졌다. 주차장을 관리하는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은 해당 주차면의 변경 계획을 전기차 이용자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

이같은 강남구 결정 때문에, 최근 압구정로29길 공영노상주차장 충전기 앞에는 일반 차량이 주차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충전구역임을 뜻하는 플라스틱 안내판은 그대로 있지만, 일반 차량의 주차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전기차 오너 C씨가 올린 압구정로29길 공영노상주차장 충전기 앞 사진, 전기차 충전구역을 뜻하는 문구가 사라지고 '유료 132' 글자가 새겨지면서, 해당 지역이 일반차 주차 가능한 공간으로 사실상 탈바꿈된 상황이다. (사진=네이버 '전기차 사용자 모음' 카페 제공)
서울 압구정로29길 공영주차장 급속충전기 앞에는 원래 초록색 바탕의 'EV 전기자동차' 문구가 새겨졌다. 충전구역을 뜻하는 문구로 법적인 의무사항 중 하나다. (사진=네이버 '전기차 사용자 모임' 인터넷 카페 제공)

C씨는 최근 네이버 인터넷 카페 ‘전기차 사용자 모임’ 에 압구정로29길 공영노상주차장 충전기 운영실태를 소개했다. 자신이 충전을 하기 위해 충전기에 다가가다가, 충전기 앞에 세워진 일반 벤츠 세단 차량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일반 압구정 공영노상주차장에 급속충전기가 있는데 라인은 일반 공영노상라인이다”라며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전했다.

■주차장 무인화 정책으로 주차면 변경...전기차 사용자 고려 안해

지디넷코리아는 30일 압구정로29길 공영노상주차장에 설치된 급속충전기 현장을 찾았다.

현장을 살펴본 결과, 압구정로29길 공영노상주차장 각 주차면에는 차량 번호를 인식기가 설치됐다. 주차장 무인화 정책의 일환이다. 또 주차장 한복판에는 카드 결제 등을 진행할 수 있는 무인 결제기기가 설치됐다. 이 주차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상주 인원이 없는 무인화가 시작된다.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은 지난 11월말부터 주차장 무인화를 위한 시설 보완을 시작해 이달 초 끝마쳤다. 또 주차장 무인화 안내를 위한 현수막도 설치했다.

지디넷코리아가 30일 찾은 압구정로29길 공영주차장 모습. 이 곳에 충전된 전기차 충전기는 정상 운영되지만, 충전기 앞 'EV 전기자동차' 문구가 사라지고 '유료 132'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전기차 충전구역인 압구정로29길 공영주차장 '유료132' 구역면 앞에 설치된 번호 인식기(파란색), 주차장 무인화(유료 운영)를 위해 설치된 기계지만, 해당 기계가 전기차를 인식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지디넷코리아)

가장 큰 문제는 도시관리공단이 무인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공공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위한 주차면 관리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전기 바로 옆 ‘유료132’ 주차면 앞에 차량 번호 인식기가 설치된 것도 문제다.

만약 이 차량번호 인식기가 전기차 번호판 구별 능력이 없다면, 전기차 이용자들은 충전에 필요한 요금뿐만 아니라 별도의 추가 주차 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 연결될 수 있다. 수도권의 경우, 주요 공영주차장 내 설치된 전기차 급속충전기에서 충전을 진행하면 1시간 주차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충전 스트레스 낳은 강남구 행정,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 위반일까

일명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이라고 불리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에 대한 충전 방해행위의 기준’ 제 18조의 6항을 살펴보면 전기차 충전방해행위를 총 6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중 ‘충전구역임을 표시한 구획선 또는 문자 등을 지우거나 훼손하는 행위’가 포함됐다.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의 이 결정이 해당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대다수 전기차 오너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현재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 운영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서울시는 올해 4월 1일부터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을 본격적으로 실행했지만, 단속권한과 단속 시스템의 구체적인 방향을 8개월 째 정하지 못했다. 일부 구청이 단속 인원의 부재 등을 이유로 충전방해금지법 단속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충전방해금지법 신고 접수를 받으면, 위반 대상자들에게 과태료 부과대신 경고 수준의 안내문을 보내고 있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는 압구정로29길 공영주차장의 무인화 안내 현수막. 전기차 충전에 대한 별도 안내는 표기하지 않았다. (사진=지디넷코리아)

만약에 서울시장 또는 강남구청장이 해당 주차장의 충전구역면 삭제 및 변경을 승인했을 경우, 충전구역면 변경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다. 서울시의 경우 충전구역면 관리 주체가 각 구청장에 위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 충전구역 고려 없이 내려진 승인이라면 향후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과 제도 개선이 불가피해보인다.

지디넷코리아는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에 압구정로29일 공영노상주차장의 전기차 충전구역면을 없앤 이유가 무엇인지 수차례 전화 문의했다. 강남구 도시관리공단 관계자는 “행정 상 착오가 있었다”며 해당 구역의 ‘EV 전기자동차’ 표기 원상복구를 약속했다.

■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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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방해금지법은 말 그대로, 전기차의 충전을 방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법이다.

현재 해당 법을 위반하게 될 경우 과태료는 ▲일반자동차가 전기차 충전시설에 주차한 경우 10만원 ▲충전구역 내, 충전구역 앞, 뒤, 양 측면에 물건 등을 쌓거나 주차한 경우 10만원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 주변에 물건 등을 쌓거나 충전을 방해한 경우 10만원 ▲충전구역의 진입로에 물건 등을 쌓거나 주차하여 충전을 방해한 경우 10만원 ▲충전구역임을 표시한 구획선 또는 문자 등을 지우거나 훼손한 경우 20만원 ▲환경친화적 자동차 충전시설을 고의로 훼손한 경우 20만원 ▲급속충전시설에서 충전을 시작한 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고시한 시간이 경과한 경우 10만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