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널 모를걸”...60만 구독 한 과학유튜버 ‘이재범’

“우울함 계기로 과학에 빠져...내년부터 더 열심히 방송”

인터넷입력 :2019/12/27 16:30    수정: 2019/12/27 16:30

애인·종교만큼이나 과학과 푹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있다. 61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1분 과학' 운영자 이재범 씨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직업을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정의한 그는 과학 전공자가 아니다. 경제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유학 시절 우연치 않게 과학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스스로 관련 서적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과학을 탐구했다. 지금은 과학 전문가들과 사석에서 만나 블랙홀과 양자역학(양자론의 기초를 이루는 물리학이론의 체계)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만큼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게 됐다.

과학과 사랑에 빠져 전도사 역할을 할 정도가 되다 보니 그가 운영하는 '1분 과학' 유튜브 채널 구독자들도 멀게만 느껴졌던 과학의 매력에 푹 빠진 듯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재범이란 사람에 홀린 것 같다. 한 영상에 수백, 수천개의 댓글이 달린다. 영상 업로드 주기가 길어지면 마치 애인을 잃은 듯한 서운함을 표하며 과학에 대한 지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기승전 반전이 거듭되는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그의 영상에 매료된 구독자들이 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1분 과학' 유튜버 이재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당초 계획(11월 업로드)보다 미뤄지긴 했지만, 늦어도 다음 주 내로 새로운 영상이 올라갈 예정이다. 주제는 '나는 왜 과학을 하는가'다. 거의 7개월 만에 올라가는 영상으로, 그가 왜 과학을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얘기가 담길 예정이다. 전체 작업의 99%가 원고 작성인데, 원고 작성이 완성된 만큼 빠르게 영상 편집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 “과학의 중요성 알리고파...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

이재범 씨는 '1분 과학' 채널을 인문과학 채널이라 부른다. 과학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탐구하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그냥 과학이 아닌 인문과학이란 설명이다. 그가 이 채널을 운영하는 목적은 지식으로서의 과학을 알리고 싶은 게 아니라, 과학의 중요성과 재미를 알리고 싶어서다. 영상을 본 독자들이 스스로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품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게끔 했다면 대만족이다.

"지식으로서의 과학뿐 아니라,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주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과학을 인문학적으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약 3년 반 운영돼 온 그의 채널에 올라온 영상은 50여개. 대표작인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69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하나의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또 이 작은 지구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전쟁과 싸움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고 숙연함이 든다. 나란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캡처. 칼세이건의 제안으로 보이저 1호가 지구의 사진을 찍도록 했고, 하나의 창백한 푸른점에 불과한 지구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를 깨달았다.

인공지능(AI), 로봇이 가져올 인간의 미래를 다룬 '로봇이 가져오는 환상의 세계'·'인공지능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무서운 사실'·'다 함께 만드는 신'과 같은 영상은 온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발전에 목메는 현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무엇을 위한 기술 개발인지 의문이 들고, 일자리가 없어지고, 정교한 알고리즘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두 영상은 AI나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까, 아니면 비서의 역할을 할까를 두고 이견이 분분한데, 이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려준다.

"가장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겠다고 생각한 영상은 '멀리서 바라본 지구'였어요. 공감하고 많이 봤으면 좋겠어서 꼭 보세요라고도 적었죠. AI 특이점이 온다는 건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은 없어요.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를 두고 다른 전망을 하죠.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기계가 발명됐을 때를 예로 들면서 AI가 괜찮다고들 하지만, 고작 몇 개의 혁명 사례가 충분한 증거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인간의 힘과 이동을 대체하는 수준의 것들과, 인간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기계가 나오는 건 다른 얘기지 않을까요."

1분 과학 '다함께 만드는 신' 중에서 일론 머스크가 AI에 대해 말하는 내용.

인간보다 빠르고 똑똑한, 그러면서 지치지 않는 AI 발전에 대해 많은 우려의 시각들이 존재한다. 특이점이 오면 AI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할 것이란 공상과학 같은 얘기들이 전문가들 입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과학에 오래 빠져 산 그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AI를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죠. 발전 속도를 늦추자고 했지만, 제대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계속 엄청난 속도로 AI를 발전시키고 있어요. AI를 먼저 갖게 되는 회사가 모든 걸 지배할 수 있으니 기업들은 이익을 위해 절대 멈추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달려갈 거예요. 그래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AI와 합체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완전히 사이보그가 돼서 우리 두뇌에 칩을 바꾸거나 소프트웨어 업로드를 시켜 AI와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관련 실험이 동물을 대상으로 실제로도 있었고, 머지않아 이런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 “팟캐스트 매력에 풍덩...개인 채널도 구상”

이재범 씨가 과학에 빠진 계기는 조금 독특하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은 좋아했지만, 과학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던 그가 과학을 파기 시작한 건 미국 유학 시절 우울증이 하나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우울증 같은 게 있어 정신과에 가서 항우울제 약을 먹게 됐어요. 세로토닌, 도파민 같은 기분을 좋게 하는 성분 때문에 기분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이게 엄청 신기했죠. 원래 행복은 열심히 노력해서 직장에서 잘 나가고 엄청난 걸 해야 느껴지는 건데, 약을 먹으니 바로 행복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때부터 혼자 열심히 과학을 파게 됐어요. 과학책도 많이 봤고요.”

팟빵 팟캐스트 '매불쇼' 과학 코너에 출연 중인 이재범씨.

유튜브를 통해 과학의 대중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이재범 씨는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팟빵에서 인기인 팟캐스트 채널 '매불쇼', '과장창' 등에서 과학 코너 게스트로 출연 중이다. 또 YTN 과학 채널에서도 신기한 과학 실험들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튜브는 일반적인 소통이라면, 팟캐스트는 대화라는 측면에서 다른 것 같아요. 집에 혼자 있을 때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든다면, 팟캐스트는 대화하면서 건설적인 얘기도 나누고 다른 진행자들의 지식을 배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서로 보완하고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매력이 팟캐스트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팟 캐스트 개인 채널도 준비 중이다. 과학을 하는 친구들, 전문가들과 함께 방송에서는 할 수 없는 과학 관련 얘기들을 하는 게 주 내용이다.

“팟 캐스트 녹음을 2~3번 해봤어요. 그런데 두 번은 카메라를 두다 보니 평소처럼 재미있는 얘기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마이크만 두고 해보자 했는데 성공했어요. 이게 불과 1~2주 전쯤 일이예요. 어떤 플랫폼에 올려야 되는지 서로 얘기하는 단계인데, 팟 캐스트 개인 채널 운영을 곧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 “게을렀던 한해...과학 전달자로 평생 살고파”

이재범 씨는 뭔가 바쁘게 활동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올해를 “최악의 한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스스로 게을렀다는 반성이 들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불쇼와 YTN 사이언스 출연 등과 함께, 구독자도 단기간에 8만이 더 늘었지만 한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대외적으로 뭔가 열심히 한 거 같은데, 사실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내년부터 열심히 해야겠어요. 내년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과학을 주제로 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저에게 과학은 거의 종교와 같아서 뭔가 계속 탐구도 하고 싶고요. 내년에는 최소 한 달에 하나 정도 콘텐츠를 올리려고 해요. 최근 댓글을 보다 차라리 너를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게시물을 읽고 충격에 빠졌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구나, 내가 이들을 내버려두면 무책임한 거구나를 생각하게 됐어요.”

이재범 씨는 자신을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정의했다.

이재범 씨는 어려운 과학 지식을 대중들에게 쉽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전달자 역할을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과학 발전 속도는 너무나 빠른데, 이를 대중들에게 잘 연결해줄 수 있는 다리 역할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그 전달자 역할을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하고 정규 교육을 통해 학문적 지식을 쌓은 전문가보다, 뒤늦게 과학의 재미를 알고 푹 빠진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던 분들은 과학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는데 이질감을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과학을 지루하게 생각하다 특정 계기로 좋아하게 된 경우다 보니 모든 사람이 과학을 좋아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있어요. 내가 느껴봤으니,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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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그는 팟캐스트, 유튜브를 하려는 예비 크리에이터들에게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져라”라고 조언했다.

“남만 보고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갖고 했으면 좋겠어요. 유튜브나 팟캐스트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플랫폼이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플랫폼이죠. 이런 자유가 주어지는 플랫폼에서조차 돈을 위해 남을 따라한다면 행복에서 멀어지는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