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자료'에 속은 블룸버그, 법의 보호 받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표현의 자유 vs 언론의 책임

데스크 칼럼입력 :2019/12/18 15:49    수정: 2019/12/18 16:5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언론사들은 늘 오보 위험에 노출돼 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세상을 뒤흔든 특종 보도는 이런 아슬아슬한 순간을 몇 번씩 지난 끝에 얻어낸 산물이다.

그래서 언론법에선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엔 언론사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런 관행을 법률 용어로 ‘위법성 조각사유’라 부른다. 언론의 취재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다.

물론 이 규정은 명쾌하진 않다.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를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도 흥미로운 판례가 있다. ‘성실하게 취재하다가 오보를 낸 언론사’엔 위법성 조각 사유를 인정해준 반면 그 기사를 그대로 받아 쓴 언론사에 대해선 책임을 물었다.

(자료=AMF)

최근 프랑스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스 시장규제위원회(AMF)가 ‘잘못된 보도자료’에 속아서 오보를 낸 블룸버그통신에 500만 유로(약 65억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 "허위 자료 받은 뒤 정당한 사실확인 노력 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사건은 2016년 11월 22일 벌어졌다. 블룸버그는 프랑스 대형 건설기업 빈치가 2015년 전체와 2016년 상반기 회계자료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파리 지국의 속보 데스크에 있는 기자 두 명이 이 기사를 전송했다. 속보 데스크 팀은 보도자료에서 핵심 금융 정보를 요약해 뉴스 속보 형태로 전송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날도 블룸버그 단말기를 통해 기사가 전송됐다.

문제는 이 보도자료가 ‘가짜’였단 점이다. 빈치가 공식 배포한 자료처럼 교묘하게 위장한 자료였다. 다른 언론사들도 블룸버그 속보를 받아 쓰면서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졌다.

해당 기사 전송 직후 빈치 주가는 18.28%가 폭락했다. 순식간에 시가 총액 60억 유로가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프랑스 AMF는 “블룸버그는 잘못된 자료란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고 판단했다. 우리 언론법 규정을 원용하자면 “(문제가 된 자료가)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AMF는 이렇게 판단한 근거를 크게 두 가지 꼽았다.

첫째. 잘못된 보도자료를 받은 지 1분 만에 기사 전송했다.

둘째. 주식 거래 시간에 받은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확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AMF는 “블룸버그가 보도 전 확인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다"면서 “언론인들은 선의를 갖고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할 때만 (언론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근거에 따라 블룸버그가 유럽연합의 시장남용금지(Martket Abuse) 21조를 위반했다는 게 AMF의 판단이었다.

블룸버그는 AMF 조치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항소 의사를 밝혔다. 특히 블룸버그는 “잘못된 정보를 유포한 사람을 적발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뉴스 가치가 있는 정보를 보도한 언론사만 처벌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가짜 보도자료’가 빌미가 됐다. 블룸버그 역시 피해자일 수도 있다. 속이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 당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보도자료와는 사안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맹목적 인용보도’가 횡행하는 한국 언론 보도 관행을 돌아보게 만든다.

■ 맹목적 인용 보도, 한계는 어디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이나 기관이 ‘거짓된 정보’를 흘려준다. 언론은 해당 자료를 충실하게 보도했다. 그런데 그 자료가 거짓된 정보라면? 혹은 그 자료를 만든 사람이 의도를 갖고 일부로 ‘허위 조작 정보’를 전해줬다면?

이런 사실을 ‘충실하게’ 보도한 언론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언론법이 보장하는 ‘위법성 조각 사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는 ‘비욘드 뉴스’에서 언론들의 무차별 인용 관행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유명인의 말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언론 보도 관행에 대해 ‘맹목적 인용 보도(He said/she said journalism)’라고 비판했다.

허위 자료에 속아서 ‘1분 만에’ 그대로 전해준 블룸버그는 ‘맹목적 인용보도’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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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법원은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까? 보호 받아야 할 보도 행위로 간주할까? 아니면 ‘성실 의무’를 저버린 잘못된 행위라고 판단할까?

최근 몇 달 간 ‘경마식 인용보도’가 유독 심했던 경험 때문일까? 바다 건너 멀리서 벌어진 이번 사건에 대해 던지는 이 질문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