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악플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이슈진단+] 테러만큼 무서운 혐오표현·악플 (상)

인터넷입력 :2019/12/08 10:20    수정: 2019/12/09 10:59

혐오표현을 동반한 악성댓글이 전 세계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잇따른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심각성이 더욱 커진 상태다. 이에 후천적인 대응보다는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선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외 인터넷 기업들도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등 기술을 통한 악플 대응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대응책이 되긴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상편에서는 국내 댓글 문화와 함께 혐오표현과 악플 규제에 대해 진단해보고, 하편에서는 해외 규제 사례와 대응책에 대해서 알아본다. [편집자주]

최근 악성 댓글(악플)로 고통을 호소했던 두 명의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두 연예인은 미성년자일 때부터 악플에 시달려왔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혐오표현이지만 제대로 된 보호장치는 없었다.

악플로 인한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되기 시작했던 2000년대부터 SNS와 커뮤니티가 활발히 생겨나면서 혐오표현 또한 활개를 치며 퍼져나갔다.

당시에도 여러 연예인이 악플을 견디지 못해 생을 마감했고, 사회적으로 인터넷 실명제에 도입에 대한 여론이 강해졌다. 2007년 7월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제도가 시행됐지만,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실명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5년 만에 중단됐다. 표현이나 언론의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사진=픽사베이)

■ 댓글 문화 활발하지만…혐오표현·악플 규제 '미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유독 다른 나라보다 뉴스 댓글 문화가 활발한 이유로 포털 서비스를 꼽는다.

언론사와 제휴해 뉴스를 서비스하고 있는 포털 네이버와 다음 등은 댓글 창을 열어 놓으며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댓글 창도 포털이 관리한다. 반면 해외에서 압도적인 포털 점유율을 갖고 있는 구글은 뉴스 기사를 클릭하면 언론사 사이트로 바로 연결되는 뉴스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고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박사는 "국내에서 뉴스 소비는 포털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댓글 작성 활동이 어떤 나라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해외 언론사들은 댓글을 막아놓고 있는 곳도 많다"며 "독일의 경우 뉴스를 생산한 주체가 기자이고 언론사이기 때문에 댓글도 해당 언론사가 관리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포털 뉴스 댓글에는 특정인과 집단에 대한 비방과 혐오표현 등의 악플이 생성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이를 규제하는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다. 당장은 포털의 댓글 정책 등에 의존해야 할 뿐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22일부터 언론사가 각 해당 매체 기사의 댓글 제공 방식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댓글 정책을 변경했다. 이는 연예나 스포츠뉴스 서비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악플 필터링은 AI 기술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는 자체 개발한 악성 댓글 필터링 '클린봇'을 최근 스포츠, 연예 섹션에 이어 전 뉴스 서비스로 확대 적용했다. 사용자가 클린봇을 활성화시키면 악성 댓글을 자동으로 숨겨주는 기능이다.

회사는 법령을 위반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의 댓글, 욕설이나 비속어 등을 포함한 댓글, 매크로로 등록한 댓글 등은 확인 시 게재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또 24시간 접수 안내를 통해 뉴스기사나 댓글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신고받는다.

다음 운영회사인 카카오도 비슷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 회사는 욕설 자동 치환 기능을 통해 댓글에 비속어가 포함된 경우 '♩ ♪ ♬' 등 음표 기호로 자동 변환시키기도 한다.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24시간 댓글 피해 신고를 받고 있다. 이 두 회사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정책규정을 따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카카오가 최근 다음 연예기사 댓글창을 아예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악플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다. 어떤 방법으로도 연예기사 악플을 막는 것이 힘들다는 판단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물론 악플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이 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명확해야 한다. 즉, 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이나 젠더 혐오 등을 형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인터넷 등 IT 발전으로 SNS와 커뮤니티가 활발해 지면서 성별이나 종교 인종, 장애와 관련된 혐오표현 또한 늘어나고, 이같은 사회적 현상이 테러를 야기시킨다는 인도국립과학기술대학의 연구 보고서도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이 보고서에서는 "정부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등이 힘을 모아 혐오표현과 테러리즘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적절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그렇다면 인터넷 실명제가 답일까?

잇따른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위헌 결정이 난 인터넷 실명제를 부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달 지디넷코리아가 오픈서베이와 1천명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넷실명제에 관한 설문조사(☞관련기사 바로보기)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은 인터넷실명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명까진 아니어도 아이디 전체를 노출해야 한다’는 응답이 47.5%를 기록했고, ‘성과 이름, 즉 실명을 노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42.1%에 달했다. 반면 ‘현 수준이 최선이다(반대)’ 의견은 9.5%에 불과했다. ‘기타’ 의견은 0.9%를 기록했다.

또한 응답자의 46.6%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 시 악플이 크게 개선될 것 같다고 했고, 44.5%는 약간 개선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2년 헌법재판소 설명처럼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됐던 지난 5년간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자들이 해외 SNS로 도피하며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명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SNS 댓글 서비스 라이브리를 운영하는 김범진 시지온 공동대표는 인터넷 공간에서 실명을 사용하더라도 악플 해결에는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부와 업계가 함께 힘을 모아 건전한 댓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1차원적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진행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지 댓글을 쓸 수 있는 국내 포털 서비스의 경우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악플 생성을 막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특히 오픈넷 측은 최근 발의된 인터넷 실명제 관련 법안에 대해 "본인확인절차를 전제로 하는 아이디 정보와 IP 주소의 수 집 및 공개를 강제하고 있는 법은 이미 위헌으로 판단된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실명제)를 사실상 강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일반적 표현의 자유 역시 심대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볼프강 크라이씨히 독일 청소년미디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다소 과하다는 의견을 냈다.

크라이씨히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고, 독일에서 실명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며 "그러나 이용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정도의 조치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거나 익명성에 기대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한다면, 공론의 장이라는 인터넷의 장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혐오표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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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기업 한 관계자는 "지금도 아이핀 등 인증을 받아야 회원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본인확인절차를 더 강화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도 있을 수 있고, 해외 인터넷 서비스와의 역차별 문제도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등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보단 댓글 정책을 강화해 악플을 반복적으로 쓸 경우 이용정지, 영구정지 등의 방법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