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회장 운명, 사외이사 8명이 가른다

[이균성의 溫技] 소명의식과 토론이 중요

데스크 칼럼입력 :2019/11/20 11:51    수정: 2019/11/21 12:45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면 주연 못지않게 조연이 빛을 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연과 조연이 제 역할을 찾아 연기의 앙상블을 보일 때 관객은 감동한다. KT 회장 선임 과정을 유의 깊게 지켜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가. 주주총회에 오를 최종 후보가 아마도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 것이고 추후 그의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다.

37명의 후보 가운데 그가 누가됐건 그의 성공 여부와 KT의 운명은 그러나 조연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조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KT 드라마는 또다시 막장극이 될 것이고 주주는 물론이거니와 수 만 명에 이르는 KT 직원, 그리고 국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비자, KT와 함께 한국의 ICT 생태계를 키워가고 있는 수백 수천의 협력업체들은 긴 세월동안 질곡의 삶을 살게 될 거다.

황창규 KT 회장 후임 선임과정이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진은 취리히 연방공대에서 특별강연을 하고 있는 황 회장.(사진=KT)

KT 드라마의 운명을 좌우할 조연이라 함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4단계로 진행되는 KT 회장 선임절차를 고려할 때 사외이사 8명이 핵심적인 조연이다. KT 회장 선임절차는 주주총회 승인까지 합쳐 4단계로 진행되지만, 그전 3단계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8명 등 총 11명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구조다. 이들 11명은 지배구조위원회, 회장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에서 최소 한 번은 개입한다.

이사 11명 가운데 사내이사 3명보다 사외이사 8명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내이사는 공개발언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황창규 회장은 떠날 사람이다. 결정적인 발언은 막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동면 이사는 그 자신이 후보다. 발언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김인회 이사는 황창규 회장의 측근이다. 발언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말이 많을수록 후환이 생길 수 있다.

사외이사 8명은 이들에 비하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형편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김대유 장석권 김종구 이강철 등 4명의 사외이사다. 이들 4명은 지배구조위원회, 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 등 3단계 선임과정에 모두 관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한다고 할 수 있다. 후보심사위원회부터는 이계민 임일 유희열 성태윤 등 4명의 사외이사가 추가로 합류된다. 논의의 폭이 넓어진다.

KT 드라마의 조연으로서 이들의 배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소명의식이다. KT는 특수한 기업이다. 민영화한 민간기업이지만 ‘오너가 없는 국민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특수성 때문에 사외이사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다른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하다. KT 사외이사도 그 무엇인가의 거수기가 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막장으로 끝나게 된다.

KT 사외이사의 배역은, 모두가 바라거니와, 회사에서 부르면 가고 때 되면 돈 받고 결정된 일 있으면 손들어 주는 거수기여서는 안 된다. 기술과 시장을 연구하고, 사내 문제를 파헤치며, 뜨겁게 토론함으로써 경영진이 제 길을 갈 수 있게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회장을 선임하는 일은 그 과정의 첫발을 떼는 행위이며, 미래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소명으로 삼으시라.

둘째, 양심적이고 치열한 토론을 꼽고 싶다. 이 글에서 사외이사 8명의 이력을 쓰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8명 모두 간단치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로 인해 이미 구설이 많다. 모두가 하는 부탁이거니와, 오로지 소명을 고민하되, 그동안 각자가 쌓은 개별적인 관계의 고리를 끊기 바란다. 구설은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 그건 진짜 배역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주연도 조연도 폭망하는 구조가 된다.

소명의식은 각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양심적이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당연히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될 것이지만 주주와 직원과 소비자와 협력업체 모두에게 TV로 공개된다는 심정으로 토론하기 바란다. 모두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의 소명의식을 숨김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시간도 내용도 제한하지 말고 끝장토론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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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내용은 속기록으로 남겼으면 한다. 토론 과정이 다소 거칠더라도 KT 드라마를 계속해서 감동적으로 써나갈 수 있도록 숨김없이 기록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을 참조하면 어떨까 한다. 양심적이고 치열한 토론 끝에 결국 다수와 대세로서 결정되겠지만 소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깊은 소명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포용하는 게 옳다. 선출된 회장이 그 뜻까지 받아 안아 경영에 반영할 수 있잖겠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개혁된 선임절차와 사외이사 면면을 보면 낙담할 일만도 아니다. 과거의 틀에 갇혀 세력을 형성하고, 다른 후보를 깎아내리는 음모를 꾸미며, 그게 사실인 것처럼 언론을 이용하는 자가 지금도 존재할 수 있다. 그들과 같이 춤추는 건 사외이사의 배역이 아니다. 돈 몇 푼에 혹은 자신의 미래 입지를 위해 한국 ICT에 주어진 소명을 버릴 사외이사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