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SK이노가 증거인멸 시도"…ITC에 제재요청

'조기패소 판결' 또는 '영업비밀 탈취 사실 인정' 요구

디지털경제입력 :2019/11/14 11:26    수정: 2019/11/14 14:48

SK이노베이션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소송과 관련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했다는 주장이 LG화학측으로부터 제기됐다.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조기 패소판결' 등 강도 높은 제재를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회사는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R&D),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에서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은 당사에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한 다음 날에도 이메일을 통해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했다"며 "이는 광범위한 증거인멸이자 법정모독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정한 소송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되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과 법정모독 행위가 드러나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달했다고 판단해 강력한 법적 제재를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LG화학이 입수한 SK이노베이션의 '증거 인멸' 정황 증거. (자료=LG화학)

■ "'LG화학 자료 모두 삭제하라' 증거 나왔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불법 행위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67쪽 분량의 요청서와 94개의 증거목록을 ITC에 제출했다.

근거는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증거인멸 행위'와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법정모독 행위' 등이다. 이 자료는 현재 ITC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의혹에 대해서는 "지난 4월 29일 소송제기 직후와 그 이전부터 전사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에 따르면 이 회사는 ITC 영업비밀침해 제소에 앞서 두 차례 SK 측에 내용증명 공문을 보내 영업비밀·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LG화학이 지난 4월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한 당일 SK이노베이션이 7개 계열사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메모를 보낸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4월 12일 사내 75개 관련조직에 삭제지시서와 함께 LG화학 관련 파일과 메일을 목록화한 엑셀시트 75개를 첨부하며 해당 문서를 삭제하라는 메일을 발송했다"고 말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이 8월 21일에 제출한 문서 중 휴지통에 있던 'SK00066125' 엑셀시트 한 개에는 980개 파일과 메일이, 10월 21일에서야 모든 존재가 밝혀진 74개 엑셀시트에는 무려 3만3천개에 달하는 파일과 메일 목록이 삭제를 위해 정리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이 미국 ITC에 제출한 법적 제재 요청문서. (자료=LG화학)

■ LG "SK, 포렌식 명령 위반…영업비밀도 전파"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제출한 엑셀시트가 이미 삭제돼 휴지통에 있던 파일이고, 이 시트 내에 정리된 980개 파일이 증거 자료로써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ITC에 포렌식을 요청했다.

이에 ITC는 지난 달 3일 "980개 문서에서 'LG화학 소유의 정보'가 발견될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며 "LG화학 소송과 관련이 있는 '모든' 정보를 찾아서 복구하라"며 SK이노베이션에 포렌식을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980개 문서가 정리돼 있는 'SK00066125' 한 개의 엑셀시트만 조사했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 관계자는 "나머지 74개 엑셀시트에 대해서는 ITC와 당사가 모르게 9월 말부터 별도의 포렌식 전문가를 고용해 은밀하게 자체 포렌식을 진행 중이었다는 점이 지난 달 28일 SK이노베이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증인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포렌식 진행 시 LG화학 측 전문가도 한 명 참석해 관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ITC의 명령에도, 당사 측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등 포렌식 명령 위반행위를 지속했다"고 덧붙였다.

불법으로 탈취한 영업비밀을 이메일과 사내 컨퍼런스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전파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LG화학 관계자는 "한 직원이 'LG화학 연구소 경력사원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고 요약한 정보에 따른 것'이라며 사내에 공유한 이메일에 당사의 전극 개발과 생산 관련 상세 영업비밀 자료가 첨부돼 있었다"며 "채용 후에도 SK는 전직자들을 통해 전지의 핵심 공정과 스펙에 관한 상세 내용 등 당사의 영업비밀을 지속적으로 탈취해 조직 내에 전파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과 LG화학 난징·폴란드 공장의 코터(Coater) 스펙을 비교하고 해당 기술을 설명한 자료 ▲57개의 LG화학 소유의 레시피와 명세서를 사내에 공유했다는 내용 ▲SK이노베이션이 전직자 고용 시 발생 가능한 법적 리스크에 따라 마케팅·생산 분야 인력은 'Low Risk', 배터리 셀 R&D 인력은 'Intermediate Risk' 또는 'High Risk'로 분류해 관리한 정황 등을 제시했다.

한편, ITC는 이날부터 LG화학이 제출한 증거 조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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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ITC가 LG화학이 제기한 조기패소 판결 요청을 받아들이면, '예비결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피고 측인 SK이노베이션에 패소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이후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을 내리면 원고 청구에 기초해 관련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