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100일…"퇴로 없는 교착상태"

오히려 일본기업 '자승자박'…양국 대화는 평행선

디지털경제입력 :2019/10/17 15:11    수정: 2019/10/17 15:43

7월부터 시작된 일본 정부의 대(對) 한국 첨단 소재 수출 규제가 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의도는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견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 달리 규제 여파는 일본 첨단소재 기업 뿐만 아니라 소비재 기업에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7월 이후 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사진=뉴스1)

일본 정부가 규제한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종의 대 한국 수출은 제로(0)에 수렴한 반면 한국 기업은 수입선 다변화, 소재 국산화로 이를 우회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은 대표적인 소비재인 일본산 맥주와 자동차에 큰 타격을 입혔다.

양국 정부 당국자는 7월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공식 접촉을 가졌지만 양쪽의 논리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다음 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이뤄지는 이낙연 총리와 아베 총리의 회담 역시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日 첨단 소재 봉쇄, 자국기업에 부메랑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수출 규제 발표 당시 "(해당 조치가) 일본 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해 왔다. 또 수출 규제 주무 부서인 경제산업성은 "심사 후 합당하다고 판단된다면 대 한국 수출 허가를 내 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이 개발한 투명폴리이미드 필름. (사진=SK이노)

그러나 닛케이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이 7월 4일 이후 지금까지 허가한 대 한국 수출허가 품목은 포토레지스트 3건, 고순도 불화수소 3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건 등 총 7건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대 한국 불화수소 수출량은 급감하고 있다. 7월 수출량을 보면 물량은 약 479톤, 거래 금액은 1억 9천만엔(약 2억원)으로 80% 이상 줄어든 반면 8월 수출량은 0톤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7월 이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서 소재 국산화나 수입 국가 변경을 통해 일본 수출 규제를 우회하고 있어 3대 첨단 소재 규제 효과는 빛이 바랜 셈이다.

■ 첨단 소재 넘어 소비재·관광 수요 '직격'

일본 수출 규제의 여파는 자국 첨단 소재 산업 뿐만 아니라 소비 산업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가지 않고 사지 않는다'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은 대표적인 일본산 소비재인 맥주와 자동차에 큰 타격을 주었다.

8월 이후 일본을 찾는 한국 방문객 수도 급감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9월 일본 맥주 수입량은 지난해 674만 9천달러(약 77억원)에 비해 99% 이상 감소한 6천달러(약 710만원)로 집계되었다. 한국 수입자동차협회 역시 지난 9월 일본계 브랜드 승용차 신규등록 대수는 1천10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9.8% 급감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본 관광 수요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일본정부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한국인은 8월 30만 8천700명, 9월 20만 1천200명으로 지난해 대비 각각 48%, 58.1% 감소했다. 추석 명절을 맞아 일본에 친척을 둔 이들의 방문 수요를 감안하면 10월 이후 감소세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NHK는 16일 "일본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4천만 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지만 한국인 관광객의 급감으로 향후 영향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교착상태 속 평행선 달리는 양국 정부

한일 양국 정부 당국자는 지난 9월에 이어 이번 달에도 꾸준히 접촉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당한 수출 규제'라는 한국 정부의 이의 제기에 일본 정부가 '안보를 위한 수출 관리 제도 개선'이라는 논리로 맞서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본의 수출제한조치에 대한 WTO 제소 첫 단계인 양자협의에 돌입했지만 소득 없이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또 16일에는 한·일 외교 당국 국장급 회담이 진행됐지만 강제 징용 배상 문제를 두고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낙연 총리는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반면 오는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 이낙연 총리가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양국간 대화가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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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는 지난 13일 이낙연 총리의 방일 소식을 보도하며 "이낙연 총리는 한국 유력지(동아일보) 특파원으로 일본 체재 경험이 있으며 (문재인) 정권을 통틀어 '일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16일 아베 총리 역시 "우리(일본정부)는 대화는 항상 계속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러한 기회를 내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주요 일본 언론에 따르면 두 인사의 회담은 24일 오전 중 십여 분간 짧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커다란 진전이나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