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C시장, AI·양자컴퓨터로 판 커졌다

미중 IT기업 필두로 경쟁 한창…한국은 '아직'

컴퓨팅입력 :2019/10/21 15:34

자율주행, 실시간 위험분석, 예측모델 계산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술이 본격화되면서 이를 학습시키기 위한 많은 양의 빅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더불어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슈퍼컴퓨터 같은 고성능컴퓨팅(HPC) 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HPC 세계에선 미국과 중국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6월 슈퍼컴퓨팅 컨퍼런스(ISC)에서 공개한 슈퍼컴퓨터 '톱500' 리스트를 살펴보면 미국은 성능으로, 중국은 보유 시스템 수로 1위를 기록했다.

또한 IBM, 구글 등은 슈퍼컴퓨터를 넘어선 양자컴퓨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어 머지 않아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슈퍼컴퓨터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부족해 두 국가에 비해 역량이 충분치 않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슈퍼컴퓨터 성능 1위를 기록 중인 미국의 서밋(사진=미국 지디넷)

■ 슈퍼컴퓨터 시장 양분 중인 미국과 중국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9대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다. 톱500 리스트에 등재된 시스템을 공급한 기업 수로 봐도 레노버(173대), 인스퍼(71대), 수곤(63대) 등 가장 많은 슈퍼컴퓨터를 공급하는 기업 중 4개가 중국 기업이다.

미국은 슈퍼컴퓨터를 116대 보유해, 보유 수량으로 2위지만 개별 및 전체 성능 면에서는 중국을 앞서 있는 상황이다.

ISC에서 공개한 슈퍼컴퓨터 중 성능은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서밋(Summit)이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실측 성능을 향상시킨 서밋은 148페타플롭스(PF)를 기록했다. 1PF는 1초에 10의 15제곱회, 즉 1천조번의 연산을 수행하는 성능을 뜻하는 단위다.

2위는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시에라(Sierra), 3위는 중국의 선웨이 타이후라이트(Sunway TaihuLight)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슈퍼컴퓨터 성능 총합도 미국이 'HPL' 기준 38.5%로 29.9% 기록한 중국보다 앞선다. HPL은 린팩(LINPACK)이라는 부동소수점 연산 함수를 분산시스템에 맞춰 만든 벤치마크 점수다.

또한 지난 9월 미국 MIT 대학교 링컨 연구소에 'TX-GAIA(그린 AI 엑셀러레이터)'라는 새로운 슈퍼컴퓨터가 구축됐다. HPE가 구축한 TX-GAIA는 AI 연구에 특화된 슈퍼컴퓨터다. 연산속도는 4.725PF로, 타 슈퍼컴퓨터에 비해 개별 처리 속도는 느리지만 엔비디아의 GPU가 900개 이상 연결돼 있어 심층신경망 딥러닝 등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연산에 강점을 가진다.

링컨 연구소 슈퍼컴 센터는 TX-GAIA가 전 세계 슈퍼컴퓨터 중 심층신경망 처리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설명했다.

중국 슈퍼컴퓨터 텐허2

TX-GAIA는 딥 러닝 알고리즘 교육을 비롯해 학습된 AI를 활용한 일기 예보 개선, 의료 데이터 분석 가속화, 자율 시스템 구축, 합성 DNA 설계, 새로운 재료 및 장치 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다.

미국 내 주요 기업으로는 40대의 슈퍼컴퓨터를 공급한 HPE와 39개 제공한 크레이가 있다. 지난 5월 HPE는 크레이를 인수하며 이 분야의 입지를 더욱 확대했다.

■ IT거인들, 신경망칩·양자컴퓨터로 HPC 영토확장

미국과 중국의 주요 산업별 HPC 분야 투자 움직임은 IT거인들의 슈퍼컴퓨터의 주요 활용처로 떠오른 머신러닝, 딥러닝 모델과 AI 애플리케이션 연산 최적화 기술 확보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기존 디지털컴퓨터를 넘어 양자컴퓨터 구현과 개발 계획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텔은 현존하는 슈퍼컴퓨터인 페타급보다 약 1천배 빠른 엑사급 슈퍼컴퓨터를 2021년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BM은 뉴욕 주에 양자컴퓨팅 센터를 설립했다. 구글은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을 넘어서는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서밋’에 넘긴 성능 1위 슈퍼컴퓨터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2020년부터 칭다오, 톈진, 선전 세 곳에 엑사급 슈퍼컴퓨터를 배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AI 전용 슈퍼 컴퓨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지난달 알리바바그룹은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AI 신경망네트워크(NPU) 칩 '한광800'을 발표했다. 한광800은 기계학습에 맞춰 성능을 최적화한 칩으로 기존 GPU 10개에 상당하는 컴퓨팅 성능을 제공하며 업계 표준 '레스넷-50' 테스트에서 기존 칩보다 4배의 성능을 낸다는 것이 알리바바의 주장이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이 칩은 전자상거래를 비롯해 상품 인식, 자동 번역, 개인화 추천, 광고 등 알리바바의 주요 업무 사용하고 있다.

■ 한국 슈퍼컴퓨터 역량 확보 움직임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국과 미국이 치열하게 슈퍼컴퓨터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과 비교해 한국은 아직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톱500 리스트상 한국에서 가장 높은 성능을 가진 '누리온'은 25.7PF로 15위를 기록 중이다. 이어서 기상청이 보유한 누리와 미리가 99위와 100위에 올랐다.

한국은 국가별 슈퍼컴퓨터 보유 수 순위에서는 총 5개로 10위 수준이지만 선두권인 미국, 중국과 비교하면 격차가 큰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경쟁에 나서기에 앞서 국내 시장 현황 파악에 나섰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지난 6월 최근 조달청을 통해 HPC, 컴퓨팅산업 등 국내 컴퓨팅업계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조사는 HPC산업 활성화와 'HPC 이노베이션 허브' 운영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외 컴퓨팅 산업 동향 파악부터 산업 분류체계도 마련할 전망이다.

관련 업계는 조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HPC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 지원을 강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운영 중인 누리온(이미지=KISTI)

이 밖에도 기상청에서는 올해 하반기에 신규 슈퍼컴퓨터인 5호기를 도입한다. 레노버에서 구축하며 계산 성능은 50PF로 글로벌 상위 5위권 수준이다. 지구 대기를 지역별로 나눠 분석하는 수치예보모델 해상도를 17㎞에서 10㎞ 이하로 낮춰 일기예보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민간 기업 가운데 HPC 관련 기술 투자는 삼성전자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AI 핵심 기술로 고성능 NPU를 지목했다.

NPU는 병렬 연산 등 AI 처리와 학습에 최적화한 프로세서다. 선두 기업간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대표적으로 구글이 자체 개발한 NPU인 텐서프로세싱유닛(TPU)을 데이터센터와 슈퍼컴퓨터에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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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HPC 경쟁을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은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 자국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해당 기업에 투자를 집중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의 HPC분야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NPU같은 슈퍼컴퓨터 핵심 구성요소 기술을 삼성전자같은 기업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클라우드, AI 등 대규모 데이터 처리가 중요해지면서 이를 위한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최근 데이터센터는 국내외 기업이 나서서 만들고 있어 부족함이 채워지고 있는 만큼 이젠 슈퍼컴퓨터에 대한 관심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