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링크세' 마지노선, 구글 공격 막아낼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10월 프랑스에서 첫 시험대

데스크 칼럼입력 :2019/09/26 14:58    수정: 2019/09/26 16:0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우리는 ‘마지노선'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절박한 상황을 묘사할 때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지노선은 2차대전 때 실제로 존재했던 요새입니다. 프랑스가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구축한 방어진지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92개 사단의 절반이 넘는 50개 사단을 마지노선에 배치합니다. 독일군이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방어진지로 만들어진 겁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마지노 방어전략은 무참하게 실패합니다. 독일군이 이 방어선을 우회하는 전략을 펼친 때문입니다. 마지노선에 병력을 집결시켰던 프랑스는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패배합니다.

요즘 ‘마지노선’은 최후의 방어선이란 의미로 사용됩니다. 더 이상 물러나면 안되는 곳이란 뜻이지요. 하지만 원래 의미는 ‘최전방 방어 요새’입니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가 구축했던 마지노 요새. (사진=위키피디아)

■ '구글 공격' 격퇴 요새로 마련된 링크세, 프랑스부터 먼저 적용

‘마지노선’으로 유명한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을 대표해 또 다른 방어막을 가동합니다. 이번에 프랑스의 상대는 구글입니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인 구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저작권지침’이란 방어막을 가동했습니다.

‘저작권지침’은 지난 5월 유럽의회에서 최종 확정된 EU의 새로운 저작권법입니다. 명분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저작권법을 새롭게 정비한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공격을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EU 회원국들은 의회에서 최종 확정된 ‘저작권지침’을 자국 환경에 맞게 갈무리한 뒤 본격 시행하게 됩니다. 그 첫 테이프를 프랑스가 끊었습니다. 프랑스는 10월부터 저작권지침을 적용할 계획입니다.

이 법에서 특히 관심을 모은 건 15조에 규정된 ‘링크세’입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언론사 기사를 링크할 경우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링크세’의 기본 골자입니다. 특히 구글 검색이나 뉴스 서비스가 주 타깃입니다.

프랑스가 10월부터 저작권지침을 시행할 경우 구글은 ‘링크세’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진=씨넷)

그런데 구글이 “링크세를 낼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링크에 대가를 지불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구글이 저작권지침을 위반할 경우 프랑스는 곧바로 벌금을 물리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구글이 EU를 대표한 마지노 방어선에 어설픈 공격을 퍼부은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2차대전 당시 마지노선을 교묘하게 우회한뒤 포위공격을 펼쳤던 독일과 비슷한 전략입니다.

구글은 저작권지침 규정 내에서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지침에 링크세 관련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단순 링크는 저작권 라이선스 협상 대상이 아니다. 제목만 포함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둘째. 링크에 본문 요약(snippet)이나 섬네일 사진을 포함할 경우엔 소정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셋째. 위키피디아 같은 비상업적 서비스나 중소 스타트업들은 링크세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구글의 공격은 이 규정의 빈틈을 파고든 겁니다. 프랑스가 저작권지침을 본격 적용할 경우 ‘단순 링크’ 서비스만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저작권 라이선스 협상이 필요 없는 첫 번째 방식의 서비스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입니다. “명시적인 동의(opt-in)를 표시한 언론사의 기사에 한해 섬네일 사진이나 본문 요약을 표출하겠다.” 쉽게 얘기하면 저작권료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언론사의 기사는 종전대로 제목 뿐 아니라 본문 요약이나 섬네일을 노출해주고, 그렇지 않는 언론사는 링크만 제공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공격은 ‘링크세 마지노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구글 "섬네일-본문요약 빼버릴 경우 트래픽 45% 감소"

구글은 EU가 저작권지침을 도입한 직후 스페인에서 A/B 테스트를 실시했습니다. 종전대로 링크와 제목 뿐 아니라 본문요약과 섬네일을 함께 표출한 기사와 본문요약, 섬네일을 제거한 기사의 트래픽을 비교 분석한 겁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섬네일과 본문요약을 빼버릴 경우 트래픽이 45% 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언론사들로선 상당히 두려운 결과입니다.

구글은 이미 5년 전 유럽 주요 언론사들과 비슷한 전투를 한 적 있습니다. 독일, 스페인 등이 링크세를 도입하자 ‘구글 뉴스 폐쇄’란 초강수를 던졌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언론사들의 트래픽이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결국 악셀 슈프링어를 비롯한 독일 거대 언론사들이 백기를 들었던 적 있습니다.

구글은 유럽연합에서 저작권지침이 적용될 경우 기사 검색 결과에서 섬네일 사진과 본문 요약을 빼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구글 실험 결과대로라면 프랑스에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구글을 통한 유입 트래픽이 절반 가량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가뜩이나 힘든 언론사들은 쉽지 않은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마지노선의 방어능력은 강력했습니다. 당대 최고 철옹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노선을 우회한 뒤 포위 공격을 하자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병력이 한 데 몰려 있다보니 기동력이 떨어져 전력이 더 약화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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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EU에서 처음으로 가동되는 프랑스의 ‘링크세’ 마지노선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당초 의도한대로 구글로부터 ‘납득할만한 대가’를 얻어낼 수 있을까요? 플랫폼의 공격을 막는 효과적인 방어막 역할을 해낼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전망이 그리 밝아보이진 않습니다. EU의 ‘링크세’가 2차대전 당시 마지노선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링크세’ 자체는 강력한 데, 오히려 방어막 뒤에 있는 언론사들이 분열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겁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