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이 아직도 필요하다는 게 놀랍다

[이균성의 溫技] 조국은 지금도 중세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9/09/17 16:55    수정: 2019/09/24 08:09

마녀사냥은 중세 언어다. 마녀사냥은 지금으로부터 족히 500여 년 전에 시작돼 300~400년 전에 절정에 달했다. 다수가 힘을 합해 소수 인간을 마녀로 규정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게 마녀 사냥이다. 집단적인 광기(狂氣)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그럴 수 있었던 건 두 말할 것 없이 광신(狂信) 탓이다.

인간 중에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한 건 인간이 마녀일 수 없다는 사실이고 더 중요한 건 그 많은 사람이 마녀일 리 절대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그 때는 그 많은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을 마녀라고 믿었고 더 없이 잔인하게 죽였다. 죽은 마녀가 마녀인지 마녀를 때려죽인 사람들이 마녀인지 지금으로선 도대체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마녀의 샘2.(이 이미지는 본문 내용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광신(狂信)이 두려운 건 그 잔인한 행위마저 신(神)의 뜻이라고 믿는다는 점 때문이다. 신의 부재(不在)를 증명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그렇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모를 바 아니다. 그래서 그건 시대의 한계다. 그저 역사일 뿐인 것이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다행한 일이다.

광신이 웃기는 건 신(神) 밖에 믿을 게 없는 자들이 신의 뜻을 정면으로 배반하면서 신의 사도(師徒)라고 여긴다는 사실 때문이다. 신은 말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신의 계율을 어기는 게 죄(罪)라면 이 땅에 죄인 아닌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죄인(原罪)인 것이고 죽는 날까지 속죄해야 될 운명 아니겠는가. 그 단순한 걸 인간의 힘만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고 보기에 신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원죄가 죄라면 우리 모두는 마녀이거나 그 사촌일 뿐이다.

온갖 과학의 발전으로 신의 부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웃기는 마녀사냥은 계속된다. 계속될뿐더러 더 난해하고 아주 복잡해졌다. 중세에는 광신(狂信)의 대상이 오직 신(神)이었다면 지금은 그게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새 마녀종류는 참 버라이어티하다.

우리 사회에 누군가는 다음에 열거된 존재들을 거의 마녀와 비슷하게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 살인자, 음주운전자, 흡연자, 마약 복용한 사람, 도박한 사람, 성매매자, 성희롱자, 동성애자, 전라도 출신, 경상도 출신, 이민자, 귀족 노동자, 세월호 유족, 무뚝뚝한 콜센터 직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게으른 직원, 쪼는 상사, 전직 대통령, 악덕 자본가, 부패한 정치인......더 나열하기로 치자면 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마녀이거나 기껏해봐야 그 사촌이다.

지금이 중세보다 더 나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마녀라 부르며 집단적으로 때려죽이는 대신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조밀하고 촘촘한 법률’로 다스린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절제되고 차분한 사회 운영 원리를 우리는 법치(法治)라고 부르는 것일 터이다. 또 법은 저울처럼 균형을 갖되 철저하게 객관적 팩트를 기반으로 따져질 터이다.

관련기사

누군가를 향한 가혹한 비판이, 객관적인 팩트와 그리고 팩트의 조합으로서의 총체적 맥락(혹은 진실)을 파악한 뒤 이를 현존하는 법률과 따져 위배 여부를 가리기 전에 진행된다면 그건 마녀 사냥의 일종일 뿐이다. 특히 그런 행위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지금 세상은 중세 암흑기와 1도 다를 바 없다.

오직 그 점만 생각한다면 조국은 지금도 중세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