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에서 또 불…배터리가 원인일까

정부의 모호한 원인규명에 업계 "근본대책 없어" 쓴소리

디지털경제입력 :2019/09/01 12:52    수정: 2019/09/01 18:04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또 발생했다. 정부가 안전강화 대책을 내놓은 지 2개월여만이다. 피해 업체와 ESS 사업자들은 화재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데도 배터리 공급사가 무리하게 충전량을 높여도 된다고 제안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충남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후 7시 18분께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 소재의 한 태양광 발전 시설 ESS에서 불이 났다.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 화재로 ESS 2기 중 1기가 전소돼 5억2천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소방당국과 ESS 설비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현장 설비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설비는 사고 발생 이틀 전에 배터리 충전잔량(SOC)을 약 20%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공급사가 설비업체 측에 SOC 상한을 높여도 된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충전량을 높인 게 배터리 과열로 이어져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18분께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 소재의 한 태양광 발전 시설 ESS에서 불이 났다. (사진=충남소방본부 제공)

이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 A사의 제품은 정부가 화재원인 규명 과정에서 제조상의 일부 결함을 발견한 전력이 있다. 지난 6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는 해당 제조사의 제품에 대해 "일부 배터리 셀(Cell)에서 극판접힘·절단불량·활물질 코팅불량 등의 제조 결함이 확인됐다"며 "제품을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후 A사 제품에 대한 후속 조치는 없었다. 단지 조사위는 "극판접힘과 절단불량을 모사한 셀을 제작해 실시한 180여차례의 충·방전 반복시험에서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셀 내부의 단락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배터리 결함과 ESS 화재 사이에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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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 화재사고 원인과 그에 따른 안전대책. 배터리 결함과 관련된 내용은 빠졌다. (자료=산업부)

이어 정부는 ESS 화재가 ▲배터리 보호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보호체계 미흡 등 4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 조사 과정에서 배터리 결함이 일부 발견됐지만, 이는 주요 원인에 포함되지도 않은 것. 반면, 배터리가 ESS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정부 발표에 전지 업계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업계는 정부가 내놓은 원인규명과 대책이 미흡해 또다시 사고로 이어졌다는 반응이다. 배터리 결함이 확인됐음에도 이를 화재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조사위의 주장이 다소 모순된다는 것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 결함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고, 실제로 화재 발생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결함이 발견된 제품에 대해서도 제조사의 신뢰 추락을 우려한 듯 명확히 밝히지 않아 이같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피해는 더 불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