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스타트업이 어려운 이유..."정부 지원 때문"

"규제 많고 자금 회수·개발 인력 구하기 어려워"

중기/벤처입력 :2019/08/20 15:29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수준이 전 세계 5위 국가로 올라섰지만 아직까지 한국 창업가들이 고전을 겪는 이유는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역설적 발언이 나왔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아산나눔재단,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4개 단체 주관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코리아’ 연례보고서 발표회 축사에서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지원 정책이 조밀하게 만들어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그런데 한국에서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힘들어 하고, ICT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언가 봤더니 바로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시장 진입부터 어려운 규제 환경에 처한 것은 물론, 정부로부터 투자금을 받거나 사업 허가를 받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뜻에서 이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유연한 방식의 민간에서 투자나 인수합병(M&A) 등 자금 회수를 진행하기에도 재벌 프레임 안에서는 돌파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할 정책적 제언이 4개 분야에 걸쳐 소개됐다. ▲전반적인 규제 환경 ▲데이터 인프라 환경 ▲투자 환경 ▲인재 유입 환경 등이다. 발표는 베인앤컴퍼니 안희재 컨설턴트가 맡았다. 베인앤컴퍼니가 스타트업 4개 단체의 의견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했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절반, 우리나라 오면 사업 어려워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절반, 우리나라 오면 사업 어려워(사진=아산나눔재단)

보고서에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 관련 규제 완화 요구다. 스타트업 진입 규제 환경은 점차 개선되고 있으나 글로벌 기준에서 보면 여전히 뒤처진 상황이다.

작년 말 기준 전 세계 상위 100대 스타트업(누적투자액 기준)들이 우리나라에서 사업한다고 가정해보면, 53%는 규제로 인해 제대로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71%에 비해 대폭 줄었고, 한국의 진입 규제 강도(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 조사)도 2017년 49위에서 작년 38위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하위권이다.

특히 아예 사업이 불가한 기업엔 디디추싱, 그랩 등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포함됐다. 우버는 올해 기업공개를 통해 스타트업 대열에서 빠지면서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나라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은 제한적인 환경에서 사업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7일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플랫폼 운송사업의 경우 렌터카 사용 금지, 운전기사의 택시 자격증 보유 의무화, 택시 감차에 따른 증차 허용 및 기여금 납부 의무화가 포함됐다. 관련 사업자들이 성장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안희재 컨설턴트는 “규제가 하나 없어질 때 새로운 규제가 3개 생긴다는 말이 농담처럼 있는데, 실제로 20대 국회를 보면 규제 하나가 없어지면서 규제 3개가 생긴 사례가 있다”면서 “각 규제마다 영향 분석을 강화하고 규제 일몰제 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외 O2O 스타트업들도 진입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곳이 적지 않다. 일례로 미니밴을 이용한 이동 반려동물 출장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반려동물 사체의 43%가 불법 매립되고 있다는 사회적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국토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여러 정부부처가 요건을 내세우면서 신속히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규제 샌드박스에 실증 특례를 신청했으나 결국 사회적 합의와 제도 미비를 이유로 농림부에서 미승인 통보를 했다.

안희재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가 발표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 중 대표적인 분야인 원격 의료로 누적 투자액 상위 100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44%를 차지한다. 원격 의료로 미국, 중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원격 협진, 원격 진료, 원격 모니터링, 원격 의약품 조제 등 다양한 분야가 허용되나 한국은 원격 협진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다행인 것은 조만간 규제 샌드박스 및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제한적이지만 원격 모니터링 및 원격 진료 사업의 진입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의 진입도 일정부분 가능해질 전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핀테크 규제 환경은 최근 대폭 개선돼, 작년 시리즈 B 이상의 핀테크 스타트업 수가 증가했다. 어니스트 펀드, 렌딧, 레이니스트 등이다. 투자 유치 규모도 2016년 9천만달러, 2017년 1억2천200만달러, 작년 1억9천9백만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위해 4가지 방향성이 제시됐다. 스타트업 단체들은 관련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먼저 규제 설정시 네거티브, 포지티브 중 어떤 원칙을 택할지 정하고 이후 규제 내 제한조건을 어느 정도 걸지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이미 있는 규제라면 얼마나 스타트업에 효율적으로 적용할지, 여러 사업자간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100대 AI 스타트업, 美 77개 포함...韓 기업 '0'개

스타트업들이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고품질의 데이터를 보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초고속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률 등 기본적인 인프라부터 민간 기업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 등은 최고 수준이나, 국내 데이터 기반 사업 현황은 초라한 수준이다.

구체적 데이터를 살펴 보면 국민 1인당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미국의 10분의 1, 영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상위 100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의 국가 구성을 보면 미국이 77개로 가장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는 유통 데이터 품질 미흡, 표준화 되지 않은 데이터, 클라우드 등 IT 인프라 사용 제한 등이 이유로 꼽힌다.

표준화 되지 않은 데이터의 사례로, 국토부가 제공하는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 국토부와 한국감정원의 ‘K-아파트 단지 정보’ 등을 보면 국내 아파트 매물 정보를 모두 확보할 수 있으나 각 정보의 데이터 표기가 상이한 상황이다. 데이터를 가공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안희재 컨설턴트는 "데이터의 확보 측면에서 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 사용하고, 처리기준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 개발이 필요할 것"이라며 "데이터 품질을 제고할 수 있는 평가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해외 데이터 선도국 사례를 참고해 정부 주도의 개인정보 보안 체계와 민간 기업의 자율에 맡기되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시 기업에 명확한 책임을 묻는 방식 간 실효성을 상호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 투자·M&A 방식의 자금회수 많아져야

스타트업 4개 단체는 민간기업의 자본이 스타트업에 투자되지 않고, 실제 창업자들이 자금을 회수한 뒤 다른 스타트업에 재투자하지 않아 여러 가지 이점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1분기 국내 벤처 투자액 규모가 7천45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간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안희재 컨설턴트는 “민간 투자가 중요한 이유는 민간 기업들이 보다 풍부한 재원을 가지고 있고,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필요한 기술을 확보해 혁신 동력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며 “민간기업 투자가 부진하다는 것은 단순히 스타트업에게 좋지 않은 소식일 뿐 아니라, 민간기업이 충분한 성장 동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스타트업이 기업에 M&A되는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사례도 극히 드물었다. M&A를 통한 자금 회수는 미국이 43%, 유럽이 35%였으나, 우리나라는 3%에 머물렀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IPO 하는데 소요하는 시간은 2016년 13.1년에서 지난해 13.9년으로 더 늘었다.

또한 스타트업 단체들은 민간 투자에는 벤처지주회사뿐 아니라 기업벤처캐피탈 등도 활발히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창업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안희재 컨설턴트는 “미국을 보면 투자액 기준 기업벤처캐피탈 관여 투자가 절반을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지주회사 체제를 적용 중인 대기업들의 기업벤처캐피탈 설립이 안 된다”면서 “현재 인수합병 활성화가 목적인 벤처지주회사제도를 이용할 수는 있으나, 자금 조달 및 투자를 주목적으로 하는 기업벤처캐피탈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韓 스타트업, 국내·외 스타트업 개발자 영입 더 어려워진다

스타트업 4개 단체는 스타트업 핵심 인력인 개발자 공급이 지속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국내외 인재 영입이 모두 꽉 막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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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컴퓨터 공학과 정원이 2008년 200명 이하에서 지난해 739명으로 4배 가까이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 서울대는 55명으로 유지됐다. 국내에서 인재 공급이 어려운 가운데 해외에서 유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최근 법무부가 스타트업의 외국인 취업을 돕기 위해 외국인 고용시 매출실적 심사 기간을 과거 최대 2년의 유예기간을 5년으로 연장했다. 그러나 중국, 프랑스 등 경쟁국가의 경우 인턴 및 글로벌 인재의 가족까지 비자 신청이 가능하며 발급 절차도 대폭 간소화 하는 등 더 선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스타트업 단체들은 개발자 공급난 해소를 위해 중,고급 개발자 양성을 위한 실무 프로그램 운영이 필요하고, 혁신 산업 인재 수용에 맞는 대학 정원의 탄력 운영 및 외국 인재 유입에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정부 및 민간 기관과 기업의 협력을 기반으로 실습과 체험 중심의 기업가 정신 교육 체계 개선과 교사 교육 네트워크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