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본 금융보복설은 왜 쉽게 진정되지 않나

금융당국의 정교한 예측과 선제적 대책안 필요

기자수첩입력 :2019/08/12 16:33

금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10년 단위로 위기가 반복된다'는 얘기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돈을 빌렸던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현재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2019년까지. 10여년 주기로 위기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일 일본이 수출 심사 간편화 국가 리스트(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면서, 이 같은 10년 금융위기설은 신중한 관측에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최근 일본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일본과 교류하는 국내 기업의 여신 철회와 같은 그럴 법한 시나리오들이 시장서 떠돌았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만기가 되지 않았지만 돈을 갚으라고 한다거나, 일본이 국내 금융시장에 투자한 돈을 일시에 회수한다거나, 일본계 은행이 한국 기업에 대해 신용장 보증을 서주지 않아 기업이 도산할 것이라는 얘기들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이 같은 시나리오들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단기외채 비율과 외환보유고, 은행 외화유동성 규제를 근거로 제시했다. 맞다. 시나리오의 연출자가 일본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까지 우리가 알 순 없지만 금융감독당국이 제시한 숫자들은 적어도 우리나라 경제가 부실하지만은 않음을 방증한다.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어느 쪽으로든 쏠림이 발생할 경우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으며, 은행에서 외화 예금을 줄줄이 찾아간다한들 1달 간 외화 자금 유출에 대비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7월말 기준으로 4천31억1천만달러, 외화 여유자금은 3개월 내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 차입금 255억달러보다 37억달러 많은 292억달러다. 6월 중 국내 은행 외화유동성비율은 111.2%다.

지난 7일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사진=뉴스1)

일본계 은행이 기업에 신용장 보증을 서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선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외려 부인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이 일본 기업과 거래를 할 때 일본 기업의 주거래 은행에서 국내 기업이 신용장을 받아 온다는 얘기는 십 수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해외 송금 수수료가 신용장 발급과 보증비용의 3분의 1 수준이라 기업도 꺼려하고, 일본계 은행도 보증 발급에 따른 수수료를 취할 수 있다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국내 은행의 대 일본 수입 관련 신용장 중 일본계 은행 보증 비중은 2018년 중 약 0.3%, 올해 상반기 중 약 0.1% 수준으로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안심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원화 가치는 지속 하락하고 있고 채권 금리는 상승(채권가격 하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규모를 줄였지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다. 왜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하는데 금융보복으로 인한 금융위기란 불안함은 쉬이 진정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8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딜링룸 전경.(사진=뉴스1)

이유는 하나다. 금융의 셈법은 '1+1=2'로 단순하지 않아서다. 금융은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그리고 가깝게 연관돼 있다. 예를 들어 A란 회사가 이래저래 타격을 입어 문을 닫았다고 하자. A회사가 갚지 못한 B은행의 대출은 대손충당금으로 적립되고, A회사의 직원들은 직장을 잃게 된다. 직장을 잃은 직장인은 보험과 은행 상품을 해지해 생활자금을 마련할 것이다. A란 회사와 연계됐던 C회사는 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이를 당장 갚아야 하는 지경에 놓일 수 있다. 다시 C회사로 위기가 전이된다. 이런 도산의 아픔이 1997년 외환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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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의 하락은 단순히 주가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에 달러 수요는 높아지고 원화 수요는 떨어져 원화 가치 하락을 유발한다. 환 헤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중소기업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퇴직연금 등 노후자산을 펀드에 투자했다면 속절없이 떨어지는 수익률에 미래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 있다. 맨손으로 일궈 코스닥에 상장시킨 중견기업들은 줄어드는 시가총액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하반기 채용을 취소하거나 구조조정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종잣돈을 날릴 수 있다. 금융위기는 이렇게 조금씩 계획된 삶을 흐트러뜨리며 넓게 퍼져나간다.

수 많은 가정들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이 역시도 맞다. 불안심리를 더욱 증폭시켜 달러와 금에 투자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국내 경제·금융수장들이 내놓은 해명이 시장의 분위기를 선도하지 못한 것은 1+1=2라고만 말해왔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시장, 일본 무역금융과 연관된 부서에 '함구령'을 내리고,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함을 강조해왔다. 어떤 위기상황을 가정해 국내 금융시장이 괜찮다고 말하는지는 몇 개의 숫자에 근거해 시민들이 판단하기란 어렵다. 예단은 필요없지만, 예측은 정교해야 한다. 이미 터졌다, 위기감이 싹트는 순간 금융위기는 최고점에 달할 수 있다.